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되 멈추지 않는 시골 생활

조회수 2021. 5. 8. 14: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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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오느른 채널

유튜브에서는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는 브이로그를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처음에는 모르는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즐거워할 수 있다는 사실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고, 씻고, 밥 먹고, 일하고 잔다. 별다를 것 없는 삶이다. 그러나 가끔은 타인의 삶에서 나를 위한 메시지를 발견하기도 한다. 

유튜브 오느른 채널 캡처

Onulun, 오늘을 사는 어른들을 위한 이 채널은 MBC에서 운영하는 공적인 성격을 띠고 있지만, 동시에 방송국에서 피디로 근무하는 최별이라는 한 여성의 삶을 담은 사적인 기록이다. 2020년 6월 25일에 올라온 첫 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은 “4500만 원짜리 폐가를 샀습니다.: MBC PD 시골살이 힐링 브이로그 오느른”이다. 호기심이 인다. 서울의 방송국에 근무하는 피디가 시골에 폐가를 사서 어쩌자는 거지? 거기서 살 수 있나? 


이 브이로그는 2020년 여름, 가을에 걸쳐 최별 피디가 김제에 산 집을 개축하는 과정을 그렸고, 이후로는 생활의 중심을 완전히 김제로 옮긴 그의 일상을 담았다. 비슷한 소재 때문에 일본 만화이자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흔히 비유되기도 하지만, 오느른 채널에는 개별적 서정이 담겨 있다. 대체로 인물은 멀리 있거나 배경에 녹아든다. 그들은 시청자를 향해 말을 걸기보다는 자신들끼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그 여백은 귀여운 자막과 부드러운 선율의 음악이 채운다. 처음에는 여기 살 수 있나 싶은 집이 어엿한 거주지의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같이 맛볼 수 있기도 하고,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를 구경하는 재미 또한 있다. 주인공이 특유의 명랑한 사교성을 발휘하여 동네 주민들과 친해지는 과정에서 따뜻한 스토리를 발견하기도 한다. 

유튜브 오느른 채널 캡처

또한 여기에는 시골살이의 고단함이 스며 있다. 호기롭게 인생에서 가장 큰 쇼핑을 해버렸지만, 낡은 집이 스스로 아름답게 변하는 일은 없다. 단정한 삶을 유지하려면 끝없는 노동이 필요하다. 생각보다 공사는 힘들고, 여름에는 곰팡이가 서까래를 뒤덮었다. 마당의 돌 하나도 누군가 날라야 하고, 나를 먹이기 위해 풀을 뜯어 전을 부치기도 한다. 도시에서 쉽게 서비스를 구매해서 해결할 수 있었던 일도, 시골에서는 스스로 다 처리해야 한다. 매일 이어가는 인간의 노동, 그 소중함을 절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 속에서 우러나는 생생한 현장감이 있다.


물론 오느른의 이런 장점은 제작자인 본인이 시사교양 피디이며, 따로 카메라 촬영 스태프가 있다는 기술적인 요소에서 유래한다. 즉, 오느른은 일상성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프로페셔널하게 제작되는 콘텐츠이다. 2020년 설에는 1년 동안의 업로드된 영상을 다큐멘터리로 재편집하여 MBC에서 방영하기도 했다. 좀 더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보고 싶지만, 정제되지 않는 날것의 압박에 지쳤던 시청자들에게 적합하다.

삶은 아름다운 순간을 이어붙이는 일임을

유튜브 오느른 채널 캡처

최별 피디 본인을 방송 프로그램에서 만난 적이 있다. 어떻게 이런 영상을 처음 기획하게 됐는가 하는 질문에, 최별 피디는 본인도 하루의 일을 마치고 들어와 유튜브를 볼 때 조용하고 잔잔한 영상을 보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또한 코로나19 이후에 우리를 묶어놓은 좌절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누군가 나 대신 저질러버리는’ 쾌감이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다. 


귀촌을 꿈꾸는 사람은 많지만, 대부분은 현실적인 이유로 쉽게 실천하지 못한다. 하지만 여기 과감하게 폐가를 사고, 서울의 전셋집을 빼서 지역으로 생활 기반을 옮긴 사람의 삶이 있고, 그를 바라보면서 한동안 갑갑한 생활로 잃었던 에너지를 다시 느낄 수가 있다. 27만 구독자를 이끈 오느른의 힘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유튜브 오느른 채널 캡처

최별 피디의 선택은 본인과 그의 가족인 아버지의 삶을 바꾸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농촌에 들어왔지만, 서울에 여전히 출근하는 생활을 유지하는 오느른의 주인공은 동네 주민들과도 연대를 추구하고, 지역을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힐링이 필요하되, 이 공동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별채를 숙소로 제공한다거나, 읍내에 사무실을 빌려서 개축하고 그를 이용한 사업을 구상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무언가 이룰 수도 있지만,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공이 목적이 아닌 오느른은 시도하고 바꾸고 유지하는 이들을 격려한다.


한편, 오느른에는 늘 변화하는 자연과 그를 대하는 다정한 마음이 있다. 2021년 4월 9일에 올라온 에피소드 37회에서 최별 피디는 논두렁에 환하게 핀 목련꽃을 본다. 지난 1년 동안 수없이 지나다녔던 길, 보았던 나무인데 이처럼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문득 발견한 아름다움, 그리고 곧 비가 내리면 떨어질 꽃의 덧없는 운명을 생각하고 그는 문득 눈물 터뜨리고 만다. 오느른을 보는 사람들도 같이 뭉클해지는 순간이다. 흘러가는 시간을 기록하는 일은 삶에서 불현듯 찾아오는 아름다운 순간을 이어붙이는 일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잠깐이나마 함께 머무른다.

글/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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