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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IN] 웹툰판 사형선고…’독자 검열’과 ‘창작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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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사회악이던 시절이 있었다. 어린이날에 성인용 음란 테이프와 함께 불량만화 화형식을 했을 정도였다.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은 검열이라는 무자비한 칼질을 남발했다. 당시 작가들은 당국의 검열을 피하려고 갖은 노력을 해야 했다.

출처둘리와 희동이 /둘리나라 제공

1980년대 최고 인기 만화 ‘아기공룡 둘리’는 도덕 교과서 수준인 심의에 절망하다 탄생한 작품이다. 검열을 피하려고 인간이 아닌 공룡, 꼴뚜기 외계인 등을 등장시킨 것이다.


그래도 사전 심의에 종종 걸려서 내용을 수정 당했다. 둘리가 어른 고길동에게 ‘길동아’라며 반말을 한다는 게 이유였다. 설정상 둘리 나이가 1억년이 넘으니 고길동보다 더 많지만 아이가 말대꾸하는 게 버릇없다는 이유로 ‘불량만화’로 찍히기까지 했다.


황당한 수준의 이러한 검열은 창작자의 ‘자기 검열’로 이어졌다. 허영만 화백은 과거 인터뷰에서 “수박에 상자를 씌워 키우면 네모난 수박이 된다. 검열이라는 건 예술가들한테 네모난 상자를 씌우는 거다. 검열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이런 걸 그려도 되나’하는 자기 검열에서 벗어나는 데 4~5년이 걸렸다”고 밝힌 바 있다.


검열의 칼, 시민이 움켜쥐다


모질던 검열이 완화되기 시작한 건 1987년 민주화 이후부터다. 이제 서슬 퍼런 심의는 사라졌지만 대신 의식 있는 ‘시민 독자’가 빈자리를 대체한 모습이다. 웹툰의 경우 일부 내용을 문제 삼으며 연재를 중지하라는 요구도 흔히 나오고 있다. 이른바 ‘웹툰판 사형선고’다. 논란이 심화되면 실제로 연재 중단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출처기안84와 웹툰 ‘복학왕

최근 기안84는 웹툰 ‘복학왕’에서 여성 혐오성 장면을 그렸다는 논란에 휩싸이며 도마에 올랐다. 여주인공 봉지은이 회식 자리에서 조개를 깨부수는 모습, 상사와의 성관계를 통해 정직원이 됐다는 암시 등이 문제가 됐다. 이를 두고 여성 혐오를 조장한다는 지적과 과도한 해석이라는 의견이 맞섰다.


일부 단체는 1000명이 넘는 네이버 사용자에게 서명을 받아 기안84 작품의 네이버 연재 중단을 요구했다. 비판 여론이 커지자 기안84는 대사와 그림을 수정하면서 “사회를 개그스럽게 풍자할 수 있는 장면을 생각했는데 깊게 고민하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출처헬퍼2 : 켈베로스 /네이버웹툰 갈무리

지난 16일에는 네이버 웹툰 ‘헬퍼2 : 켈베로스’가 연재 중단을 알렸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표현이 여성 혐오를 일으키고 지나치게 폭력적이라는 비판이 불거진 지 일주일 만이다. 독자들의 혹평이 이어지며 12일 기준 작품 평점은 1점대로 떨어졌다.


작가는 지난 14일 올린 사과문에서 “만화보다 더 잔인하고 악랄한 현실 세계의 악인과 악마들의 민낯을 보여주고, 남녀노소 불문하고 상처 입은 모든 약자들을 대신해 더 아프게 응징해주는 것이 연출의 가장 큰 의도”였다며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도 불편한 장면들도 그려져야 했다”고 해명했다.


창작의 자유와 표현의 갈림길


내용상 불필요한 선정적 장면이 등장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잔혹한 경우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연재 중단 요구 등의 움직임에는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옭아매기 때문이다.

‘풀하우스’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만화가 원수연은 기안84를 둘러싼 논란을 ‘검열’이라고 규정했다. 원 작가는 “연재중단 운동은 만화 탄압의 역사, 즉 50년이 넘도록 심의에 시달려 온 선배님들과 동료작가들이 범죄자로 몰리면서까지 투쟁해서 쟁취한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라며 “만화계 역사의 치욕스런 암흑기를 다시 오게 하려는 패륜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웹툰협회는 지난달 24일 작가에 대한 비판은 받아들이지만 작가 퇴출이나 연재중단 요구는 ‘파시즘’이라는 입장을 냈다. 웹툰협회는 “작가의 창작과 작품을 비판적 논쟁의 영역을 벗어나 물리적으로 강제하려는 행위는 조지오웰의 1984가 경계했던 빅브라더 사회, 전체주의로 해석하는 파시스트들의 그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고 꼬집었다.


中·日에서 발견한 ‘자유’의 차이


주변국 상황을 보면 분위기가 극명하게 다르다. 일본 만화는 도가 지나칠 정도의 자유로운 표현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출처나가이 고 작가의 파렴치학원

1968년 연재 시작 후 큰 인기를 누린 나가이 고의 만화 ‘파렴치 학원’은 소년만화에 ‘에로틱한 요소’를 도입시킨 첫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내용 중 여학생 치마를 들추는 장면이 등장한 이후 일본 전국에서 치마 들치기 놀이가 유행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교육계와 학부모들이 연재 중단을 요구하며 비난했고 당국의 규제와 압박으로 사태가 번졌다.


이에 굴복하지 않은 나가이 고는 정부가 학교를 공격하고 등장인물들이 맞서 싸우다 전원이 죽는 결말로 작품을 끝내버렸다. 훗날 나가이 고는 “정부나 단체가 표현규제를 하면 만화와 캐릭터들은 죽는다”는 생각을 담았다고 밝혔다.


만화 역사에 남을 충격적인 결말은 저항의 상징이 됐고, 이후 만화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흐지부지 사라졌다. 지금의 일본 문화계가 누리는 표현의 자유는 상당 부분 나가이 고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출처중국 사극 드라마 ‘미월전’ 포스터

반대로 중국은 ‘검열의 왕국’으로 악평이 자자하다. 중국 공산당의 문화 콘텐츠 검열은 만화, 책, 영화, 드라마는 물론 댓글과 SNS, 게임 내 채팅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중국의 미디어 검열 기구인 광전총국은 작품 심사, 삭제 요구, 상영 금지 등을 아우르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정말 희한한 기준을 가지고 심사하는데 세계적인 화제작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는 무정부 상태에서 부패한 지배자들을 처단하는 내용이 문제가 돼 개봉이 금지됐다.


지난해는 사극 장르 방영을 금지했는데 이유는 ‘시청자의 역사관을 바로잡기 위해’로 알려졌다. 오락성을 위해 역사를 마음대로 희화화하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며 제재하는 것이 중국의 현실이다. 물론 뇌물 등의 방법으로 검열을 피할 수는 있으나 창작자에게는 사고의 폭을 좁히는 족쇄로 작용한다. 이러한 문제는 중국의 문화 콘텐츠의 부실로 연결되며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한국 콘텐츠의 세계화… 적정선 있어야


현재 한국 웹툰은 세계 시장을 호령하고 있다. 네이버웹툰은 지난달 글로벌 월간순사용자수(MAU)가 6700만명을 넘었다. 매출은 지난해 1610억원으로 2017년 대비 약 5배 증가했다. 카카오재팬은 만화 플랫폼 픽코마가 지난 7월 일본 앱스토어와 구글플레이에서 비게임 부문 통합 매출 1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올해 2분기 거래액은 전년 대비 2.5배 늘었고, 전 분기 대비로는 61% 성장했다.

출처픽코마 홈페이지 /카카오재팬

이처럼 한국의 문화 콘텐츠 파워가 강화되고 세계 시장에서 소비가 늘어나는 가운데 ‘창작물의 표현 수위’ 문제는 언제 어디서라도 발생할 수 있다. 한국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 해외에서는 문화적 차이에 따라 논란을 일으킬 가능성도 없지 않다.


따라서 어린이, 여성,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다루거나 성적 표현이나 폭력을 묘사할 때 작가의 고민이 좀 더 깊이 있게 배어들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여성 혐오나 인종차별적인 내용 등은 보편적 기준에서 세밀한 거름망을 갖출 필요가 있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경우 적절한 지적도 제기되어야 건강한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다.


최근에는 특히 여성의 성상품화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은 상황이다. 한국여성만화가협회(여만협)는 ‘성평등 작품을 위한 주의점‘에서 △노출이 있는 의상을 입히지 않는다 △여성캐릭터에게 특정 신체부위(가슴·엉덩이 등)를 강조하는 포즈를 묘사하지 않는다 △성역할고정관념적인 연출을 하지 않는다 등의 사항을 발표하기도 했다.


창작자의 자유와 사회적 요구의 조화


그러나 작가를 일정한 사회적 틀에 가두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 자체를 경계하는 의견도 있다. 웹툰 ‘신과함께’의 주호민 작가는 18일 새벽 트위치 방송에서 최근 웹툰 검열 사태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출처주호민 작가 /유튜브 영상 갈무리

주호민 작가는 “과거에 검열을 국가에서 했다면, 지금은 시민과 독자가 하는데 이 부분은 굉장히 문제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질이 낮고 보편적인 상식과 인권에서 벗어나는 만화들이 있었다. 만화는 무엇이든지 표현할 수 있지만 건드려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전제하면서 “자기 생각과 다른 사람이나 작품을 만나면 미개하다고 규정하고 또 계몽하려고 한다. 그런 방법으로는 생각의 확장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문제 제기가 두려워서 작가가 원하는 바를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고 ‘자기 검열’에 빠지는 것은 군사독재 시절로의 회귀와 다를 바 없다. 작가가 스스로의 생각을 거세하고 다른 이의 틀에 맞추다 보면 창작의 의지가 꺾이고 궁극적으로는 천편일률적인 콘텐츠가 양산되는 불행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며 달라진 성인지 감수성과 더 민감해진 독자의 요구는 매우 중요하게 부각된 요소다. 이를 바라보는 시각과 허용 범위는 제각각이다. 누군가에게 불편하다고 해서 사라져야 하는 것일까. 반대로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존중 받아야 할까. 작가의 의도와 창의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사회적 요구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는 모두의 숙제로 남을 전망이다.


By 에디터 김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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