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의 반격, 소니 'a9' 써보니

조회수 2017. 8. 29. 17:0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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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는 이제 감성으로 남겨두자.

카메라는 흔히 손맛이라고 한다. ‘찰칵’ 하는 셔터 소리와 함께 손끝에 전해지는 진동. 내 눈으로 바라본 시간과 공간이 사진 한 장에 기록됐다는 신호다. 한쪽 눈은 뷰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직시하고, 다른 눈은 지그시 감아 마음속에 상을 담는다. 나만의 시각이 의도한 대로 사진에 담겼을 때, 크고 무거운 DSLR을 장롱 밖으로 끌고 나온 보람을 느낀다. 그게 설령 100장 중 1장일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손에 쥔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 소니 ‘a9’는 뭔가 낯설었다.


손맛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셔터 소리는 나는데 손끝에 사진이 찍혔다는 감각이 전해지지 않았다. 셔터음도 낯설었다. 사진을 150장 정도 찍고 나서야 이유를 깨달았다. a9는 진동이 없었다. 셔터음은 셔터에서 나오지 않았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소리였다. 설정 화면에는 ‘전자 셔터’라는 낯선 이름이 표기돼 있었다. 오디오 신호를 끔으로 설정하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소니 ‘a9’ 리뷰를 위해 부산에 갔다.
부산은 어묵이 맛있다.
150장 중 1장

최후의 아날로그 기계식 셔터

전자식 셔터는 왜 소리와 진동이 없을까. 우리가 렌즈 교환식 카메라를 사용할 때 흔히 접하는 셔터는 ‘기계식 셔터’다. 빛을 이미지 센서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물리적인 셔터가 일정 시간 동안 빛을 통과시키고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셔터가 열리고 닫히는 속도에 따라 빛의 노출 정도가 결정되며, 피사체가 사진에 기록되는 순간적인 시간도 달라진다. 이 셔터가 열리고 닫히는 순간 발생하는 소음이 우리가 흔히 아는 ‘찰칵’ 하는 셔터음이다.


전자식 셔터는 기계적 구조 없이 전자적인 통제로 셔터의 효과를 내는 걸 말한다. 물리적인 셔터 대신 이미지 센서가 빛에 반응하고 안 하고를 전자적으로 구현한 형태다. 기계적인 셔터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셔터막이 열리고 닫히면서 발생하는 소리와 진동이 없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떠올리면 쉽다. 그런데 전자식 셔터에는 큰 문제가 있다. 전자적으로 빛의 노출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데이터 처리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움직이는 물체를 연사로 촬영할 경우 왜곡이 발생한다. 피사체가 기울어지고 휘어 보이는 ‘젤로 현상’이다.

소니 ‘a9’에는 전자 셔터가 전격 도입됐다. (최대 셔터 스피드 1/32000초)
기계식 셔터도 선택할 수 있다. (최대 셔터 스피드 1/8000초)
전자 셔터 상태에서 오디오 신호를 끔으로 설정하면 무소음·무진동 상태가 된다.

플래그십 미러리스 카메라에서 기계식 셔터는 최후의 아날로그로 남아있었다. DSLR은 렌즈로 들어온 빛을 카메라 내부의 거울을 통해 반사해 뷰파인더로 피사체를 바라보는 아날로그적인 카메라 구조로 돼 있다. 반면 미러리스는 이름대로 거울을 제거하고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을 전자회로를 거쳐 LCD 화면으로 피사체를 보여주는 디지털적인 구조다. 거울을 제거하면서 무게와 부피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a7’ 시리즈 등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는 기계식 셔터를 고수해왔다. 전자 셔터 기술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날로그의 한계를 넘어선 디지털

a9는 전자식 셔터의 단점을 보완해 오히려 기계식 셔터의 한계를 넘어서도록 만들었다. 미러리스는 DSLR의 성능을 대부분 따라잡았다. 문제가 됐던 자동초점(AF) 속도 역시 위상차 AF와 컨트라스트 AF를 섞은 하이브리드 방식을 통해 해결했으며, 오히려 미러가 움직이면서 발생하는 ‘미러쇼크’ 문제나 핀교정 문제 등 DSLR의 구조적 한계에서 오는 문제들로부터 자유롭다는 장점이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 시장에서는 철저히 외면받아 왔는데 소니 a9는 전자식 셔터를 통해 스포츠·언론 등 전문가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전자 셔터의 장점을 살려 빠른 셔터스피드와 연사 속도를 자랑하면서도 단점이었던 왜곡 현상을 억제했다. 왜곡 억제 전자 셔터를 통해 1/32000의 빠른 셔터스피드, 초당 20연사를 구현했다. AF/AE 추적 상태에서 블랙아웃 없이 초당 20연사로 최대 JPEG 362장, RAW 241장을 촬영할 수 있다.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실제로 a9의 연사 기능을 사용했을 때 초보자도 쉽게 ‘점프샷’을 촬영할 수 있었다.

그 어려운 걸 해내게 한 건 송중기가 아닌 2420만화소 35mm 풀프레임 적층형 이면조사 엑스모어 RS CMOS 센서다. a9에 탑재된 이미지 센서는 픽셀 층과 회로 층을 분리하고 회로 층에 내부 메모리를 적용해 처리 속도를 높였다. 전자 셔터의 데이터 처리 속도 때문에 발생하는 이미지 왜곡 현상을 이미지 센서 성능을 끌어 올려 극복한 것이다. 그 결과 찰나의 순간을 쉽게 포착할 수 있게 됐다.

1/32000의 빠른 셔터스피드 덕분에 역광 상태에서 조리개를 개방할 수 있다. (조리개 F2.8, 셔터시피드 1/16000초)

전자 셔터는 손맛을 잃었지만 새로운 촬영 기회를 제공한다. 무소음, 무진동은 익숙하진 않지만 익숙하지 않은 상황과 맞닥뜨릴 수 있도록 해준다. 소니 측은 a9 출시 기자간담회에서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는 데 있어 기존 DSLR 카메라는 기계식 셔터의 한계에 부딪혀왔다며 스포츠 현장과 야생동물, 웨딩 촬영 등을 예로 들어 전자식 셔터를 탑재한 a9의 비교우위를 설명했다. a9는 셔터음 때문에 촬영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예를 들어 출발선상에 선 육상선수, 골프 선수의 스윙, 양궁선수의 발사 장면 등 선수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릴 수 있어 촬영이 금기시된 상황도 담아낼 수 있게 됐다.

아날로그의 관성과 감성

낯섦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우리는 익숙함에 안주하곤 한다. 거울을 통해 비친 세상만이 진실한 것으로 여겨져 왔지만 기술의 발전에 따라 디지털은 현실 이상의 것을 표현해내기 시작했다. 미러리스의 전자식 뷰파인더는 이질감이 있지만 광학식 뷰파인더로 나타낼 수 없는 수많은 정보 값을 나타낼 수 있다. 뷰파인더에 실시간으로 노출값이 반영되기 때문에 적정 노출을 더 직관적으로 맞출 수 있다. 또 미러리스의 기본인 디스플레이를 보며 촬영하는 라이브뷰 기능은 뷰파인더로 촬영할 수 없는 구도를 잡을 수 있도록 돕는다. 사람들은 이미 뷰파인더보다 스마트폰 화면을 보면서 사진을 찍는 방법에 익숙하다.

아날로그의 관성은 강력하다. 특히 미러리스 카메라를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과 태도는 아날로그의 관성에 머물러 있다. a9는 렌즈 조합을 통해 800만원 훌쩍 넘는 비싼 몸값을 자랑한다. 인간 폭탄이 된 마음으로 리뷰를 진행하는데 사람들은 무심히 내 어깨에 걸쳐진 a9를 툭툭 치며 지나갔다. 만약 같은 라인업의 DSLR 카메라였다면 어땠을까. 사람들은 아직도 아날로그적 구조의 산물인 크고 무거움에서 전문성을 찾는다. 폼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미러리스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립감과 조작성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풀프레임 답게 얕은 심도 표현이 가능하다. 낮에는 배경을 날려주고 밤에는 보케를 만들어준다.
고감도 노이즈 억제력이 뛰어난 편이지만 사진은 달빛 말고 햇빛이 있는 곳에 찍자. (F1.8, 1/100초, ISO 25600)

물론 기존 DSLR 카메라 시스템에서 미러리스로 넘어오기는 쉽지 않다. 어렵게 구성한 렌즈군과 각종 인프라는 미러리스로 넘어가지 못하게 하는 결정적인 장애물이다. 소니의 프레스용 카메라에 대한 낮은 경험은 아쉬운 사용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부족한 인프라는 시장이 갖춰지면 채워지기 마련이다. 이미 소니는 광각 영역부터 초망원 영역까지 전체 초점거리를 커버하는 렌즈 프리미엄 라인업을 완성했다. 낯설어서 꺼려지는 것들은 새로운 길을 열어줄지도 모른다. a9는 DSLR에서 미러리스로 넘어가는 문을 열었다. 손맛은 전문 셰프에게 맡겨두고 아날로그의 관성은 이제 감성의 영역에 놓아줄 때다.

해질 무렵이 아름다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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