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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으로 책을 출판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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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터 작성일자2018.06.28. | 75 읽음

지난 6월20일부터 닷새 동안 서울 코엑스에서 애서가들의 축제 ‘2018 국제도서전’이 열렸다. 올해 주제는 ‘확장-new definition’으로, 도서전에는 주제 의식을 담아 새로운 미디어와 콘텐츠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프로그램들이 마련됐다. 여러 프로그램 중 기자를 유혹한 것은 ‘블록체인과 출판산업의 연계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출판산업 컨퍼런스였다.

2018 제2회 출판산업 컨퍼런스 포스터

6월21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주최로 열린 해당 행사에는 출판산업 종사자 30여명이 자리했다. 첫 발표자로 나선 사람은 조세프 마크 퍼블리카 대표다. 퍼블리카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기술로 새로운 출판·독서 문화를 구축하려는 회사다. 도서의 투자, 배포, 구매, 독서 방식을 향상시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조세프 마크 퍼블리카 대표가 6월2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18 제2회 출판산업 컨퍼런스’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출판 업계에 45년 경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조세프 마크 대표는 이날 자사 대표 서비스인 ‘책 ICO’를 소개했다.

책 ICO는 도서 출판을 위한 일종의 크라우드펀딩이다. 일반 크라우드펀딩과 달리 암호화폐로 이뤄지며 저자를 위한 권리 보호가 블록체인 위에서 관리된다. 또 여느 ICO가 그렇듯 투자 성격도 가진다. 자신이 투자하는 저자가 훗날 유명한 작가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책 ICO에 참여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책 ICO는 총 3단계로 이뤄진다. 1단계는 저자가 퍼블리카 플랫폼에 프로젝트 페이지를 개설하는 것이다. 2단계는 저자가 직접 프로젝트의 토큰 가격을 설정해 스마트 계약을 생성하는 것이다. 마지막 3단계는 투자금을 사용해 도서 제작을 완료하는 단계다. 책이 완성되면 ICO에 참여한 투자자들은 해당 도서를 위해 만들어진 개별 ‘책 토큰’을 받게 된다. 이 토큰을 가지고 완성된 도서를 읽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토큰을 양도하거나 팔 수도 있다. 일종의 리미티드 에디션 접근 권한을 가진 셈이다. 만약 저자가 투자금을 모으고 약속된 책을 완성하지 못할 경우 스마트 계약에 따라 투자는 자동으로 무산된다.

조세프 마크 대표는 해당 책은 전자책 형태로 출판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고 설명하며 “저자가 원할 경우 독자적으로 종이책 출판을 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또 “아직 책 내용을 블록체인에 저장하겠다고 요구한 저자는 없었다. 하지만 콘텐츠를 분산 저장하는 IPFS에 책을 저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한다”라고 설명했다. IPFS는 중앙화된 서버 없이 파일을 분산 저장하는 시스템으로, 검열 저항성을 위한 콘텐츠의 완전 분산화와 효율적인 데이터 처리 등을 표방한다.

조세프 마크 대표는 ‘퍼블리카가 하려는 게 도서 출판·유통 네트워크를 쥐고 있는 거대 플랫폼의 헤게모니를 해체하하는 게 목표인가?’라는 물음에는 “그렇지 않다. 우리 프로젝트의 초점은 도서의 직접 판매”라고 답했다. 출판산업 역사상 처음으로 저자가 도서 결제가 이뤄지는 일련의 과정 맨 첫 줄에 서는 생태계를 만드는 게 프로젝트의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행사에 참석한 한국의 출판업 종사자들에게 “우리는 출판사의 경쟁자가 아니다”라며 출판사들에 퍼블리카 생태계에 참여하라고 독려했다.

6월2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18 제2회 출판산업 컨퍼런스’ 질의응답 시간

포스트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출판업 종사자들은 블록체인·암호화폐 기술이 제시하는 출판 경제의 새로운 모습 어떻게 보았을까. 관심을 갖는 동시에 아직은 낯설어하는 분위기였다. 더구나 주어진 시간은 한없이 짧았다. 심도 있는 토론으로 이어지기보다 ‘이런 게 있다’는 것을 소개받고 각자 풀리지 않은 물음표를 품고 해산한 듯한 인상이었다.

사실 블록체인-출판 연계에 더 촉각을 세우는 쪽은 출판업계라기보다 독립출판 쪽이다. 독립출판은 출판법인에 속하지 않은 개인이 만들어 유통하는 모든 출판물을 뜻한다. 퍼블리카의 대표 서비스인 책 ICO가 저자와 투자자, 독자를 직접 잇는 수단을 표방한 것만 봐도 블록체인으로 쓰는 새로운 출판문화의 가능성은 독립출판 쪽에서 먼저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독립출판 저자들을 위한 비영리 기관 ‘얼라이'(ALLi·Alliance of Independent Authors)는 블록체인 기술이 독립출판 3.0 시대를 열 것이라고 점쳤다.

얼라이는 최근 독립출판 3.0에 대한 인사이드를 담은 백서 ‘저자 그리고 블록체인’를 출판했다. (백서는 ‘자가 출판'(Self-Publishing)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일반적으로 쓰이는 독립출판으로 표기한다.)

‘저자 그리고 블록체인’ 백서 표지

백서에 따르면, 독립출판 1.0은 1970년대 후반 데스크탑 컴퓨터로 작업한 텍스트를 출판하기 시작하며 도래했다. 주문형 인쇄(POD·Print-On-Demand)의 등장을 주요한 특징으로 한다.

독립출판 2.0 시대는 전자책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다. 전자책으로 개인은 디지털 방식으로 책을 출판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 시기 거대 온라인 소매상이 등장했고 독립출판 2.0 시대의 저자는 여전히 유통망을 쥐고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독자와 만나야 했다. 얼라이는 이 시기를 “저자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 때이지만, 여전히 진정한 자가 출판은 아니었다”라고 논평한다.

독립출판 3.0 시대는 저작 활동을 위한 크라우드펀딩 후원 모델과 도서 판매까지 ‘직접’하는 시대를 뜻한다. 얼라이는 블록체인 기술을 독립출판 3.0 시대를 이끌어나갈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퍼블리카와 얼라이는 종이책보다는 전자책에 집중해 블록체인과 출판의 연계를 점치는 사례다. 이들과 달리 종이책 유통에 암호화폐를 도입하려는 시도도 있다. 종이책 시장이라는 실물경제에서 쓰이는 암호화폐 결제 시스템을 만들려는 북잼과 웅진북센의 사례다. 콘텐츠 플랫폼 전문기업 북잼과 도서물류 종합유통 기업 웅진북센은 6월21일 암호화폐 결제가 가능한 도서 판매 사업을 위해 제휴를 맺었다. 양사는 문화상품권처럼 쓰이는 암호화폐를 구상하고 있다. 상품권처럼 가격이 고정돼 있되 수수료는 발생하지 않아 도서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 없이 가격 변동성 걱정없이 도서를 구매할 수 있게 하겠다는 청사진이다. 웅진북센 관계자는 “도서 유통업에 암호화폐가 접목된 사례가 없는데 북잼과의 제휴로 선점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라고 제휴 배경을 설명했다.

블록체인과 연계된 출판문화가 어떤 모습일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퍼블리카의 책 ICO도 이제 막 첫 사례가 나온 단계다. 도서상품권 같이 쓰이는 암호화폐 서비스는 아직 출시되지 않았다. 블록체인이 콘텐츠와 미디어, 저작 활동과 출판, 저자와 독자에 미치는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을 주도적으로 넓혀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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