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스]롯데의 '배터리 도전장'..소재시장서 '초격차기업' 될까

조회수 2020. 10. 11. 13:1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출처: 롯데타워 조감도./사진=롯데 공식블로그

중후장대(철강업, 조선업 등 무겁고 큰 중공업 산업) 업계에서 ‘전기차’는 가장 ‘핫’한 산업으로 꼽힙니다. 석유화학 업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중후장대 산업은 천천히 쇠태하고 있어 신사업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바이오 산업은 유망 산업이지만 신약과 바이오시밀러(복제약) 개발까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성공 여부도 불투명하죠.


하지만 전기차 산업은 전통적인 제조업의 영역으로 기업들이 승부를 걸어볼 만 합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차량과 비교해 차체에 탑재되는 부품수가 절반 이상 적습니다. 그럼에도 전기차 1대를 만드는 데 약 1만여개의 부품이 들어가고, 2차전지와 배터리 소재들은 전기차를 구성하는 고부가가치 부품들입니다. 전기차 시장은 매년 20~30%씩 성장이 예상됩니다. 제조업에 강한 기업들이 전기차 산업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입니다.


포스코그룹이 뒤늦게 배터리 소재(음극재 및 양극재) 개발에 뛰어들어 성공시킨 사례는 눈여겨 볼만 합니다. 일진그룹과 이수그룹 등 중견그룹들도 전기차를 그룹의 도약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롯데그룹은 국내 대그룹 중에서 전기차 분야에서 존재감이 가장 낮았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 대기업집단 기준 10위권(농협 제외) 내에 있는 그룹 중 전기차 관련 사업이 없거나 미미한 곳은 롯데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밖에 없습니다. 재계 1위인 삼성은 글로벌 4위의 배터리 회사인 삼성SDI를 두고 있죠. 현대자동차는 올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을 기준으로 4위를 기록했습니다.


△SK그룹(SK이노베이션 및 SK넥셀리스), △엘지(LG화학) △포스코(포스코 및 포스코케미칼) △한화(한화첨단소재) △지에스(GS칼텍스) 등이 전기차 관련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롯데그룹의 계열사 롯데알미늄은 양극재 소재 알미늄박을 생산하는데, 배터리용으로 들어가는 비중은 많지 않았습니다.


최근 롯데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도 전기차 관련 사업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계열사 현대오일뱅크가 주유소를 플랫폼으로 충전사업에 나서고 있죠. 롯데그룹은 제조업의 강점을 살려 배터리 소재 분야에 진출하고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띈 변화는 최근 있었던 롯데정밀화학의 두산솔루스 지분 투자였습니다.


롯데정밀화학은 지난달 23일 사모펀드인 ‘스카이스크래퍼 롱텀 스트래티직(이하 스카이스크래퍼)’에 29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습니다. 스카이스크래퍼는 두산솔루스 인수합병(M&A)을 추진 중인 스카이레이크에쿼티파트너스가 운영하는 사모펀드입니다. 롯데정밀화학은 “스카이스크래퍼와 공동으로 두산솔루스 경영권 인수 거래에 참여한다”고 투자 목적을 설명했습니다.


사모펀드는 통상 M&A를 통해 인수회사의 경영을 효율화하고, 일정 수익을 올린 후 ‘엑시트(투자 자금 회수)’를 해왔죠. 이를 볼 때 롯데정밀화학의 이번 투자는 향후 두산솔루스의 경영권을 독자적으로 인수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입니다.


롯데정밀화학은 전지박(동박)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두산솔루스 M&A에 참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두산솔루스는 전지박 외에도 PCB용 동박과 OLED 소재, 화장품 등을 생산합니다. 지난해 두산솔루스는 약 700억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대부분 PCB용 동박과 OLED 소재 등에서 매출이 나왔고, 2차전지용 전지박의 매출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롯데정밀화학이 경영권 공동 인수에 나서는 건 전지박의 성장성 때문입니다.


전지박은 음극재에 탑재되는 음극활물질로 에너지 밀도(Energy Density)와 관련있는 소재입니다. 많은 배터리 업체들은 에너지 밀도를 높이기 위해서 연구개발에 힘쓰고 있습니다. 에너지 밀도가 높아지면 용량은 동일해도 무게와 부피를 소형화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 밀도를 높이려면 세가지 방법이 있는데요.


첫째. 리튬산화물 가운데 한번에 많은 양의 전자를 방출하는 활물질을 사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둘째. 빈공간 없이 최대한 많은 양의 입자를 저장할 수 있도록 활물질을 작고 가볍게 만드는 방법이 있죠. 셋째. 리튬이온이 음극에 가장 많이 저장될 수 있게 음극의 공간을 넉넉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습니다. 전지박은 세번째 방법과 연관된 소재입니다.

전지박은 음극에 삽입되는 얇은 박으로 얇고 넓고 길게 만드는 게 관건입니다. 전지박이 얇을수록 리튬이온을 더 많이 넣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기차용 전지박을 생산하는 건 생각보다 높은 기술력이 요구됩니다. 티끌 크기의 불순물이 섞여도 수백 미터의 동박이 불량품으로 처리되고, 울음이 생겨도 안 됩니다.


진입장벽이 높아 SK넥실리스(옛 KCFT)와 일진머티리얼즈, 중국의 장춘(CCP) 등 전 세계에서 6개 업체만이 전지용 동박을 생산해 납품하고 있습니다. 두산그룹은 2013년 룩셈부르크의 써킷포일을 인수해 전지박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지난해 글로벌 전지업체들과 전지박 납품 계약을 체결하고, 생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두산중공업 사태가 불거지면서 두산솔루스를 매각하게 됐고, 현재 사모펀드와 롯데정밀화학이 인수전에 뛰어든 거죠.


이 같은 맥락에서 보면 롯데정밀화학은 약 3000억원으로 전지박 사업을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롯데그룹은 계열회사를 중심으로 전기차용 배터리 소재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출처: 롯데알미늄 임원이 올해 초 헝가리 외교부와 만나 양극박 생산공장을 논의하고 있다./사진=롯데알미늄

롯데알미늄은 올해 초 1100억원을 투자해 헝가리에 배터리용 양극박(알미늄박) 생산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헝가리 등 동유럽은 글로벌 완성차와 배터리 회사의 생산기지가 밀집된 곳입니다. 현지 생산, 현지 납품 체계를 만들려는 계획이죠. 이와 함께 280억원을 투자해 국내 안산공장에 2차전지 전용 알미늄박 생산공장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알미늄박은 양극활 물질로 전자의 이동 통로 역할을 하는 소재입니다. 전기화학 반응에 필요한 전자를 모으고, 공급합니다.


롯데그룹의 두산솔루스 경영권 공동 인수가 마무리되면 배터리 소재 기업으로 위상이 높아집니다. 재계에 따르면 롯데그룹이 뒤늦게 전기차 관련 산업에 집중도를 높이는 건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롯데그룹을 구성하는 큰 축은 석유화학사업과 유통사업입니다. 주력 계열사로는 △롯데케미칼 △롯데정밀화학 △롯데엠시시 △롯데비피화학 등이 석유화학 계열회사로 있고, △롯데푸드 △롯데하이마트 △롯데제과 △롯데쇼핑 △롯데칠성음료 등을 식음료 및 유통계열사로 두고 있습니다. 건설부문으로는 롯데건설과 롯데물산이 있습니다.

이들 사업은 과거부터 롯데그룹이 잘 해왔고, 키울만큼 키운 사업들입니다. 지난 10년의 변화들을 보면 신사업의 필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롯데그룹 석유화학 계열사 실적 현황./자료=감사보고서

롯데그룹 석유화학 계열에서는 롯데케미칼의 수익성이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롯데케미칼은 기초유분을 분해해 합성수지와 플라스틱 등을 생산합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매출 9조1797억원, 영업이익은 7757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전년보다 매출은 9540억원, 영업이익은 7471억원 감소했습니다. 지난 10년 간 매출 규모는 늘었는데 수익성은 둔화됐습니다. 여타 석유화학계열사도 매출은 늘은 반면 영업이익은 크게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출처: 롯데그룹 유통 계열사 실적 현황./자료=사업보고서

유통계열사들은 지난 10년 간 수익성이 크게 둔화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롯데쇼핑은 지난해 9조6953억원의 매출을 냈는데, 영업이익은 전년(4031억원)과 비교해 절반 이상 줄어든 271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롯데그룹은 유통분야에서 입지적인 위상을 갖고 있는데 지난 10년의 변화를 볼 때 크게 성장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롯데물산은 지난해 매출 4199억원, 영업이익 157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영업이익 흑자 전환에 성공했습니다.


이렇듯 롯데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는 지난 10년 동안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석유화학 사업과 유통사업은 외형과 내형 모두 성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2020년대를 이끌어 갈 롯데그룹의 신비전을 찾아야 했습니다. 전기차 분야에서는 대그룹들이 일찌감치 뛰어 들어 결과물을 내고 있었죠.


2015년부터 계속된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은 롯데그룹의 대외적 이미지를 악화시켰습니다. 오너일가가 지분 경쟁에 매달리면서 신사업에 눈을 돌릴 여력이 없었다는 설명입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뒤늦게 일본의 배터리 소재업체 히타치케미칼 인수를 추진했지만 불발됐습니다. 이후 두산솔루스 경영권을 공동 인수하면서 재차 배터리 사업에 의지를 보인 것입니다.


롯데그룹은 후발주자로서 전기차 사업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죠. 늦었지만 늦지 않았습니다. 재계 5위의 롯데그룹이 배터리 소재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경우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예단하기 어렵죠. 롯데그룹의 뒤늦은 전기차 분야의 도전장이 어떤 결과를 낼지 관심입니다.


By 리포터 구태우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