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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이슈코리아

막방이라니, 벌써 떨리는군✦‿✦

자세한 설명은 생략! 하는, 김순옥의 펜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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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에 해당하는 '펜트하우스'가 시작할 때만 해도 비판하는 사람이 많았다. 김순옥 작가와 주동민 PD의 조합은 '황후의 품격'에서 이미 자극적인 힘을 확인시킨 바가 있고, '펜트하우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극적인 불륜 묘사,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과도한 폭력과 살인, 시체 유기 같은 사건이 이어지면서 선정성과 폭력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셌다. 거기에 더해, 초반 몇몇 장면은 그 전해 방영한 'SKY캐슬'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펜트하우스'는 한 회에서도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지는 반전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비판이 무색할 정도로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 월화 미니시리즈임에도 20%를 훌쩍 넘는 시청률(닐슨코리아 조사 시청률 기준)을 기록했고, 최종화는 2부에서 수도권 시청률 30.5%에 이르렀다. 드라마가 시즌 1에서 가련한 피해자이자 복수자였던 심수련(이지아)은 죽고 오윤희(유진)가 그 죄를 뒤집어쓰고 탈옥수가 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 아이러니한 성공이다. 서사적으로 완결되지 않았지만 시청자는 붙들었다.

'펜트하우스 2'는 시즌제라는 말이 무색하게, 한 달 정도 간격을 두고 시작했다. 이번에는 '윤스테이'나 '사랑의 콜센터' 같은 인기 프로그램과 경쟁해야 하는 불리한 상황이었다. 주인공 중 한 사람인 심수련이 죽은 상태에서 어떻게 사건을 이어갈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펜트하우스 2' 또한 전편의 화제성을 이어가며 20% 전후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중반부 들어서는 답보 상태에 접어든 양상이지만, 어쨌든 전작만큼은 선전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드라마는 어떻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는가? 특히 정통 드라마 문법을 연구한 사람들에게 '펜트하우스'는 새로운 과제를 던져준다. 소위 김순옥 월드에서 개연성은 무척 희박한 개념이다. '펜트하우스'와 '펜트하우스 2'는 표면적으로는 추리물의 구조로 띤다. 시즌 1이 ‘민설아(조수민) 살인 사건’ 중심이라면, 시즌 2는 ‘배로나(김현수) 살인 사건’이라는 틀에서 진행됐다. 시즌 1과 시즌 2는 데칼코마니처럼 비슷하다. 처음에 누군가 죽는 장면을 보여준다. 시즌 1의 도입부, 민설아가 헤라팰리스 꼭대기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배경을 보여주고, 그 후에 범인을 모르는 채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리고 민설아의 친엄마 심수련은 복수를 다짐한다.

시즌 2는 흰 드레스를 입은 사람이 청아예고 계단에서 구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여기서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부터가 미스터리로 제시된다. 그리고 중반이 이르자 죽은 사람이 배로나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시즌 1에서 민설아 살인 사건의 진범인 오윤희가 딸의 복수를 결심한다.

매력적인 악역들의 덜 매력적인 이야기


추리의 호기심이 드라마의 인기를 끌고 가지만, 이 드라마에는 추리물이 갖춰야 할 공정성이 결여되어 있다. 추리물의 공정성이라면, 합리적인 기초 위에서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증거를 내놓아야 하는데 '펜트하우스'는 애초에 불평등한 제목이 상징하듯 공정하게 플레이할 생각이 전혀 없다.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갑자기 살아오는 건 김순옥 월드의 특징이지만, 여기에 최소한의 설명도 없다. 가령, 시즌 2의 제1화에서 뉴욕에서 만난 하윤철(윤종훈)과 천서진(김소연)은 이혼한 부부로서 하룻밤을 보낸다. 그 직후 하윤철은 주단태(엄기준)이 보낸 이들에 의해 허드슨강에 빠지지만 살아온다. 강에 던진 사람을 어떻게 알고 구해올 수 있었는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저 로건 리(박은석)의 전지전능함에 맡긴다.

빠른 템포로 연이어 일어나는 사건 중심의 서사는 명백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시청자들이 자극에 익숙해지기 때문에 역치를 높이기 위해 묘사는 더 잔인해지면서도 허황한 코미디처럼 가벼워진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매 사건에서 승부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전을 만들기에 큰 틀의 윤리는 간과하게 된다는 점이다. 오윤희와 천서진처럼 악행을 저질렀어도 자기 아이를 지키려는 엄마이기 때문이라는 합리화가 가능하고, 배우의 연기로 동정을 살 수도 있다. '펜트하우스'의 악역은 매력적이지만 전체 이야기는 덜컹거린다.

하지만 이런 점이 중요할까? 적어도 이미 이 드라마의 빠른 속도에 관성적으로 실려 가는 시청자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할까? '펜트하우스'를 향한 열광은 좋은 드라마에 대한 기존 관념을 뒤흔들어버렸다. 헤라팰리스 맨 위 펜트하우스로 올라가기 위해서 무엇이든 하는 사람들처럼, 시청률과 화제성 차트의 위로 올라가기 위해선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이 이에 대한 대답을 고민하는 동안에 '펜트하우스'는 저 멀리 달려가고 있는 듯하다. 

글.

박현주(작가, 드라마 칼럼니스트.)

전문은 빅이슈 248호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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