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SK '배터리 전쟁', 조 바이든 美대통령 개입 예상 3가지 이유

조회수 2021. 2. 27. 14: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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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출처: (사진=홈페이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4월 10일은 SK이노베이션에 ‘운명의 날’이 될 전망입니다. 이 날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판결한 SK이노베이션의 제한적 수입금지 조치와 관련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마지막 날입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ITC의 최종 판결이 집행된다면 SK이노베이션은 LG에너지솔루션과 천문학적인 금액을 지급하고 합의해야 합니다. 이는 ITC가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사업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LG화학 전지사업부(현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고 판결한데 따른 것입니다.


업계에 따르면 합의금 규모는 수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데,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간 입장차로 인해 합의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양사의 분쟁은 결국 ‘돈’으로 막든지, 아니면 조 바이든 대통령의 결정에 달린 셈이죠.


업계는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첫번째 이유는 미국의 배터리 산업이 위축됐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미국의 ‘넷 제로’ 정책 때문이고, 세번째 이유는 SK이노베이션의 공장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승리를 안겨준 조지아주에 있기 때문이죠. 하나씩 분석해보죠.


첫째, 바이든 대통령은 산업적 관점에서 SK이노베이션의 수입금지 조치에 거부권 행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은 중국에 이어 세계 최대의 소비 시장입니다. 그런데 ‘세계의 공장’은 미국이 아닌 중국과 동남아에 몰려 있습니다. 배터리 산업도 마찬가지 입니다. 전세계에서 생산된 배터리 중 80%는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 생산됩니다.

출처: (자료=Benchmark Minerals Intelligence)
미국 내 주요 배터리 생산기지 현황.

글로벌 배터리 업체 중 미국에 공장을 보유한 곳은 4곳밖에 없습니다. 파나소닉과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이 주요 업체입니다. 중국 AESC도 미국에 배터리 공장을 보유하고 있지만, 규모는 3GWh(기가와트 아워) 수준으로 크지 않습니다. 결국 파나소닉과 한국 업체 뿐인 거죠.


파나소닉은 미국 네바다에 배터리 생산공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생산능력은 연간 37GWh입니다.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배터리로 전기차 148만대를 만들 수 있죠. 파나소닉 미국 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는 전량 테슬라로 납품됩니다. 테슬라는 미국 프리몬트 공장에 10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이 공장도 역시 테슬라에 납품되는 물량입니다.


결국 미국 내 ‘비테슬라’ 업체에 들어갈 물량은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도맡아 생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시간주에 배터리 생산공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캐파는 연간 8GWh로 전기차 32만대를 생산할 수 있죠.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완성차 업체 GM과 함께 오하이오주에 30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2022년부터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배터리는 GM에 납품되죠.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조지아주에 2개의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1공장은 올해부터 가동되며, 2공장은 2023년 양산을 시작합니다. 두 공장의 캐파를 합산하면 20GWh로 전기차 80만대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각축전을 벌이는 시장입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등 국내 완성차 회사를 비롯해 △포드 △BMW △폭스바겐 △GM △피아트크라이슬러 오토모빌스(FCA) 등 글로벌 업체의 생산공장이 들어서 있죠. 하지만 이들 공장은 완성차의 부품을 멕시코 등 곳곳에서 수입해 조립만 합니다.


전기차의 심장은 배터리입니다. 원가의 30% 이상을 배터리가 차지하죠. ‘전기차 시대’를 맞아 전기차를 선호하는 미국인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BNEF(Bloomberg New Energy Finance)가 2019년 발표한 전기차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세계에서 3번째로 전기차 수용도가 높은 시장으로 부상할 예정입니다. 2040년 전기차 판매 비중은 60%까지 증가할 전망입니다.


배터리 업체 중 절반은 중국 업체입니다. 점유율 기준 글로벌 10위의 배터리 업체 중 중국 업체는 5곳(CATL, BYD, AESC, CALB, Guoxuan), 한국 업체는 3곳(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삼성SDI) 있습니다. 일본 업체는 파나소닉과 PEVE입니다. 만약 미국에서 직접 전기차용 배터리를 생산하지 않고 수입해 쓴다면 미국은 중국의 성장을 간접적으로 지원하게 됩니다. 미국인의 ‘돈’으로 중국의 성장을 지원하는 꼴이 되죠. 미국이 중국을 자국의 이익을 위협하는 나라로 간주하는 건 익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가 한 예죠.니다.

출처: (자료=SNE리서치 및 각사 등)
글로벌 배터리 업체 점유율 및 캐파 현황.

이 같은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ITC의 판결을 수용한다면 미국의 전기차 전환 정책은 제동이 걸릴수밖에 없습니다. SK이노베이션이 LG와 합의를 하지 않는다면 미국 시장에서 영업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남부 지방의 전기차 밸류 체인에 상당한 차질이 발생할 수 있죠.


서부 지방에 공장을 지은 파나소닉은 테슬라와 공고한 협력 관계를 맺었고, 동부에 공장을 확보한 LG에너지솔루션은 GM과 협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포드 및 폭스바겐과 협력 중입니다.


현재 미국은 배터리 생태계가 워낙 위축돼 SK이노베이션을 제외한 ‘복안’을 찾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이비스 월드(IBIS 월드)에 따르면 미국의 배터리 시장은 약 100억 달러(한화 11조원) 규모입니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미국의 배터리 산업은 5%씩 축소됐습니다. 미국에는 클라리오스(옛 존슨콘트롤즈델코배터리)와 에너자이저 등 자국 기업의 공장이 있습니다.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이 10위 안에 드는 업체는 한 곳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중국에 손을 내밀 수도 없고, 중국도 미국 정부의 제재라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공장을 짓기 어렵죠. 결국 한국 및 일본 기업과 협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출처: (자료=IBIS WORLD)
미국의 배터리 산업 보고서.

둘째,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로 정권 교체 후 ‘넷 제로’ 페달을 다시 밟고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9일 파리 기후 협약에 복귀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 당시 이 협약에서 탈퇴했는데, 미국은 다시 전 세계와 함께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나서게 됐죠.


바이든 대통령은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을 전혀 없게 하는 ‘넷 제로’를 실현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2035년까지 친환경 에너지사업에 2조 달러(한화 2000조)를 투자할 계획입니다. 전기차 충전소 50만개를 짓고, 전기버스를 도입할 계획도 밝혔죠. 전기차 구매에 보조금을 지원해 내연기관 차량을 순차적으로 퇴출하고 있습니다.


넷 제로의 핵심은 에너지원입니다. 전력 생산부터 소비 단계까지 친환경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수소용 에너지와 가정용 에너지, 산업용 에너지를 화석연료(석탄, 석유, 천연가스)에서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바꿔야 하죠. 풍력과 수력, 태양광을 통해 얻은 에너지를 ESS(Energy Storage System)에 저장하면 전력이 필요한 시기 공급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2019년 PG&E의 강제 단전 조치와 2021년 텍사스주의 정전 사태로 분산형 발전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원전과 화력발전소 등 집중형 발전에서 ESS 같은 분산형 발전으로 전환하는 게 대안으로 꼽힙니다.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기업은 전 세계 ESS 시장의 절반 이상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현재 테슬라는 ‘파워월(Powerwall)’ 제품을 출시하면서 북미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가정용 ESS인 ‘RESU’를 출시했죠. 삼성SDI는 일찍이 미국 발전사업자와 ESS 수주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SK이노베이션도 과거 사업성 이유로 중단했던 ESS 사업을 재개했습니다.


에너지 컨설팅 기업인 우드 맥켄지(Wood Mackenzie)에 따르면 미국의 ESS 시장은 2018년부터 연 평균 200%가 넘는 성장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가정용 ESS 시장도 커지는 추세입니다. ESS는 여러개 모으면 발전소 역할까지 할 수 있는 점에서 ‘넷 제로’ 시대의 핵심 제품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ESS 시장은 안전의 위험성이 있는 만큼 다양한 기업이 진출해 경쟁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넷 제로 시대에는 수송용 에너지 또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에너지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내연기관 차량의 비중은 줄이고, 전기차 또는 수소전기차가 늘어나야 합니다. 2025년 미국 전기차 시장은 165만대로 집계됩니다. 매해 연 평균 26.7%씩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죠. 딜로이트 안진에 따르면 2030년 미국의 점유율은 14% 가량입니다. 중국은 49%, 유럽은 27% 가량으로 전망됩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4일(현지시간) 행정명령을 통해 반도체와 배터리 등 주요 산업 품목의 공급망(Supply Chain)을 검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위기 상황에서 필요로 하는 중요한 제품이 부족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며 “일련의 중요 제품을 미국 영토로 이전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공급망을 보호하는 근본적인 개혁을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방 정부의 전권을 활용해 주요 제품 공급망의 미국 내 제조 능력을 제고할 것 △미국의 위기 및 국가안보에 필요한 포괄적 접근 방식을 구현할 것 △동맹국과 협력해 미국 수출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것 △연방정부 전권을 활용해 국내 제조 역량을 재구축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바이 아메리칸’ 행정명령을 통해 연방정부 예산은 미국 노동자가 미국산 부품으로 만든 제품에만 지출토록 했습니다.


세계 최대 규모 소비시장인 미국을 ‘넷 제로’로 바꾸려면 에너지 공급 체계를 친환경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러려면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막대한 금액을 지출해야 합니다. 미국인의 ‘혈세’를 해외에서 생산한 제품을 구매하는 데 사용할 수 있을까요. 바이든 대통령이 연이어 내놓은 행정명령은 배터리 만큼은 미국에서 직접 생산하게 만들겠다는 의지가 읽힙니다.


셋째, SK이노베이션의 공장이 조지아주에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조지아주와 노스캐롤라이나주는 가장 마지막까지 개표를 한 지역입니다. 조지아주는 세 차례 재검표한 끝에 바이든 후보의 승리를 확정했습니다. 조지아주의 선거인단 538명 중 바이든 대통령은 306명을 확보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232명을 확보했습니다. 민주당 후보로는 1992년 이후 처음으로 조지아주에서 승리했습니다. 조지아주와 텍사수주, 오아이오주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후보가 인기가 없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조지아주에서 승리를 거머쥐었죠.


상원의원도 1.2% 포인트의 격차로 라파엘 워녹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죠. 상원의원도 20년 만에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바뀌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조지아주에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공장 설립을 위해 26억 달러(약 3조원)을 투자했습니다. 2600명의 고용 창출 효과가 발생할 예정입니다. 지역 사회에 파생될 경제적 효과는 상당할 전망됩니다.


미국 대통령이 ITC 판결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곳은 미국 무역대표부(USTR)입니다. 미국 무역대표부가 ITC 판결에 대한 권고문을 작성해 백악관에 송달하면, 대통령이 이를 토대로 거부권 행사 여부를 판단하죠.

출처: (사진=USTR)
미국 USTR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대표.

USTR 대표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입니다. 그는 미국의 대표적인 통상분야 전문가로 보호무역론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1980년대 일본 제품이 미국 전역을 휩쓸 때 슈퍼 301조를 발휘해 자국 산업을 보호했습니다. 슈퍼 301조는 교역대상국에 대한 차별적인 보복을 가능하도록 한 조항으로 부시 행정부에서 폐기됐습니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대표적인 ‘오프쇼어링(기업이 경비 절감을 위해 해외로 이전하는 현상)’ 반대론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트럼브 행정부 당시 “오프쇼어링의 시대는 끝났다” 며 “일자리를 다시 미국으로 가져오라”며 리쇼어링(해외로 이전했던 기업이 생산기지를 자국으로 옮겨 오는 현상)을 강조했습니다.


ITC의 판결문을 볼 때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을 침해한 건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번 현안은 정치적 판단으로 판가름날 전망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는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해 다뤄질 전망입니다. 오는 4월 SK이노베이션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관심이 쏠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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