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스]LG전자는 왜 삼성전자보다 '퇴직금부채'가 많을까

조회수 2020. 9. 21. 15: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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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LG전자의 퇴직금 부채가 계속 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대표 전기전자 기업과 비교해도 부채 규모가 눈에 띄게 많습니다. 상식적으로 LG전자는 삼성전자보다 규모도 적고 직원 수도 적습니다. 퇴직금 부채도 더 적어야죠. 그런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일까요.


LG전자는 최근 재무건전성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퇴직금 부채라는 게 줄인다고 줄일 수 있는 부채가 아니긴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퇴직금 부채는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드네요. 재무건전성을 제고하고 있는 LG전자 입장에서도 좋은 일은 아닌것 같구요. 왜 그런지, LG전자의 사례를 들여다보면 요즘 기업들의 퇴직금 운영 현황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습니다.

퇴직금 부채를 이해하기 위해선 기업의 퇴직금 운영 방식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에 이야기할 LG전자와 삼성전자, 그리고 SK하이닉스는 모두 DB형, 즉 회사가 돈을 직접 운용하는 확정급여형을 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DB형은 퇴직자가 퇴직 시 급여와 재직한 근무연수를 곱한 금액을 퇴직금으로 받는 방식입니다. 근로자는 정해진 액수만 가져가고 기업들은 사외적립자산으로 퇴직금을 보유합니다. 반면 DC형은 매년 1개월치 급여가 근로자 개별 계좌에 적립되며 근로자가 직접 돈을 운용해 손익을 가져갑니다.


DB형을 설정한 기업은 직원들에게 줘야 할 퇴직금을 외부 금융기관에 ‘사외적립자산’이란 이름으로 매년 한 차례씩 쌓습니다. 미래에 줄 퇴직금을 현재가치로 할인한 값을 ‘확정급여채무’라고 부릅니다. 사외적립자산에서 확정급여채무를 뺀 값이 양수면 ‘순확정급여자산’, 음수면 ‘순확정급여부채’로 회계처리됩니다. 퇴직금을 더 쌓아놓는지, 덜 쌓아놓는지에 따라 자산인지, 부채인지 여부가 결정된다는 거죠.

2020년 반기별도보고서 기준 LG전자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중 확정급여채무는 삼성전자가 8조5706억원으로 가장 많습니다. 직원 수가 10만명을 훌쩍 넘는 만큼 퇴직금도 많이 쌓이기 때문입니다. 1인당 퇴직금 지급 예정액도 삼성전자가 8036만원으로 3사 중 가장 많았습니다.


그런데 순확정급여부채는 오히려 LG전자가 훨씬 많습니다. 올해 상반기 기준 LG전자의 순확정급여부채는 6669억원에 달합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는 순확정급여부채가 마이너스(-)이고요. SK하이닉스는 순확정급여부채가 2017억원입니다.


직원 개개인으로 환산하면 순확정급여부채 규모가 확실히 드러납니다. LG전자는 1명이 퇴사할 때마다 평균 1674만원만큼 회삿돈을 추가로 쓰게 됩니다. SK하이닉스는 705만원을 써야 하며, 반대로 삼성전자는 부채가 없고 152만원씩 돈이 들어옵니다. 물론 이런 식으로 퇴직금을 운용하지는 않지만 단순 계산할 때의 사례를 말한 겁니다.


회사들은 현행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근퇴법) 상 퇴직금의 사외적립자산 최소적립비율 규제(2020년 90% 이상)를 따라야 합니다. 삼성전자는 이 비율이 100%를 넘겼고 SK하이닉스도 89.9%로 규제비율에 근접합니다. 반면 LG전자의 적립비율은 78.5%에 불과합니다.

출처: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상 DB형 퇴직연금의 기간별 최소적립비율./자료=자본시장연구원

퇴직연금을 맡는 금융사마다 수익률 차이는 있지만 DB형은 통상 수익률이 1~2%에 불과하며 변동성이 크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각사의 퇴직금 부채는 이토록 차이 날까요. DB형을 운영하는 회사들의 퇴직금 운용 방식에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DB형을 채택한 회사들은 퇴직자의 퇴직 시점에 맞춰 정해진 액수를 주면 됩니다. 기업 입장에선 한꺼번에 돈이 빠져나가는 게 아닌 만큼 사외적립자산에 돈을 넣는 시점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기업이 내 퇴직금을 사외적립자산에 넣는 시기를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요. 근퇴법이 강제 조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012년 법이 개정된 이래 사외적립자산 최소적립비율은 60%에서 2년 주기로 10%포인트씩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이 규제를 지키지 않더라도 특별한 처벌조항은 없습니다. 퇴직금을 주지 않을 경우 지연이자 패널티(퇴직금의 40% 이내)만 주어질 뿐입니다.


당장 규제를 지키지 않더라도 된다면 기업들은 사외적립자산을 쌓을지 안 쌓을지를 선택할 겁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DB형의 경우 회사는 퇴직자에게 확정된 급여를 주면 되며, 그 돈을 언제 쌓을지는 자의적으로 선택 가능합니다.


이에 대해 2019년 10월 자본시장연구원의 박혜진 연구위원이 발간한 ‘기업 퇴직급여채무의 사외적립 현황 및 시사점’에 관련 내용이 나와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퇴직급여 지급 재원 마련을 위해 현금이 유출되면 신규 투자 시 외부자금조달비용이 늘고 신용위험도 커질 수 있다고 합니다. 최근 재무건전성을 제고하고 있는 LG전자로선 당장 내부자금을 퇴직금에 돌리기 보단 투자 재원으로 쓰는 게 더 나을 수 있다는 짐작이 가능해집니다.


문제는 최근 들어 저금리 기조가 강해지면서 퇴직연금 수익률이 크게 낮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투자 자산 중 안전자산 비중이 높은 DB형의 특성상 기준금리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 지난해 말 1.25%였던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지난 5월 0.5%로 무려 0.75%포인트나 떨어졌습니다.


회사들이 사외적립자산은 덜 쌓는데 퇴직금 수익률이 떨어진다면 확정급여부채는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부터 사외적립자산을 덜 쌓아온 곳이라면 최근의 저금리 기조 장기화는 분명 부담요인이 될 것입니다.


당장 LG전자의 퇴직금 부채가 우려스러운 수준이 아님은 확실해 보입니다. 다만 자본시장연구원은 고령화와 저금리, 저성장 추세가 지속되면서 퇴직금 부채가 점차 커져 기업들의 재정 부담을 초래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코로나19로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들이 퇴직금을 건전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By 리포터 이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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