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기지국 화재, 피해가 컸던 이유?

조회수 2018. 11. 27. 10: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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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 인프라의 역설

지난 11월24일 서울 북서부 지역 일대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KT에서 제공하는 휴대전화, 유선전화, IPTV, 인터넷 서비스 등이 먹통이 됐으며, 상가에서는 전산처리 포스 기기와 카드 결제 단말기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KT 아현지사 통신관로(통신구)에 불이 나면서 통신 장애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유·무선 통신 케이블을 한데 모아서 지하에 매설한 통신관로가 타버리면서 시민들의 생활 일부도 멈춰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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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용산구, 마포구, 중구, 은평구 일대 및 경기 고양시 일부 지역에서는 망과 단절된 사람들의 불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이 터지지 않으니 게임 같은 여가 활동부터 송금을 비롯한 생활 서비스까지 막혔고, 상가에서 커피나 음식을 사 먹기 위해 현금을 급하게 뽑아야 했습니다. 전화나 문자가 안 돼 약속을 잡는 일도 버거웠고, 심지어 일부 병원 업무와 용산·서대문·마포 경찰서의 112 신고 시스템도 마비됐습니다. 불은 10여 시간 만인 24일 밤 9시30분경 완전히 꺼졌지만, 화재 발생 3일째인 26일까지 피해가 이어졌고(26일 18시 기준, 인터넷 회선 98%·무선 86%·유선전화 92% 복구) 완전 복구까지는 일주일 정도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유선으로 연결되는 무선 세상


타버린 통신구는 79m인데 피해는 적게는 수십만명에서 많게는 수백만명이 입었습니다. 이처럼 피해가 컸던 이유가 뭘까요? 우선 통신망의 특성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터넷은 무형의 서비스 같지만 사실 거대한 규모의 전선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통신 인프라는 서비스 뒤편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문제가 일어났을 때 존재를 드러내고, 다른 사고와 마찬가지로 유지·보수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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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망은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통신국사’라 불리는 지역 거점 단위로 구성됐습니다. 사람의 몸에 뻗은 혈관처럼 통신망도 전국 단위로 뻗어나가는데 이번 화재는 통신국사 중 하나인 KT 아현지사에서 발생했습니다. 서울 서대문구, 중구, 마포구 지역으로 연결되는 케이블의 허브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아현지사에는 전화선 16만8천회선, 광케이블 220조(전선 뭉치 단위)가 설치됐습니다. 모든 사물이 무선으로 연결되는 5G 초연결 시대가 코앞에 왔다고 하지만, 반대로 밑바닥의 ‘선’이 잘못되면 생활이 마비될 수 있다는 역설을 이번 사건이 보여줬습니다.


관리 사각지대 놓인 KT 아현지사


국가나 통신회사도 통신망 인프라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 통신망이 훼손되더라도 다른 망을 거쳐 우회해 통신이 끊기지 않도록 이중화 작업을 합니다. KT 통신망에서 주요 거점 역할을 하는 혜화나 구로지사는 국가기반 시설로 지정돼 매년 정부의 안전 점검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번 화재가 발생한 KT 아현지사는 이중화 작업에서 비껴가 있었습니다. 정부는 통신망 관리 거점인 통신국사를 전국망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에 따라 A, B, C, D 4개 등급으로 나누는데, 아현지사는 D등급으로 분류돼 A~C등급까지 의무화된 이중화 백업체계가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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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는 전국 56개 통신국사를 운영 중인데 이 중 아현지사 같은 D등급 통신국사는 27곳입니다. SK텔레콤·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모든 통신사를 아우르면 D등급 통신국사는 835개에 달합니다.


전문가들은 기준이 모호한 등급체계와 이에 따른 관리의 허술함이 피해를 키웠다고 얘기합니다.


KT 아현지사 통신구가 소방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현행 소방법은 지하구 길이가 500m 이상인 수도·전기·가스 등이 집중된 ‘공동지하구’에 스프링클러·화재경보기·소화기 등을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합니다. 하지만 아현지사 통신구는 통신 케이블만 설치된 ‘단일지하구’였으며, 길이도 150m로 화재 방지시설 설치 의무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재발 방지 대책은?


이번 사태에 대해 정부는 전국 주요 통신시설 관리 실태를 전수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6일 과기정통부와 통신사, 전문가가 통신재난 대응 TF를 꾸려 전국 주요 통신시설 관리 실태를 전수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통신재난 방지·수습 대책을 연내 수립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TF는 모든 통신사가 운영하는 A, B, C, D 등급 전체 통신국사에 대해 백업망과 소방시설 등을 종합 점검할 계획입니다. 관리에서 비껴갔다고 지적받았던 D등급 통신국사도 점검 대상에 포함시켰습니다.


정부는 기능 중심으로 분류된 통신국사 등급 기준을 설비 규모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개편하는 방안도 검토합니다. 또 소방법 의무 대상에서 빠져있는 길이 500m 미만 통신구에도 통신사와 협의해 CCTV와 스프링클러 등 화재 방지시설을 설치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통신망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통신사 간 우회로를 확보할 수 있도록 ‘위기상황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시나리오별 매뉴얼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KT는 과기부와의 논의를 바탕으로 전국 네트워크 시설 특별점검 및 상시점검을 강화하고, 의무지역이 아닌 통신구에도 CCTV와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향후 재해 발생 시 통신 3사간 로밍 협력과 이동 기지국 및 와이파이를 상호 지원하는 등 협력 방안도 마련하겠다고도 전했습니다.


한편, 화재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관계 당국은 방화나 실화로 불이 났을 가능성은 적다고 밝혔습니다. 피해보상과 관련해서는 진통이 예상됩니다. KT는 이번 화재로 인해 피해를 본 KT 유선 및 무선 가입 고객을 대상으로 1개월 요금 감면을 시행하겠다고 밝혔지만, 피해 대상 지역 거주 고객 중심으로 보상할 계획이어서 거주지역 외 피해 고객의 반발이 예상됩니다. 소상공인 피해 보상과 관련해선 고객 상담 TF를 운영하며 배상 방안을 검토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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