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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스]’정의선의 현대차’, 노사 담합은 끝났다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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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출처현대차 노사가 임금교섭을 벌이고 있다./사진=금속노조

한국의 ‘전투적 노조 운동’을 이끈 현대자동차 노조는 조합원 수만 5만여명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노동조합입니다. 노조 대의원 수는 500명이 넘고, 노조 업무를 보는 전임자 수는 200여명에 달합니다.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공시 정보에 따르면 현대자동차의 직원은 6만9604명(사무직 등 포함)입니다. 전체 직원 대비 노조 조합원 비율이 70%에 달합니다.  


글로벌 자동차기업인 현대자동차의 노조도 시작은 미약했습니다. 현대차노조는 1985년 생산직 직원인 이상범 전 노조 위원장 등 5명이 소규모 독서모임을 만들면서 출발했습니다. 공장 내 노조 관련 유인물을 돌리면서 활동을 시작했고, 1987년 6월24일 노조 설립 ‘깃발’을 올렸습니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설립 당시 공장 내 노동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회사와 대립적인 관계를 맺기도, 협조적인 관계를 맺기도 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강성노조가 아니었다는 얘기죠. 그러다 정치권이 1997년 정리해고를 근로기준법에 명문화하던 때 현대자동차 노조가 노동법 개정 반대 운동의 전면에 서면서 위상이 바뀌었습니다.


이후 현대차의 임단협은 국내 기업의 노사관계를 가늠할 ‘바로미터’가 되었습니다. 정규직 노동자의 처우에 영향을 줄 법과 제도가 만들어지면 울산에 시선이 집중됩니다. 경영계에 현대차 노조는 ‘눈엣가시’였지만, 노동계 입장에서 보면 노동 유연화를 저지하는 ‘지지대’ 역할을 한 셈이죠. 


어떤 안경을 쓰고 보느냐에 따라 현대차 노조는 달리 해석할 여지가 많습니다.


그랬던 현대차 노사관계에도 최근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현대차 노사는 올해 임단협에서 임금을 동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009년 이후 11년 만에 임금을 동결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경영환경이 불확실해지고 있어 현대차 노조 또한 한발 물러선 것입니다. 이상수 현대차노조 지부장은 “5만 조합원의 고용 보장을 위해서는 경직된 사고에서 탈피해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고 노조 소식지를 통해 설명했습니다. 고용 유지를 위해 임금 동결에 합의했다는 설명입니다.


현대차 노사가 올해 임단협에서 채택한 ‘노사 공동발전 및 노사관계 변화를 위한 사회적 선언’에는 △국내 공장 미래 경쟁력 확보와 재직자 고용 안정 △미래 산업 변화에 대비한 직무전환 프로그램 운영 등이 담겼습니다. 내연기관 생산라인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의 고용 안정과 직무 교육을 위해 노사 공동으로 논의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렇듯 생산직 노동자의 고용 문제는 현대차 노조의 발등에 떨어진 문제입니다. 이유는 전기차와 수소차 등 친환경 자동차 때문인데요. 전기차에 들어가는 부품수는 약 2만여개로 내연기관 차량에 탑재되는 부품수보다 1만여개 적습니다. 민주노총이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기차 전용 생산라인이 구축되면 조립 및 의장 부문의 인력이 30% 감축됩니다. 2025년에는 울산공장에서 근무하는 생산직 노동자 7000여명의 일감이 사라진다는 전망도 있습니다. 전체 조합원의 10% 이상이 인력 감축 대상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노조는 발등에 떨어진 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금 인상과 맞바꾼 셈입니다. 앞으로 현대차 노사는 생산직 노동자의 고용 유지 방안을 두고 치열한 줄다리기를 벌일 전망입니다. 이 현안에 대한 주도권은 누가 쥐고 있을까요. 강성의 노조에게 있을까요 현대차에 있을까요. 결론부터 얘기하면 주도권은 이미 회사가 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대차 노조의 ‘이유 있는’ 무파업 현상


노사관계의 전문가들은 현대차 노사에 대해 ‘담합’으로 규정합니다. 노조는 파업으로 임금 인상률을 높이고, 회사는 파업을 용인하는 대신 해고가 상대적으로 쉬운 비정규직을 늘렸다는 설명입니다. 현대차 노사관계에 정통한 박태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의 분석입니다.


현대차 노조는 임단협 중 매년 연례적으로 파업을 해왔습니다. 2000년 이후 노조가 파업을 하지 않은 해는 다섯번 밖에 없습니다. 현대차 노조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파업을 안 했고, 지난해와 올해도 파업 없이 임단협을 마쳤습니다. 통상 노조는 파업 후 상당한 진통을 앓습니다. 파업을 하는 동안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경제적인 손실을 입고, 소송 등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출처현대차 노조 파업 현황./자료=금융감독원

하지만 현대차 노조는 임단협 후 수백 만원의 격려금을 받고, 업무 복귀 후 잔업과 특근을 합니다. 격려금과 추가근무수당을 통해 파업 때 입었던 손실을 보존합니다. 현대차는 매년 파업으로 수천억원의 손실을 입는다고 얘기합니다. 


현대차는 파업이 3개월 간 지속된 2015년 차량손실대수가 1만2639대에 달했다고 합니다. 노조가 파업해 1만여대의 차량이 생산되지 않았고, 이로 인한 손실 금액은 4조5000억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의 ‘생산중단’ 공시와 삼성증권 자료를 취합한 내용입니다.


이듬해인 2016년 차량손실대수는 10만여대에 달했는데, 손실금액은 3조원이었습니다. 현대차의 차량손실대수와 손실금액 간 상관관계는 크지 않아 보입니다. 이는 노조가 파업 후 연장근무를 해 손실 물량을 맞췄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회사는 파업으로 인한 생산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노조는 파업으로 인한 손실이 거의 없고, 회사는 파업을 임금인상의 명분으로 활용할 수 있었던 것죠.


현대차 노조가 파업을 하지 않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임금인상률은 평균보다 낮았습니다. 현대차 노사는 2009년 기본급 인상 1.9%에 합의했고, 2010년과 2011년 임금 인상률은 각각 4.9%, 5.4%였습니다.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현대차 노조의 연평균 임금인상률은 6%대였습니다. 이 기간 노조는 5~8%의 임금인상을 요구했습니다. 임금 인상률이 노조 기대치보다 크게 낮았음에도 파업은 없었습니다.

출처현대차 노사 임금인상액 추이./자료=현대차지부 홈페이지 및 언론 등

이유는 무엇일까요. 평년보다 격려금 총액이 컸기 때문입니다. 2011년 현대차는 임단협 격려금으로 조합원 1인당 700만원과 회사 주식 30주를 지급했습니다. 당시 현대차 주가는 20만원 안팎을 오갔던 때였죠.


기본급 인상률은 낮았지만 격려금을 통해 충분한 보상을 받은 셈입니다. 지금은 분위기가 이전과 달라졌습니다. 지난해 현대차는 기본급 4만원을 인상하기로 하고, 격려금은 3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올해는 임금도 동결했는데 격려금은 150만원에 그쳤습니다.


현대차 노조가 파업을 하지 않은데는 ‘기회비용’이 전보다 커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현대차가 노조의 파업에도 매년 임금을 높게 인상하고 격려금도 두둑하게 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입니다. 현대차가 잘 팔렸기 때문입니다. 2000년 현대차의 판매대수(국내 생산분 기준)는 151만대였습니다. 매년 상승세를 이어가다 2012년 191만대를 기록 최고점을 찍었습니다. 이후 판매대수는 꾸준히 감소해 지난해 178만대를 기록했습니다.


현대차의 국내 생산대수도 2000년 158만대였는데, 2012년 190만대로 17% 증가했습니다. 2000년대부터 자가용 보급이 확산되고 국내외에서 자동차가 많이 팔렸죠. 현대차는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를 수용하는 조건으로 생산성 향상을 요구했습니다. 차가 잘 팔렸던 만큼 회사의 임금인상 여력도 많았던거죠. 현재 판매대수는 이전보다 줄었고, 회사의 순이익률도 낮아졌습니다. 2010년 현대차의 별도 기준 순이익률은 9.4%였는데, 지난해에는 5.7%에 그쳤습니다. 같은 기간 원가율도 76%에서 82%로 높아졌습니다.

출처현대차 생산 및 실적 현황./자료=현대차 및 금융감독원

노조 역시 과거에는 생산 물량이 많아져 잔업과 특근을 반복했고, 장시간 근무가 일상이었습니다. 과거 주야 2교대(주간과 야간조가 8시간씩 근무)를 했는데, 2009년 주간 연속 2교대(주간에만 2교대)로 바뀌면서 생산직 노동자의 연장근무수당이 줄었습니다.


현대차 노조의 임금구성은 기본급 비중이 낮아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표현합니다. 생산직 노동자의 임금은 △통상임금(기본급 포함) △시간외수당 △상여금 △성과급이 각각 4분의 1씩 구성돼 있습니다. 현대차의 경영환경이 악화되고, 연장근무 또한 줄어든다면 임금총액이 낮아집니다. 과거보다 파업의 원동력이 이전보다 낮아질 수밖에 없는거죠.


현대차의 차량손실대수를 보면 이 같은 흐름이 나타납니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지 파업으로 인한 연평균 차량손실대수는 5만68대였는데, 2010년부터 최근까지는 2만6610대로 집계됐습니다. 현대차노조는 2006년과 2007년 비정규직 법개정과 한미FTA, 미국산 쇠고기 집회 등 정치적 현안과 관련한 파업에 참여했습니다. 2010년 이후에는 정치 현안과 관련된 파업은 줄고, 임단협 파업이 주를 이뤘습니다.


‘아이오닉’, 현대차 노사관계를 바꾼다


노조가 파업에 나서지 않고 교섭으로 임단협에 나설 경우 산업현장이 안정화됩니다. 이는 노사간 신뢰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죠. 앞서 살펴보았듯 현대차 노사관계는 과거 파업 등 갈등에 기반한 ‘담합 관계’에서 협력적인 관계로 바뀌는 분위기입니다. 이를 추동하는 동력은 현대차의 판매 실적과 수익성 악화 그리고 친환경 자동차입니다.


현대차의 생산현장에는 ‘벌 수 있을 때 벌자’라는 정서가 있다고 합니다. 현대차 생산직은 40대와 50대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10년 이내 정년퇴직을 해야하는 노동자가 1만여명에 달합니다. 현대차 생산현장에는 “파업권이 있으면서도 파업을 하지 않는다”는 노조 집행부에 대한 비판적인 정서도 있습니다. 하지만 파업으로 인한 임금 인상 효과가 기대보다 낮다면 근무를 거부할 이유가 없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올해 임단협에서 현대차 노조는 ‘시니어 촉탁직’ 제도에도 합의했습니다. 시니어 촉탁직은 정년 퇴직자 중 희망자에 한해 1년 단기 계약직으로 고용하는 제도입니다. 과거에는 기존 생산라인이 아닌 다른 곳에 배치됐는데, 앞으로 기존 근무조에 배치하기로 했습니다. 조합원 고령화로 인한 안전장치도 마련한 셈입니다.


현대차 울산공장에는 내년부터 차세대 전기차 생산라인이 만들어집니다. 기존 내연기관 차량의 작업공수(생산 작업에 드는 시간)를 100이라고 가정하면 전기차와 수소차는 70입니다. 올해부터 글로벌 전기차 판매대수는 연평균 10~20% 가량 늘어납니다. 현대차는 기존 내연기관 생산라인을 줄이고 전기차로 바꿔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는 노사간 합의가 필요한 사항이고, 노조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고용안정의 ‘키’를 쥔 건 현대차입니다. 기본적으로 노사관계는 노조와 회사가 갖고 있는 ‘힘’에 의해 주도권이 생깁니다. 과거 현대차 노조는 △임금 삭감 반대 △노동강도 강화 반대 △고용 불안 반대라는 3가지 원칙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동차 산업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전기차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고용 안정이 제 1의 원칙이 됐습니다.


앞으로 현대차 노사관계의 주도권은 사측에 힘이 실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대차 노조 또한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가능한 한 조합원의 고용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듯 합니다.

출처정몽구 회장(왼쪽), 정의선 수석부회장(오른쪽)./사진=현대차그룹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지난 14일 회장으로 공식 취임했습니다. 부친인 정몽구 회장 시대 현대차 노사관계가 갈등 관계였다면 3세인 정의선 시대에는 노사 협력적 관계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By 리포터 구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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