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스]'36억→474억'..경동전자-경동나비엔 분할합병 마법①

조회수 2020. 8. 31. 17:58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경동원그룹 주요 계열사./사진=경동나비엔 홈페이지

36억원 짜리 자회사가 1년 반만에 474억원의 지분가치를 지닌 기업으로 탈바꿈했다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일반적 투자에서는 쉽지 않은 재산 증식입니다. 투자의 비결, 일반인이 모르는 비밀스런 거래가 있지 않을까 의심도 드네요. 결론을 알면 ‘실소’가 나올 수 있는데, 그 비결 한번 알아두고 넘어갈 만 합니다.


주인공은 ‘경동전자’입니다. 보일러 관련 전자제품 제조업체죠. 보일러·온수기에 사용되는 ‘콘트롤러 회로기판’ 등을 만들어 경동나비엔에 납품합니다.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 경동나비엔 지주회사격 기업인 경동원의 자회사로, 경동원그룹 주력 계열사 중 한 곳입니다.


불과 1년 반만에 생긴 일입니다. 경동원은 2019년 1월 전자제품 제조 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해 경동전자를 만들었습니다. 경동원은 당시 경동전자의 장부가액을 경동전자 설립당시 순자산가액(36억원)을 기초로 36억원으로 잡았습니다. 경동원의 재산에서 경동전자가 약 36억원 정도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갑자기 설립 1년 반이 지난 최근 경동원그룹은 경동전자와 경동나비엔의 합병을 발표했습니다. 합병가액 산출 결과 경동전자의 본질가치는 474억원으로 평가됐구요. 경동원은 자회사를 분할시킨지 1년 반만에 상장 자회사인 경동나비엔을 활용, 합병시켜 약 13배의 차익을 거둔 겁니다.

경동원그룹 지배구조도./자료=경동나비엔 합병 관련 주요사항보고서

차익의 열매는 현금은 아니고 지분입니다. 경동원의 경동나비엔 지분은 50.51%에서 53.65%로 3.14%포인트 늘어나구요. 손연호 회장의 경동나비엔 지분은 1.01%에서 0.95%로 0.06%포인트 감소합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경동원그룹 오너인 손연호 회장 및 특수관계인(특수관계법인 포함)의 경동나비엔 간접지분율은 48.29%(93.72%X51.52%)에서 51.17%(93.72%X54.6%)로 2.88%포인트 늘어나게 됩니다. 28일 경동나비엔 종가 기준 192억원 가량 되는 지분(2.88%) 입니다.


결과적으로 경동원그룹은 일부 사업 부문을 지주회사격 기업인 경동원에서 분할시켜 상장 계열사인 경동나비엔과 합병시키고, 대주주의 상장 계열사 간접지분율을 끌어올려주게 된 셈이죠. 왼쪽주머니에 있던 돈뭉치를 오른쪽 주머니로 옮겼을 뿐인데 대주주의 현금화 가능 재산은 더 늘어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기게 된 겁니다.


이만하면 마법같은 거래 아닌가요.


법적으로 왜 이런 거래가 가능하도록 방치하느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죠. 우리나라 자본시장법은, 특히 비상장법인 회계처리에는 이런 ‘구멍’처럼 보이는 제도가 꽤 있습니다. 하지만 구멍은 아닙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긴 합니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및 시행령에 따르면 법인을 물적분할할 때와 법인을 합병할 때 매기는 가치평가 방식은 다릅니다. 물적분할할 때는 순자산가액을 기준으로 분할회사의 가치를 매기고, 합병할 때는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가중평균한 값으로 합병법인의 가치를 구하게 돼 있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왼쪽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면 그 돈의 액면금액을 기준으로 가치를 산정하게 돼 있고, 꺼낸 돈을 오른쪽주머니에 넣을 때는 그 돈이 가져다 줄 수익 가능성도 함께 봐주는 겁니다.

경동전자 재무 현황./자료=경동나비엔-경동전자 합병 관련 주요사항보고서 발췌

경동전자의 경우 2019년 1월 경동원에서 분할할 때 매출은 966억원, 영업이익은 93억원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순자산가액(자본총액)은 36억원이었습니다. 물적분할 회계처리 방침에 따라 경동원은 경동전자의 장부가액을 그냥 36억원으로 잡았죠. 만일 물적분할 당시 수익가치까지 고려한 경동전자의 기업가치를 내보라고 한다면 36억원보다 10배 이상의 가치로 평가받았을 겁니다.


이후 1년 반이 지나 경동전자는 829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가 됐고 59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기업이 됐습니다. 순자산가액은 어떤 일에서인지 78억원으로 급증했구요. 이 기업을 경동나비엔과 합병시키려 하니 자본시장법에서 자산가치와 수익가치 모두를 구해 가중평균하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해보니 대략 주당 11만8503원의 가치를 지닌 기업으로 몸값이 훌쩍 커진 겁니다.


세금을 부과하는 세무당국보다 기업이 늘 앞서나가는 사례를 하루 이틀 본 것은 아니니 씁쓸한 건 없습니다. 위법 상황도 아니구요. 그렇다고 상장회사인 경동나비엔의 주식가치에 손상을 주지도 않습니다. 다만 생각해 볼 문제들이 있습니다.


법적, 제도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이 거래가 주목되는 이유는 일감몰아주기·일감떼어주기 증여세 부과 제도가 사회적으로 그리 이로운 결과를 내고 있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기업 대주주 일가에게 일감몰아주기 증여세를 부과하는 이유는 일감몰아주기를 해소하고 계열집단 이외 다른 기업에게도 더 많은 경제 참여 기회를 주기 위함이죠. 그런데 많은 기업들이 적법한 테두리 안에서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하면서도 일감은 계속 내부에 몰아넣는 방식을 고안해내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 더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넘버스]’36억→474억’…경동전자-경동나비엔 분할합병 마법②으로 이어집니다.

글쓴이


By 에디터 문병선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