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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 시대 '퍼스트 무버' 한국퓨얼셀 추락의 의미

조회수 2021. 1. 23. 14: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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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탄소 순배출량을 전혀 없게 하는 ‘넷 제로’가 산업계의 화두로 부상했습니다. 환경을 오염시키는 방식의 생산 체계는 인류의 영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에너지는 넷 제로를 구성하는 핵심축입니다. 철강업과 정유업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산업입니다. 이들 산업은 온실가스를 필연적으로 배출합니다. 여타 제조업도 넷 제로에 동참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제조업 공장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또 설비를 돌리는 데 막대한 양의 전기를 필요로 합니다.


‘넷 제로’ 시대에는 공장까지 친환경 에너지로 돌려야 합니다. 가장 유력한 에너지원은 수소입니다. 자연 또는 부생물질로 얻은 수소를 연료전지에 탑재하면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아마존과 월마트 등 글로벌 유통기업들은 자사의 지게차 등에 수소 연료전지를 탑재하고 있습니다.

출처: (사진=한국퓨얼셀)
한국퓨얼셀 연료전지 발전소.

국내 기업들도 수소 연료전지를 활용한 발전시설을 구축했습니다. 대산그린에너지와 경기그린에너지는 두산퓨얼셀과 한국퓨얼셀(옛 포스코에너지)이 수소 연료전지를 공급해 건설한 발전소입니다. 대산그린에너지는 세계 최대 규모의 수소 연료전지 발전소로 16만 가구가 넉넉하게 사용할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를 보면 ‘수소 경제’ 시대가 성큼 다가온 느낌입니다.


하지만 ‘수소 경제’의 진행 과정을 보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한국퓨얼셀의 사례를 보면 수소 경제로 전환이 쉽지 않은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지분 투자나 MOU 등을 추진하는 회사라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점도 많습니다.


한국퓨얼셀은 국내 최초 연료전지 회사로 2007년부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업계 1위인 두산퓨얼셀보다 7년 먼저 연료전지를 만들었습니다. 두산퓨얼셀은 2014년 미국 퓨얼셀파워를 인수하면서 이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점유율은 두산퓨얼셀이 64%로 1위이고, 한국퓨얼셀은 25%로 하락했습니다. 불과 6년 전까지 한국퓨얼셀의 점유율은 90%에 달했는데 역전됐죠.


한국퓨얼셀은 미국 퓨얼셀에너지로부터 연료전지 생산기술을 이전받아 국산화를 추진했죠. 포스코에너지는 2007년 사업보고서를 통해 “연료전지는 수소 사회의 핵심 발전설비로 무한한 성장 가능성이 기대된다”고 밝혔습니다. 같은해 10월 281억원을 들여 포항에 연료전지 생산공장을 지었습니다.


한국퓨얼셀은 2012년 신재생에너지의무화제도(RPS)가 시행되면 연료전지 사업에 속도가 붙을 것을 내다봤습니다. RPS는 500MW 이상의 발전설비를 보유한 발전사업자들이 발전량의 일정부분을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도록 한 제도입니다.


한국퓨얼셀은 당시 연료전지 시장이 ‘퍼스트 무버’로 국내에서 90%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RPS 등으로 시장이 커진다면 오롯이 한국퓨얼셀이 수요를 챙길 수 있을 것이라고 본거죠. 사업 초창기인 2008년 138억원에 달하던 매출은 2014년 2097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사업을 시작한 지 6년 만에 매출이 15배 이상 커졌죠.

출처: (자료=금융감독원)
한국퓨얼셀 연료전지 매출 추이,

한국퓨얼셀은 연료전지를 판매하면서 구매자와 장기간 유지보수 등을 제공하는 장기서비스 계약(LTSA)을 체결했습니다. 국산화에 성공하기 위해 연료전지 셀과 스택, BOP 등을 개발했습니다. 2018년까지 노을그린에너지와 벽산엔지니어링 등 20여 곳에 연료전지(160.6MW)를 공급했습니다.

연료전지 사업은 ‘장밋빛’ 전망이 넘쳐 보였습니다. 하지만 13년이 지난 지금 사실상 사업 중단을 우려할 정도로 전망이 악화됐습니다. ‘퍼스트 무버’였던 한국퓨얼셀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그리고 앞으로 연료전지 사업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미국 퓨얼셀에너지는 지난 6일 대표이사의 발표문을 통해 포스코에너지(한국퓨얼셀 포함)와의 협력을 끝내겠다고 밝혔습니다. 제이슨 퓨 퓨얼셀에너지 대표이사는 “당사는 포스코에너지의 연료전지 사업 분할로 양사의 관계에 혼란이 있다고 판단한다”며 “당사는 포스코에너지와의 관계를 종료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퓨얼셀에너지는 한국퓨얼셀에 융용탄산염 연료전지 모듈(MCFC)을 판매하지 않고 기술이전도 제공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포스코에너지와 퓨얼셀에너지가 13년 간 이어온 협력 관계에 사실상 종언을 고한 것입니다.

출처: (자료=포스코에너지 등)
한국퓨얼셀 연료전지 사업 일지.

포스코에너지는 2007년 퓨얼셀에너지에 2900만 달러(한화 320억원)를 투자해 5.6%(382만주)의 지분을 확보했습니다. 포스코에너지는 MCFC 연료전지의 기술이 없어 로열티를 지불하기로 한거죠. 대신 포스코에너지는 아시아 시장 내 연료전지 판매와 관련한 독점권을 확보했습니다. 이후 5500만 달러(607억원)를 추가로 투자해 보유 지분을 10.5%로 늘렸습니다.


양사가 불협화음을 내기 시작한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3년 상업가동을 시작한 경기그린에너지에서 문제가 시작됐습니다. 수소 연료전지의 핵심 부품인 스택이 설치한 지 2년 만에 품질에 하자가 발생했습니다. 스택은 수소와 공기를 반응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장치입니다. 경기그린에너지는 포스코에너지 측에 품질 문제를 제기했고, 포스코에너지는 품질을 개선할 때까지 연료전지를 생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92명에 달하던 연구인력은 40명으로 축소됐습니다. 국산화를 위해선 연구개발에 많은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데, 오히려 R&D 분야를 대폭 축소했죠.


당시 포스코에너지의 연료전지는 적자를 보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팔아도 문제가 될 제품을 판매할 바에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판매를 중단한 거죠. 퓨얼셀에너지에 지급해야 할 로열티도 한몫했습니다. 퓨얼셀에너지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당시 정부는 연료전지 발전소 설립을 연이어 허가했습니다. 퓨얼셀에너지는 연료전지 수요가 생겼음에도 포스코에너지가 판매를 않는 게 불만이었죠.


포스코에너지는 퓨얼셀에너지의 지분 가치가 하락하면서 875억원의 손실(손상차손)을 입었습니다. 연료전지 사업의 적자는 갈수록 불어났죠. 포스코에너지는 2018년 퓨얼셀에너지 주식 130만주를 처분했습니다. 2019년 50만주를 처분했고, 같은해 5월 주식병합(병합비율 12:1)으로 6만3794주(0.2%)를 남겨 놓은 상황입니다.


포스코에너지는 같은해 11월 연료전지 사업의 전문성을 강화하겠다며 물적분할해 한국퓨얼셀을 설립했습니다. 포스코에너지는 “연료전지 사업에 적합한 경영시스템을 확립하고 해당 사업의 전문성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퓨얼셀에너지는 포스코에너지의 연료전지 사업 분할을 문제 삼았는데요. 사실상 양사의 협력 관계가 끝난 만큼 물적 분할 이슈가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이보다 중요한 건 한국퓨얼셀이 연료전지 사업을 영위할 의지가 있는지가 중요해 보입니다. 재무제표를 보면 연료전지 사업에 의지는 없어 보입니다.


포스코에너지는 2019년 11월 한국퓨얼셀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신설 회사에 현금을 전혀 넘기지 않았습니다. 신설 회사는 현금성 자산이 0원인 상태로 출범했는데요. 신설회사는 전체 자산 중 54.1%가 재고자산이었습니다. 전체 자산 중 22.4%는 공장 설비 등 유형자산으로 집계됐습니다.

출처: (자료=금융감독원)
한국퓨얼셀 물적분할 전후 재무 비교.

신설회사의 부채비율은 98.8%, 유동비율은 175.2%입니다. 재무 수치만 보면 여타 기업과 다를 게 없지만, 실제로는 빚도 현금도 없이 재고만 있는 회사인 거죠. 포스코에너지의 분할 목적대로 연료전지 사업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하고, 자체적으로 보유한 현금도 있어야죠. 한국퓨얼셀이 지난해 4월 공개한 2019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현금은 53억원, 단기차입금은 250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이전보다 재무 활동이 활발해진 것으로 보입니다만 사업의 지속성을 확신할 정도는 아닙니다.


포스코그룹은 지난해 12월 보도자료를 통해 “연간 수소 500만톤 생산체계를 구축해 탈수소시대를 선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보도자료에는 포스코그룹의 수소 사업 계획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퓨얼셀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연료전지 사업을 확대하기 위한 계획은 빠져 있었습니다.

출처: (사진=포스코)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한국퓨얼셀은 그룹 내에서 수소 사업을 가장 먼저 나선 계열사입니다. 그럼에도 그룹의 ‘수소 경제’ 전략에는 빠졌죠. 이를 보면 포스코그룹이 연료전지 사업을 지속할 것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현재 SK그룹과 한화그룹 등 수소 경제의 후발주자들이 앞다퉈 수소 사업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두 대그룹은 해외 기업 M&A와 지분 투자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두 대그룹은 한국퓨얼셀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양사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맞아 시작한 사업도 앞날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수소는 채산성(발전 단가)이 낮은 에너지원이며, 저장과 이동이 매우 어렵습니다. 여전히 불확실성 투성인 분야죠. 수소는 미래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가치가 충분하지만 상품화하기에는 넘어야 할 장벽이 많습니다. 수소를 신사업으로 삼았다면 한번쯤 한국퓨얼셀의 역사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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