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포 고발했더니 '투명인간' 취급" 카카오의 그늘

조회수 2021. 2. 22.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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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질 게 터졌다’는 생각입니다.” 5년차 카카오 직원 김아무개(30대·익명)씨의 말이다. 이 직원은 <블로터>와의 인터뷰에서 “‘이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냐’는 질문에 대한 결과는 이전까지는 조직장에게만 제공됐지만, 2년 전부터 당사자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며 “나를 싫어하는 사람의 숫자만 나오고 객관적인 이유를 알 수 없다 보니 자괴감을 갖는 직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달 카카오 직원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가 직장인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오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카카오의 인사평가 방식을 비판하는 직원들의 추가 폭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어서다. 상위평가가 유출돼 조직장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주장도 잇따랐다. 카카오가 단기간 급성장을 이루면서 ‘꿈의 직장’으로 여겨지고 있는 데 반해, 조직 관리에는 미흡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카카오는 수평적인 문화·호칭을 도입하면서 성장해왔지만 현재는 직원이 1만명 이상일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카카오 직원으로 보이는 이는 블라인드에 “수평한 척 해야 하는 극한의 수직 조직”이라고 회사를 평가하는 댓글을 남겼다.

22일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이번 논란은 지난 17일 카카오 블라인드에 유서 형식의 글이 올라오면서 처음 불거졌다. 사내 따돌림을 호소한 작성자는 해당 글에 “지금 삶은 지옥 그 자체”라며 “상위평가에도 썼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지옥 같은 회사생활을 만들어준 당신들을 지옥에서도 용서하지 못한다”고 적었다. 원문은 삭제됐지만 해당 글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다음날에도 카카오 직원으로 추정되는 이가 블라인드에 ‘카카오의 인사평가는 살인입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이 작성자는 “조직장은 본인이 원하는 대로 평가 결과를 산정할 수 있다. 눈 밖에 나면 그 순간부터 지옥이 시작된다”며 “횡포를 적어도 소용없다. 상위평가 내용을 상위조직장이 (조직장에게) 공유해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 중증 우울증을 얻었고 자해시도만 수차례”라고 했다. 특히 “카카오는 동료평가 결과에 ‘이 사람과 일하기 싫습니다’를 수집해 전 직원에게 제공한다”면서 “전사와 비교까지 해주며 ‘당신은 바닥’이라고 짓누른다”고 호소했다. 현재 블라인드에는 고용노동부에 근로감독 청원을 하고 싶다는 카카오 직원의 글도 올라와 있다.


“조직장 횡포 전달했더니 ‘인사불이익’ 줬다”


일부 직원들은 “내부는 곪을 대로 곪았다”, “보상체계·인사시스템은 중소기업 수준” 등의 의견을 내놓으며 회사를 비판했다. 특히 인사평가가 유출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연결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카카오에는 △텔미카카오(인사실장과 실명 상담) △핫라인(윤리규정 위반과 관련해 수사하는 윤리경영팀에서 해당 사안을 검토해 윤리위원회에 회부) △타임즈업TF(성적 괴롭힘 사건 전담) 등의 소통 창구가 마련돼 있다.


익명을 요청한 카카오 직원은 “회사에선 조직운영의 안정을 도모하는 게 먼저라 제보를 하더라도 화해 권고를 위주로 조치하는 편”이라며 “직장 내 따돌림 등은 위계 등 영향력 아래서 벌어지는 사건이라 당사자가 처벌되지 않으면 별 일 아닌 듯이 유야무야 넘어가기도 하고, 고발자라는 낙인이 붙어 조직 이동이 어려워지기도 한다”고 했다.


이전에도 조직장에 의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 대해 처벌을 내린 사례가 있지만, 평가문항을 개선하거나 조직장 개별교육·인선절차 강화 등 후속조치를 취하는 데 있어서는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그는 “단기간에 조직 규모가 방대해지다 보니 조직장에 대한 기본적인 인성교육·자질검증이 이루어지기 보다는 외부 영입 인사나 급히 선임된 조직장이 많아 조직별 문제 양상이 달리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상향평가로 조직장에 대해 평가할 수 있지만, 최상위 조직장이 상위조직장에게 그 정보를 제공해 오히려 인사 불이익을 받는 직원들이 있다”며 “실제로 동료직원이 1차 조직장의 전횡을 상향평가에 적었는데 3차 조직장이 이를 공유해 따돌림을 당했고, ‘내부고발자’라는 꼬리표가 붙어 이동도 어려워지게 된 사례가 있다”고 주장했다.

|카카오 직원이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블라인드 게시글 갈무리.

“당신은 같이 일하기 싫은 사람” 통계로 보여주는 카카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카카오가 동료평가 결과를 일부 공개하는 데 대한 비판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카카오는 연말마다 동료평가를 실시한다. 직원들은 나를 평가하는 동료를 지정할 수 있고, 지정하지 않을 경우 조직장이 임의로 이를 정한다. 문항 가운데는 ‘이 사람과 다시 함께 일하고 싶나요’라는 질문이 포함돼 있다. 평가자는 △함께 일하기 싫음 △상관없음 △함께 일하고 싶음 등을 택한다. 카카오는 2016년 이 문항을 도입, 2019년부터 대상자에게 결과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전사 평균 비율과 직원 개개인이 받은 비율이 함께 보여진다.


카카오 홍보팀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홍보팀 관계자는 “수많은 항목 중에 하나다. 평가 설문을 진행할 때 피드백 효용성이 가장 높다고 응답하는 문항”이라며 “다시 협업할 의사가 있냐는 질문이고, 본인이 스스로를 되돌아 보게 하고 조직장의 (직원) 평가를 돕는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평가는 익명으로 제공되고, 해당 질문 자체가 보상과 평가등급과 직접 연계되지도 않는다”고 강조하며 “평가방식·문항에 대해선 모든 직원들에게 세세하고 투명하게 자료를 제공하고 있고 수시로 개선 의견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카카오 직원은 “개개인이 이 사람과 일을 못하겠다는 것을 통계화해서 보여주면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비율이 소수이고, 다수가 함께 일하고 싶다고 평가했다면 이를 무시하라고 하지만, 한 명의 평가라도 정신적인 압박을 준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 다른 직원은 “회사의 설명과는 달리 직원들로부터 공개적으로 아이디어를 받은 기억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너 싫어’가 아니라 ‘왜 싫어’여야 하는데 지금은 인기에 영합한 평가문항”이라며 “보상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이해하기 어렵다. 평가자가 평가 등급을 내리기 직전 동료와 일하고 싶은 비율을 보여주는 항목이 뜬다. 매뉴얼 상에도 (비율을) 참고자료로 보고 (등급평가에) 산정하라는 내용이 없다”고도 지적했다.


한편, 카카오 노동조합(크루유니온)은 지난 17일 온라인 공개 토론회를 열고 직원들로부터 각종 의견을 수집했다. 70여명이 이 토론회에 참여해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서승욱 카카오 노조 지회장은 <블로터>와의 통화에서 “평가제도가 지속적으로 바뀌어서 문제들이 혼재돼 있는데, 우선 완전한 익명성을 보장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며 “토론회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한 소통을 확대하자는 데 의견이 모였다”고 밝혔다. 그는 “평가와 보상의 연결고리가 떨어진다는 것도 근본적인 문제”라며 “작년 임금협상 하면서 평가제도 논의기구를 만들었는데 올해 이를 강화해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회사에 각종 소통채널이 있긴 하지만 처한 상황에 따라 혼자 사안을 진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을 것”이라며 “노조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씀을 꼭 전해드리고 싶다. 지속적인 의견 수렴을 통해 거버넌스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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