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프로젝트? 프로덕트부터 만들어야"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의 묘(妙)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블록체인은 사람들의 참여를 엔진 삼아 작동합니다. 인간 개입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기술 발달사에서 튀는 녀석이죠. 자동화 기술이 인간을 생산 프로세스 밖으로 밀어내고 인공지능(AI)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블랙박스 영역을 넓혀갈 때, 블록체인은 사람을 끌어안습니다. [한수연의 블록체인, 이 사람] 시리즈는 블록체인을 특별하게 만드는 바로 그 요소, ‘사람’에 집중합니다. 블록체인 씬(scene)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기록하겠습니다.
현재 블록체인 씬에서 가장 유의미한 숫자는 이곳에 들어온 투자금 액수다. 그 외 지표들은 아직 초라한 수준. 가장 잘 알려진 디앱(DApp) ‘크립토키티즈’ 조차 일일 활성 사용자 평균이 400명에 미치지 못한다. 주류 시장의 기존 사업자들 입장에서 실패라고 진단해도 이상하지 않을 숫자다. 디앱들은 확장성, 프라이버시, 저장 공간, 상호 운용성 등 문제로 주류 시장에 채택, 편입되지 못한 채 그들만의 전성기를 쓰고 있다.
조이슬 퍼셉트라(Perceptra) 대표의 고민이자 직접 풀려는 과제다. 그는 이 과제를 직접 풀기 위해 블록체인 액셀러레이터 ‘퍼셉트라’를 준비하고 있다.
블록체인 버전 ‘린 스타트업’ 쓰는 게 목표
퍼셉트라는 블록체인 액셀러레이터인 동시에 공유오피스이자, 크립토 펀드다. 조이슬 대표는 그간 블록체인 씬에서 쌓은 다방면의 경험을 토대로 퍼셉트라를 준비하고 있다.
조 대표는 2015년 처음 블록체인에 뛰어들었다. 당시엔 개발자였다. 블록체인 개발자를 필요로 하는 자리도, 블록체인 개발자도 극히 드물던 시절이다. 조 대표는 블록체인을 하기 위해 해외로 가야 했다.
그는 2016년 영국에 있는 홍콩상하이은행(HSBC) 본사에 만들어진 첫 블록체인팀에 합류했다. 팀에서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을 이끌었다. 같은 해 컨센시스가 주최한 해커톤에 참석해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조 대표는 “그때 드론에 빠져있을 때라 드론 보안을 위한 블록체인 프로토콜을 만들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왜 개발을 그만뒀을까. 이 물음에 조 대표는 “솔직히 말해 내가 최고의 개발자는 아니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라고 답했다.
블록체인 씬에 일찌감치 들어와 쌓은 개발 경력은 조 대표가 여러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어드바이저로 활동할 때 진가를 발휘한다. “어드바이징 할 때 모든 것을 공유한다”라는 조 대표는 자신의 개발 경력을 바탕으로 프로젝트 팀이 생각해내지 못한 포인트들을 짚는다.
조이슬 대표가 블록체인 생태계에 제시하는 방향은 명확하다. 실제 가치를 만들고, 많은 사람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규모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 과정이 순탄치 않다. 단계 단계마다 새로운 답을 찾아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 있다.
가령 스타트업들이 가장 흔히 쓰는 사용자 데이터 분석법조차 블록체인 프로덕트에 바로 적용하기 까다롭다. A/B 테스트라는 분석법인데, 테스트를 위한 데이터 수집이 블록체인의 핵심인 탈중앙성과 충돌한다. 프라이버시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 조 대표는 액셀러레이팅 활동을 통해 블록체인 씬의 노하우를 하나하나 쌓아나가려 하고 있다.
좋은 프로젝트를 위해 ‘기본’을 토론하다
조이슬 대표가 그리는 퍼셉트라는 개발자부터 마케터까지, 다양한 블록체인 플레이어가 모여 매일 밤 ‘너디'(nerdy)한 토론을 벌이는 공간이다. 그는 이런 공간, 일명 ‘해커 하우스’를 기획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미국 뉴욕에서 해커 하우스 데모데이를 열었다.
위 사진은 조 대표가 뉴욕 블록체인위크 때 주최한 워크숍의 모습이다. 썬더토큰을 이끌고 있는 일레인 시 코넬대 교수가 ‘블록체인 확장성 이슈, 우리의 논의는 어느 지점에 와 있는가’를 주제로 열린 토론을 이끌었다. 토론은 ‘확장성 다음 이슈는 무엇일까’에 대한 논의로까지 이어졌다.
조 대표가 주최한 또 다른 워크숍이다. ‘탈중앙화 방식으로 프로덕트 설계하고, 검증하고, 출시하기’를 주제로 토론이 열렸다. 이더리움 디앱들 중 일일 활성 사용자 수가 가장 높은 ‘크립토키티즈’와 ‘DDEX’ 팀이 참가해 자신들의 경험을 나눴다. 조 대표는 “블록체인 업계 전체에 몇만 명이 있다고 하면, 이 가운데 탈중앙화 프로덕트를 만든 경험이 있는 사람은 10명 정도뿐”이라면서 “실제 프로덕트를 만든 경험이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 함께해 재밌는 토론이었다”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이외에도 ‘사용자는 누구이고 어디에 있나 : ICO 프로젝트에서 텔레그램 방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한국의 블록체인 개발자 그룹은 전 세계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어떻게 소개돼야 하고,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등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는 이같이 사용자, 프로덕트, 개발 문화의 기본을 토론하고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단 테스트 프로덕트를 만들어라”
조이슬 대표에게 ‘성공하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위한 방법’을 물었다.
조 대표는 ‘일단 프로덕트를 만들라’라고 조언했다. 아무 경험 없이 토큰경제 모델을 설계하고 백서를 쓰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또 “테스트 프로덕트를 만들면 사용자가 좀 생긴다”라며 “이 사용자를 대상으로 텔레그램 채널을 돌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경험과 에너지, 진심을 모두 가진 사람은 흔치 않다. 퍼셉트라의 공식 출항 준비에 한창인 조이슬 대표의 활동이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