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르노삼성 노조를 '귀족 노조'라 말하는 이들에게..

조회수 2021. 2. 15. 10:3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들은 노조가 다 말아먹는다”


국내 자동차 회사 노조 관련 기사만 쓰면 매번 달리는 댓글입니다. 그만큼 노조에 대한 세간의 시선이 부정적이란 뜻일 텐데요. 그도 그럴게 회사 실적이 나빠도, 또 회사가 사라질 위기에 있어도 때만 되면 급여 올려달라 조르고, 툭하면 파업을 해대니 당연히 이미지가 좋을 리가 없겠죠.


그럼에도 국내 자동차 회사 노조들은 아랑곳 않고 거의 매년 습관적으로 파업을 합니다. 코로나 사태로 모두가 고사 위기라는 작년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한국GM과 기아차가 파업을 했더랬죠. 그리고 해는 바뀌었지만, 코로나는 여전한 올해 역시 파업의 그림자는 점점 짙어지고 있습니다.


이번엔 ‘또’ 누구냐고요? 바로 르노삼성입니다.


르노삼성은 국내 완성차 5개사 중 유일하게 지난해 임단협(임금단체협상)을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를 사측이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 카드로 맞받아치면서 노조가 춘투(春投)를 준비 중인데요.


아니나 다를까 세간의 비판은 오직 노조만을 향하고 있습니다.


“르노그룹은 빨리 한국서 철수해라”, “부산공장이 없어져봐야 노조가 정신을 차린다”, “귀족 노조의 돈타령 지겹다” 등등 세상 모든 비난이 르노삼성 노조를 향해 쏟아지고 있는 건데요.


고작 3년 만에 또다시 파업카드를 내민 데다 아직은 코로나 시국이라 욕을 먹을 만도 한데…

헌데 말이죠.

업계 꼴찌 수준의 연봉, 반면 업계 최고의 노동 강도, 그럼에도 시장점유율 3위의 르노삼성 지위 등을 고려하면, 과연 르노삼성 노조가 이같은 세상 욕을 다 먹어야 할 수준인지, 정말 그들이 귀족 노족 ‘급’이나 되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르노삼성 노조는 한 때 임단협 모범생이라 불릴 정도로 파업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지난 20년 간 파업 횟수라곤 고작 4건에 불과합니다. 현대차가 16번, 한국GM이 11번이라고 하니 르노삼성 노조는 정말 조용히 산 셈입니다.


혹자는 그만큼 근무 환경이 좋은 것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전혀 아닙니다.


위에 언급한 대로 르노삼성의 연봉은 업계 꼴찌입니다. 2019년 기준 르노삼성의 평균 연봉은 7141만원으로, 외자계(쌍용차·한국GM)를 넘어, 국내 완성차 5개 사 통틀어 가장 적은 수준입니다. 단 이 조차도 성과급이 반영된 규모로, 기본급만 놓고 보면 사정은 더 박합니다.


반면 노동 강도는 업계 최고 수준입니다. 지금이야 르노그룹이 물량을 일부 빼면서 좀 줄어들긴 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르노삼성의 부산공장 1라인의 시간당 생산량은 60~66대로, 한국GM 창원공장의 시간당 51대, 쌍용차 평창공장 렉스턴 생산 라인의 시간당 23대 보다 2~3배 더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르노삼성은 인건비가 외자계 최고인 쌍용차, 매출이 2배나 많은 한국GM과 국내 시장점유율 3위를 두고 치열한 접전을 벌여왔습니다. 이들을 밀어내고 단독 3위를 차지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작년은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2019년까진 그래도 꾸준히 영업 흑자를 기록해왔습니다. 줄곧 적자만 낸 다른 두 회사와 달리 말이죠.


그러나 사측은 이런 직원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해준 적이 없습니다. 회사가 최대 실적을 낸 2016~2017년엔 보상은 커녕, 되레 생산라인 인력을 전환배치하고, 외주 인력 배치도 조정키로 하면서 직원들을 황당하게 만들었습니다.


대주주는 한 술 더 떴습니다. 사측의 이같은 태도에 르노삼성 노조가 분이 차 파업이라도 할라치면 부산공장에서 위탁 생산 중인 닛산 로그 물량을 빼겠다 협박했습니다. 닛산 로그는 부산공장 전체 수출 물량의 72%를 차지하는 모델로, 사실상 르노그룹의 핵심 수익원이었습니다. 이를 빼겠다는 건 부산 공장을 닫아버리겠다는 의미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헌데 르노그룹은 노조가 파업을 일으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닛산로그의 물량을 뻈습니다. 그리곤 후속 물량도 배정하지 않았습니다.


박봉의 월급으로 누구 보다 많이 일한 르노삼성 직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허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아끼고 아껴서 회사의 사정이라도 좋아졌냐. 그것도 아닙니다. 판매량도 줄어드는 데 르노그룹이 영혼까지 탈탈 털어가는 터에 르노삼성의 사정은 갈수록 나빠졌습니다.


르노그룹은 ‘배당’이란 명목 하에 르노삼성 이익을 족족 가져갔습니다.

르노삼성이 배당을 시작한 건 2000년 르노그룹에 인수된 이후 7년 만인 2007년부터입니다. 르노그룹은 배당 첫 해 330억원을 시작으로 2009년과 2010년에 각각 208억원, 57억7000만원의 배당금을 챙겨갔습니다. 2011년과 2012년 2000억원 규모의 순손실이 발생하면서 배당이 일시 중단되긴 했지만, 2013년 이익 발생과 함께 르노삼성은 배당을 재개했습니다. 2013년 16억9000만원을 시작으로 2014년 262억원, 2015년에는 1120억원이 르노그룹으로 넘어갔습니다.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한 2016년, 2017년은 르노그룹에 더할 나위 없는 시기였습니다. 2016년엔 역대 규모인 2481억원을 2017년엔 역대 두번째인 1706억원의 배당금을 챙겨갔습니다. 수익성이 나빠지기 시작한 2018년, 2019년 역시 예외는 없었습니다. 2018년엔 1248억원, 2019년에도 387억원을 모두 빼갔습니다.


이렇게 해서 르노그룹이 그간 배당으로 가져간 돈 만 7816억원에 달합니다. 이는 르노그룹의 르노삼성 인수가격인 6150억원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닙니다. 배당 보다 더 ‘찐’ 인게 있습니다.


르노삼성의 2000~2019 회계연도 감사보고서를 보면 르노삼삼성이 지난 20년간 르노그룹에 차량 부품 매입비·기술 사용료·연구비·용역수수료·광고비 등으로 지급한 금액만 모두 13조원에 달합니다. 2019년 만해도 총 1조 1400억원으로, 그 해 영업이익의 7배나 달하는 수치입니다. 어마어마 하죠.


그만큼 르노그룹이 르노삼성에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글쎄요. 쌍용차 대주주인 마힌드라가 지난 9년 간 쌍용차에 총 6925억원을 투자하는 사이, GM이 한국GM에 3조 900억원을 투자하는 동안 르노그룹이 르노삼성에 투자했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닛산 로그 물량을 빼면서 부산 공장의 경쟁력을 위축시켰고, 그로 인해 나빠진 실적을 르노삼성 노조의 파업 탓으로 몰아갔죠. 최근엔 노조가 다시 파업 모드에 들어서려 하자 닛산 로그의 후속 모델인 XM3 생산비를 들먹이며 또다시 ‘물량 빼기’ 위협 전략을 쓰는 모습입니다.


물론 모회사가 자회사에 대해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챙기려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실적에 맞게 직원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제공하는 것 또한 모회사가 해야 할 일이죠.


제대로 된 보상도 없이 오로지 희생만 강요하는 모기업과 사측에 여러분은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업계 꼴찌라도 매월 꼬박 꼬박 월급을 받는 귀족 노조니 참고 인내하시겠습니까?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