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지연 소송'..페북이 이기고 방통위가 진 이유

조회수 2020. 9. 12. 14: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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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회가 또 졌다. 페이스북은 일부 통신사 사용자들의 서버 접속경로를 변경해 속도를 고의적으로 늦췄다는 이유로 방통위가 과징금 처분을 내린 데 대해 불복해 낸 소송에서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승소했다.


11일 오후 서울고법 행정10부(이원형 한소영 성언주 부장판사)는 페이스북이 방통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등 처분취소 소송에서 방통위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판결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원고(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 행위는 이용제한 행위에는 해당하지만 전기통신이용자의 이익을 현저히 침해하는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처분 사유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50에 대해 처분할 일을 100을 적용한 것은 (방통위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접속경로 우회’로 시작된 법정싸움


이번 분쟁은 2016년 상호접속고시 시행이 발단이 됐다. 기존에 페이스북은 KT 데이터센터에 ‘캐시서버’를 두고 있었다. 캐시서버는 사용자가 자주 찾는 정보를 따로 모아둔 ‘임시저장소’로, 트래픽 과부하를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SK텔레콤(브로드밴드)·LG유플러스(U+) 이용자들도 KT망을 통해 페이스북에 접속해왔다. 하지만 통신사끼리는 망 사용료를 내지 않던 ‘무정산 원칙’이 폐기되고, 데이터 발신자가 비용을 부담하도록 제도가 바뀌었다. 거액의 접속료를 내야 하는 상황이 된 KT는 페이스북이 이를 지불하거나 SKB·LG U+와 별도 계약을 맺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페이스북은 2017년 전후로 두 이통사와 망 사용료 협상을 벌이던 도중, 대역폭이 좁은 구간으로 일부 ‘통행로’를 바꿨다. SKB·LG U+ 가입자들은 병목현상으로 인해 속도지연 등의 불편을 겪게 됐다. 페이스북이 망 사용료 협상에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이용자를 ‘볼모’ 삼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2018년 방통위도 페이스북이 ‘고의로’ 이용자들의 접속 속도를 떨어뜨렸다며 과징금 3억9600만원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페이스북은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고, 지난해 8월 1심에서 승소했다.


쟁점은 이용제한·현저성


전기통신사업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전기통신서비스의 이용을 제한하는 행위’, ‘이용자의 이익을 현저히 해치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다. 방통위는 이를 근거로 페이스북에 과징금 등 처분을 내렸다.


1심 재판부는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이 이용 제한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전기통신서비스의 이용을 지연하거나 이용에 불편을 초래한 행위에 해당할 뿐, 이용 제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 “SK와 LGU+가 해외 전송망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면 (이용자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접속경로를 ‘우회’하도록 한 것은 이용 제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용 제한이란 ‘이용은 가능하지만 이용에 영향을 미쳐 이를 곤란하게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예컨대 공정거래법에서 ‘경쟁을 제한한다’는 건, 경쟁을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어렵게 한다는 것”이라며 “이 사건의 접속경로 변경은 이용 제한에 해당한다는 게 우리 재판부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 “방통위, ‘현저성’ 증명 못해”


다만 2심 재판부는 ‘경로 우회’로 인한 국내 이용자들의 피해가 현저하지는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원심판결을 유지한 결정적인 이유다. 당시 페이스북을 통한 동영상 시청은 원활하지 않았지만, 게시물 접속이나 열람·전송 등은 큰 불편 없이 이용됐기 때문에 ‘뚜렷한’ 침해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방통위는 일부 통신사의 민원 건수가 증가했다는 점을 현저한 침해의 근거로 들었지만, 재판부는 이 역시 ‘주관적’이라고 판단했다. 이원형 부장판사는 “민원 건수 증가는 상대적인 것에 불과해, 처분이 적법하다고 보는 객관적인 증거로 여기기엔 부족하다”며 “SK브로드밴드의 경우 민원건수가 증가했다가 감소하고, 다시 크게 증가했는데 접속경로 변경과 반드시 일치하는 모습도 아니라는 점이 판단 요소가 됐다”고 말했다. 또 방통위가 현저성의 기준이 되는 ‘정상 기준’조차 제시하지 않았고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증거에 의해 현저성 요건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콘텐츠제공사업자(CP)의 법적 책임에 관해 명확한 규정이 없는 이상,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인터넷 이용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며 “인터넷의 이 같은 기능은 정보를 제공하는 CP가 있어 더욱 고양될 수 있다. CP에 대해 서비스 품질 관련 법적 규제 폭을 넓힌다면 CP의 정보제공행위 역시 규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또 “인터넷 접속 서비스의 품질은 기본적으로 통신사(ISP)가 관리·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지, CP가 관리·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는 1심 판결도 그대로 적용했다.

출처: |사진=지난해 페북-방통위 소송 1심 판결 직후 방통위측 관계자가 입장을 밝히고 있는 모습이다.

페북 “환영”…방통위 “상고 검토”


판결 직후 양측의 표정은 엇갈렸다. 페이스북은 공식입장을 통해 “서울고등법원의 결정을 환영한다. 페이스북은 한국 이용자 보호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방통위는 법원 판결문을 분석해 상고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 1심과 달리 2심은 페이스북의 임의 접속경로 변경이 ‘이용의 제한’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도 평가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현저성에 대해서는 그 당시 피해를 입은 이용자의 입장에서 재판부가 판단하지 않은 점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이용자에 대한 차별이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규제할 수 있도록 관련 법·제도 개선을 적극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청한 이통사 관계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이달 8일 입법예고한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이른바 ‘넷플릭스법’)을 언급하며 “이번 판결과 별개로 기본적으로 글로벌 CP들도 이용자에게 편리하고 안정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개정안은 페이스북·넷플릭스·카카오 등 CP들도 망 품질 유지를 위해 서비스 안정수단 확보 등 필요한 조치를 의무적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인터넷업계는 통신사가 해야 할 역할을 CP사들에게 과도하게 떠넘기는 내용이라며, 시행령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고 있다. 이번 판결은 인터넷 기업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오픈넷 이사인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망 사업자가 자신들에게 접속하지도 않는 망 이용자들에게 통행세를 받을 수는 없다”며 “통행세를 받게 되는 순간 페북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경제적 훼손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번 판결은 ‘넷플릭스법’의 헛점을 잘 보여준 판결”이라고 말했다.


By 리포터 김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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