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리벤지 포르노'라 부르면 안 되냐고요?

조회수 2017. 9. 29. 12: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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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힘이 셉니다. 사람들의 생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언론의 언어라면 더욱 그렇죠. 만약 언론이 구사하는 언어가 편견을 조장하고, 본래 의미를 왜곡하는 것이라면 어떨까요? 편견과 왜곡된 의미는 언론의 파급력과 확산성을 등에 업고 확대·재생산될 것입니다.

리벤지 포르노. 지난 9월26일 정부가 발표한 ‘디지털 성범죄 피해방지 종합대책’을 다룬 여러 언론 보도에 등장한 언어입니다. 정부의 종합대책에는 ‘연인 간 복수 등을 위해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의 신체 또는 행위를 촬영한 자가 영상물을 유포하는 경우에는 5년 이하 ‘징역형’만으로 처벌토록 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어요. 이에 다수 언론은 ‘리벤지 포르노 유포 시 무조건 징역형’ 등을 헤드라인으로 뽑았습니다. 리벤지 포르노라는 단어는 수많은 기사에 등장했고 카드뉴스 등 다양한 콘텐츠로 재생산됐죠.

26일 같은 시각, 국회에서 열린 ‘디지털 성폭력 근절을 위한 정책 마련 토론회’에서는 리벤지 포르노라는 표현의 부적절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디지털 성폭력 근절을 위한 정책 마련 토론회’

리벤지(revenge)는 우리 말로 ‘복수, 보복’을 뜻합니다. 즉, 원한이 맺힐 정도로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나 집단을 향해 앙갚음한다는 의미하죠.

이같이 그 의미를 추적해가면, 리벤지 포르노라는 표현에는 피해자가 ‘보복’을 유발할 만한 잘못을 저질렀다는 모종의 인식이 담겨 있거나, 자칫 그런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피해자를 졸지에 ‘먼저 잘못을 저질렀고, 그래서 성폭력으로 혼난’ 대상으로 전락합니다.

또 '포르노'라는 표현 역시 부적절합니다. 피해자가 드러난 불법촬영 불법 이미지 및 영상을 간단하게 '음란물'로 치환해버리죠.

26일 국회 토론회의 좌장을 맡은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는 “리벤지 포르노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것”을 당부했습니다.

전선미 디지털성범죄아웃(D.S.O) 팀장은 “리벤지 포르노라는 말은 디지털 성폭력 범죄가 ‘집단’의 가해라는 개념을 희석하고, 유포자와 피해자 간 관계를 중시하거나 개인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결과를 낳는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전선미 팀장은 “디지털 성폭력 범죄는 한 개인이 벌이는 가해 행위가 아닌 집단으로 행해지는 가해”라고 강조했어요.

디지털 성폭력은 크게 제작형, 유포형, 참여형, 소비형으로 구분됩니다. 제작형 가해는 오프라인에서 도촬·협박·강간 등으로 불법촬영 이미지나 영상을 제작하는 행위입니다. 유포형 가해는 본인의 동의 없이 이미지, 영상, 개인정보 등을 온라인에 유포하는 행위입니다. 개개인 간 유포,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유포 모두 포함되죠. 유포형 가해가 발생하면 온라인에 접속한 수많은 개인의 참여, 소비 행위를 통해 가해 정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됩니다.

참여형 가해는 온라인에 유포된 이미지, 영상, 개인정보 등을 이용해 추가적인 성폭력을 휘두르는 경우입니다. 게시물에 모욕성 댓글을 달거나 유포형 가해자에게 더한 성폭력을 요구하는 경우, 유포한 개인정보를 통해 피해자와 접촉하거나 모욕을 주는 경우 역시 여기에 해당합니다.

소비형 가해는 온라인에 유포된 디지털 성폭력 범죄 이미지를 소비해 수익구조를 발생시키는 모든 행위를 뜻합니다. 소비형 가해자는 자신이 심각한 가해 행위를 하고 있다는 인식 없이 디지털 성폭력 범죄의 가장 주요한 축을 담당당하게 됩니다. 집단 성폭력입니다. 이는 고스란히 피해자의 고통으로 이어집니다.

전선미 팀장은 디지털 성폭력 범죄를 설명하며, 이를 리벤지 포르노라고 칭하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토론회를 주최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범죄의 불법성을 희석하는 잘못된 용어들이 유포되고 있다. 이런 용어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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