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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모빌리티 산업, 이대로 가면 죽음의 계곡"

조회수 2018. 11. 25. 1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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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원 연구위원은 사람들이 승차공유를 원하는 이유는 가격이 아닌 서비스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 모빌리티 산업은 갈라파고스 정도가 아니라, 죽음의 계곡이 될 것 같습니다.”


수 년간 국내 승차공유 시장은 제자리를 걸었다. 지난 2014년 우버가 불법으로 규정된 이후 콜버스, 풀러스, 차차 등 여러 국내 승차공유 스타트업이 등장했으나 번번이 규제에 막혀 힘을 쓰지 못했다. 카카오택시로 택시호출을 잡은 카카오가 지난 달부터 카풀 기사 모집에 나서면서, 국내 승차공유 시장의 규제 빗장이 열릴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택시업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택시 4단체는 지난 달 카풀 반대를 외치며 전국적인 파업을 벌인 데 이어 11월22일 ‘제2회 택시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를 열고 국회에 카풀 전면 금지 법안을 요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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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차두원 연구위원은 총리실 산하 신산업규제혁신위원회의 신서비스분과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주종목은 ‘모빌리티’다. 대학에서는 자동차 인간공학을 연구했고 이후 자동차 일본자동차연구소 방문연구원, 현대모비스 연구소 HMI 팀장을 역임한 바 있다. 최근 전세계 모빌리티 혁명에 관해 저술한 책은 출간을 앞두고 있다. 모빌리티 산업에 해박한 그를 만나 국내 승차공유 관련 규제와 서비스 도입의 필요성을 톺아봤다.

 

규제, 소비자 접근성 관점에서 바라봐야


“우리나라 소비자는 선택권이 너무 없어요. 경제 규모가 비슷한 나라에 비해서 소비자 선택권이 제한돼 있습니다. (서비스를) 규제했을 때 소비자가 얼마나 피해를 보고 있는지를 ‘규제비용’이라고 하는데, 보이지 않는 비용이 발생하고 있는 겁니다.”


택시업계는 카풀 도입이 택시종사자의 생존권을 침해하고, 교통 생태계를 파괴하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승차공유 서비스는 소비자 선택권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게 차 위원의 생각이다. 사용자 관점에서만 보면 서비스 만족도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우버 같은 승차공유 서비스는 승차거부가 없고 친절하며 대부분 차량 내부도 깔끔하다. 승객이 기사에게 별점을 매길 수 있어 알아서 관리되기 때문이다. 지도를 따라 앱 내 자동결제 등이 지원되고 사용자 경험도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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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경제의 골자는 ‘서비스 접근성’에 있다. 차 연구위원은 “소유에서 공유로, 그건 너무 큰 얘기다. 공유경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장소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라며 “(서비스를) 보면 저렴한 가격이 아니다. 가격을 좀더 지불하더라도 원하는 것을 한다는 욕구와 바쁜데 시간을 절약한다는 것, 그 두 가지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VCNC가 내놓은 렌터카 포함 대리기사 호출 서비스 ‘타다‘가 좋은 예다. 타다는 택시보다 20% 비싼 요금을 내는 대신 편안한 승차 경험을 보장한다. 차별화된 서비스를 내세운 타다는 출시 1개월 만에 앱 다운로드 10만건을 돌파했다. 이처럼 승차공유 시장은 소비자에게 ‘이동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게 핵심이다.


택시업계는 일자리가 흔들린다고 호소한다. 열악한 처우로 지금도 고통 받고 있는데, 그 수익마저 카풀로 쪼개질까 우려하는 거다. 택시기사 평균 연령대는 60~70대다. 택시라는 생계수단이 흔들리면, 삶이 흔들린다. 이들이 생존권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다.


차 연구위원은 “개인택시 기사는 라이선스에 막대한 자금을 내고 거래를 한다. 연령도 대부분 높아서 택시에 목숨을 걸고 있는 터라 반발은 불가피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럴 때 정부부처의 역할이 타협점을 찾아주는 거다. 그게 지금 잘 안 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새로운 산업이 기존 산업과 흔들릴 때, 중재안을 내놓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라는 얘기다.


“법은 국회의원의 힘이고 밥줄입니다. (국회가) 움직이지 않는 이유죠. 어떤 국회의원은 ‘우리 표밭인데 그걸 누가 하겠냐’고 하더라고요. 못 바꾸고 안 바꾸니까 디지털 시대에 살면서도 산업화 시대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카풀 시작되면 택시가 사라질까


소비자는 때로는 관성에 따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새로운 서비스가 나온다고 해서 모두가 그 서비스로 옮겨갈까. 단정할 수는 없다. 또 중국이나 미국에서 잘 된 서비스에 한국 소비자들 역시 열렬한 호응을 보내리라는 보장도 없다. 중국을 휩쓴 공유자전거 업체들이 지난해 말 한국에 상륙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언론은 우려를 쏟아냈지만, 정작 시장 반응은 무관심했다.



차 연구위원은 흔히 말하는 ‘퍼스트 마일’, ‘라스트 마일’을 논할 때 도시의 지형, 도시 정책, 기존 사람들의 교통수단 이용 패턴 등에 따라 서비스의 흥망이 결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샌프란시스코에서 우버나 공유자전거 스타트업이 확산될 수 있던 이유는 대중교통이 좋지 않고 언덕이 많았기 때문이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많이 이용해왔다. 자기 소유의 자전거로 이동하는 게 익숙하기 때문에, 유럽의 공유자전거는 관광객용에 가깝다. ‘공유자전거 천국’이라 불리는 중국은 어떨까. 차 연구위원은 “중국은 정말 깜짝 놀랐다. 심천 갔는데 나무가 (버려진) 공유자전거를 안고 자라더라”라며 “(중국 공유자전거 성장은) 국가자본주의 때문이다. 정부에서 어떤 정책을 펴면 그대로 확 펼쳐지는 환경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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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서 공유자전거가 자리를 잡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자전거가 교통수단이 아니라 취미생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서울 등 대도시는 대중교통이 촘촘하게 깔려 있어 자전거가 크게 필요하지 않은 면도 있다.


같은 맥락에서 국가마다 택시 면허의 특성, 수송 서비스의 수준 등이 다르기 때문에 우버형 서비스의 성공 여부도 다를 수 있다. 차 연구위원은 “체코 같은 경우도 택시 운전할 때 자격요건이 없어서 운전기사로 진입이 쉬우니까 오히려 (우버가) 잘 안 된다”라며 “들여오고 아니면 접으면 되는데 진입이 원천 차단돼 있는 거다. 서비스를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그게 또 안 될 수도 있는데 시도를 할 수조차 없다”라고 지적했다.

 

카풀 너머, 자율주행 시대


택시의 자리를 위협하는 게 카풀뿐일까. 운전대는 이미 로봇에게 넘어가고 있다. IT기업과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은 자율주행 기술을 내세워 승차공유 시장에 진출하는 추세다. 다임러는 2014년 택시호출 앱 ‘마이택시’를 인수했고, 내년부터는 일부 사용자를 상대로 자율주행 무상운송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GM 자회사 크루즈 오토메이션은 내년부터 자율주행 차량호출 서비스를 시작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고, 구글 웨이모는 당장 다음 달부터 자율주행차로 유상 운송에 나설 전망이다.


차 연구위원은 “(승차공유는) ‘도어 투 도어’로 가기 전 단계의 목표다”라며 “기본적으로 공유자전거, 카 셰어링 업체들, 외국 완성차 업체들이 차량공유 서비스를 운영하는 이유도 결국 자율주행 시대 운영 네트워크로 삼을 수 있는 빅데이터를 수집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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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은 운수업종의 소멸을 예고한다. 이에 대해 차 연구위원은 “기술의 발전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로봇으로) 바뀌는 건 아니라 수용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며 “전철도 분당선을 시작으로 무인운전이 시작됐는데 아마 택시기사가 은퇴를 하고 나면 인력을 새로 뽑지는 않는 구조로 가지 않을까 한다”라고 예상했다.

우물 밖은 ‘로봇택시’가 달릴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승차공유 규제 빗장을 걸어둔 것은 물론, 공유경제가 세계적인 화두가 된 지 오래임에도 정부부처간 ‘공유’에 대한 정의조차 통일되지 않은 상황이다. 시대의 흐름과는 크게 동떨어져 있다. 차 위원은 “우리나라 정부나 기업은 하드웨어에 너무 집착하는데, 지금은 서비스 시대다”라고 꼬집었다.


“한국은 인터넷 강국이라고 얘기하고 세계 최고 테스트베드다, 얼리어답터다, 그렇게 얘기했는데 이제는 그런 경험마저 차단이 됐습니다. ‘해외에서 되는 거 왜 한국에서는 안 돼?’ 그거 하나로 한국이 후진국이 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서비스와 혁신을 경험한 세대가 또 다른 혁신을 만들고 글로벌 진출의 기회를 만들 수 있는데 우리는 딛고 넘어갈 경험을 할 수 없다는 게 지금 가장 큰 문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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