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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이라는 재능

조회수 2021. 4. 17. 13: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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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독립 책방들에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 임대료 부담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돌파구를 모색해야 하는 것. 봉천동에 자리한 문화 공간 ‘관객의 취향’이 지난 3년간 정든 곳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한다는 소식을 알렸다(다행히 근처이긴 하다). 

“제가 가장 당황스러운데요.”라며 너스레를 떠는 박소예 대표는 좋아하는 것을 오래도록 좋아하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나만의 취향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취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하는 질문에 답할 힌트는 무엇일까.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라는 그녀의 말처럼 ‘관객의 취향’은 이름 그대로 누군가의 몫으로 늘 남겨두고 있다.

'관객의 취향' 박소예 대표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근처 건물 3층으로 이사를 준비 중이에요. 보통 책방은 1층에 있잖아요. 저희는 처음부터 2층에서 시작했어요.(편집자주-잡지가 나온 시점에는 이사가 끝나 건물 3층에서 관객의 취향을 만날 수 있다) 근데 1층까지 확장해보니 2층에 있는 손님들이 조용히 책에 집중할 수 있더라고요. 늘 손님들에게 편안한 공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또 동네 주민들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길 바라요.


새로운 공간에는 어떤 변화가 있나요?


소비하고 싶게 만드는 공간이 목표예요. 독립 책방도 상업 공간이잖아요. 그래서 책방에 와서 돈을 쓰고 돌아갈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 오래 영업하려면 금전적인 부분이 중요하더라고요.

좋아하는 공간에서 소비하는 것은 손님으로서도 기쁜 일이에요.


장사하기 전에는 소비를 요구하는 게 구차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자영업자들은 돈을 벌려고 일하는 거니까요. 대가를 지불하길 바라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좋아하는 공간이 사라지지 않길 바라면서도 와서 상품을 구입하지 않고 사진만 찍고 돌아가시면 씁쓸해요. 늘 방문해주는 손님들도 편안하게 이용하면서 지금보다 더 소비하고 싶도록 꾸며볼 생각이에요.


다른 책방과 비교할 때 차이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처음엔 일부러 찾아서 오시는 분이 많았는데 1년쯤 지나니 동네 주민들이 훨씬 많아졌어요. 코로나19가 유행한 이후에는 주민들밖에 안 오셨고요. 독립 책방이 모여 있는 망원동은 같은 곳은 동네 자체에 볼거리가 많고 유동인구가 많잖아요. 저희는 편의점 가다 들른 듯 트레이닝복 차림이거나, 장 보고 오시는 아주머니 손님들도 많은 게 다른 독립 책방과 차이점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동네에 독립 책방이 저희밖에 없다 보니까 책과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오시게 됐어요.

영화 관련 책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취급하시더라고요.


손님들이 “그 책은 없어요?” 하고 찾는 책들이 자연스럽게 늘어났어요. 멀리 대형 서점까지 가지 않고 저희 책방에서 구매하는 손님들이 계세요. 그리고 책을 주문할 때 제가 읽고 싶은 책을 들이다 보니까 종류가 다채로워졌어요.


이토록 관객의 취향이 다양한 이유가 늘 궁금했어요.


책방을 운영하다 보니 문화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가 없더라고요. 개인 시간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걸 여기로 끌어들이는 방법을 택했어요. 무언가 배우고 싶으면 강사를 섭외해서 수업을 열고요. 손님들도 “한남동에 있는 책방에서는 이런 걸 하는데 여기서도 하면 안 돼요?” 하며 요청하세요. 그럼 저는 ‘똑같은 책방인데 해보지 뭐.’ 하고 시도해보기도 하고요. 

고집이 센 편은 아닌가 봐요.


제가 의견을 수렴하는 사람이라서 취향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 같아요. 특별히 ‘관객의 취향’만의 색깔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누군가 배고프다고 하면 음식을 만들고,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고 하면 다음에 가져오겠다고 하는 편이었어요.(웃음) 손님들 입장에서도 내가 말한 걸 다 들어주는구나 하고 긍정적으로 느끼는 것 같아요.


판을 짜는 게 어쩌면 영화 만드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완전히 다르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영화를 전공해 그런지 하던 일을 계속하는 느낌이랄까. 영화는 허구의 세계를 만드는 일이잖아요. 공간을 운영하는 것도 허구의 세계를 꾸미는 거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의 의견을 모아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할 수도 있고요. 영화는 스크린에 보일 뿐이고 현실에서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비결이 있다면요?


무언가를 오랫동안 좋아하는 편이에요. 좋아하는 게 잘 바뀌지 않죠. 끈기가 비결이라면 비결이지 않을까 해요. 좋아하는 것에 흥미가 떨어지거나 새로운 신기한 무언가가 나와도 끝까지 놓지 않는 편이에요. 그게 어느 순간 취향이 된 것 같아요.

제가 의견을 수렴하는 사람이라서 취향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 같아요.

책방을 운영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게 있다면요?


저에 대해 더 잘 알게 됐어요. 전에도 스스로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상대방의 감정에 이토록 영향을 많이 받는 성격인지 처음 알았어요. 다정한 손님이 오면 그날 하루가 행복하고 즐겁게 책을 팔 수 있는데, 무례한 사람이 오면 그날 하루 장사를 망친 것만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럼, 더 모르게 된 건요?


사람의 마음을 정말 모르겠어요.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세상엔 다양한 유형의 사람이 있고 새로운 상황이 끊임없이 펼쳐져요. 책방을 하기 전에는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만 만났어요. 관심사나 나이대가 비슷하다 보니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세상에 나와 보니 알 수 없는 사람투성이고요. 전에도 넓은 세상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장사를 해보니 그곳은 그야말로 우물 안이었어요.

30대 자영업자로 사는 건 어떤가요?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서른 살에 책방을 시작했는데 진짜 어른이 된 기분이었어요. 30대가 되니까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고요. 또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도 30대가 되니까 할 수 있었어요. 사실 지난해에 가게를 그만두려고 마음먹었는데 그것도 일종의 용기인 것 같아요. 그리고 다시 계속 운영해야겠다고 결심하기까지 에너지가 많이 들었어요. 새로 시작하고, 포기하고, 다시 포기하지 않을 용기. 자영업자들에게는 이런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포기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해요.


‘관객의 취향’이 저만의 것이 아니니까요. 처음에는 작업실 겸 돈도 벌 겸 하다가 만약 잘 안 되더라도 작품 하나 엎어졌다고 생각하려고 했어요. 사업을 시작하는 것도, 접는 것도 제게 달렸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3년이 지나고 보니 제가 이름만 책방 주인이지 여기 있는 모든 건 다 손님들이 만들어준 거예요. 책방에 앉아 바라보던 행복했던 풍경과 기억들까지요. 제 맘대로 접는다는 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순히 돈으로만 계산할 수 없는 소중한 걸 얻었어요.

무언가를 오랫동안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게 어느 순간 취향이 된 것 같아요.

20대는 낭만, 30대는 현실이라고 하셨는데 그다음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삶인 것 같아요. 어떤 일이든 계속 반복되면 삶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언젠가 책방 주인이 되면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미친 듯이 글을 쓰는 상상을 했는데. 현실은 음료를 만드느라 바쁘고 월세를 내기 위해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팔아야 하니까요.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어도 결국엔 제 삶이라서 그냥 이렇게 살면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관객(손님)의 취향이 변하면서 ‘관객의 취향’은 어떻게 변할 것 같아요?


몇 년 사이 독립 책방이 많이 생기고, 독립영화도 OTT를 통해 접근성이 높아졌잖아요.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해요. 그에 맞게 ‘관객의 취향’도 새로운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싶어요. 독립 책방이 아래로부터의 독서 운동을 일으키는 최전선처럼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독립 책방의 존재 자체가 책 읽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증명하길 바라요.


글/ 정규환, 사진/ 김화경

영화와 책으로 취향을 향유하는 공간
관객의 취향
서울시 관악구 관악로 204 3F
@your_taste_film
출처: http://www.bigissue2.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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