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광들의 문구 성지, 서촌 올라이트

조회수 2021. 3. 4. 14:0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3월이 진정한 새해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2021년 다이어리를 보며 ‘분명히 계획을 세웠던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 때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용기를 가져본다. 정신없이 지나가버린 2월 달력을 가볍게 넘기듯이. 

기록광을 위한 문구 브랜드 ‘올라이트’(ALLWRITE)를 운영하는 이효은 대표는 꾸준함의 미덕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무언가를 더하기보다 빼는 디자인 철학은 당장 기록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그녀가 선보이는 상품들은 새벽처럼 차분하게 늘 열려 있다. 오늘의 작은 계획이 큰 보람을 얻을 수 있다는 그녀의 말처럼 무엇을 써도 다 괜찮은 매일의 이야기가 당신을 기다린다.

기록광을 위한 문구 상점의 주인은 어떤 사람인가요?

어릴 때 문방구를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다닐 때는 스티커와 다이어리 모으는 취미가 있었죠. 학창 시절에는 일기를 솔직하게 못 썼어요. 혹시나 누가 볼까 봐요. 성인이 되니 마음속에만 간직한 얘기를 반은 솔직하게, 반은 누군가의 눈을 의식하며 쓰다가 30대가 되니 거침이 없어졌어요. 미워하는 마음도 그대로 받아들여요. 예전엔 착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나 봐요. 과거 일기를 읽어보면 괜찮은 척하는 게 티가 나더라고요. 기록을 하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아요.


그래도 문구 상점을 여는 도전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다이어리를 직접 만들기 전에는 끝까지 채워본 적이 없어요. 다이어리를 채우지 못한 제 모습에 실망하곤 했죠. 비어 있는 칸이 많을수록 조여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단순한 구성으로 사람들이 끝까지 채울 수 있는 다이어리를 만들고 싶었어요. 블로그를 통해서 다이어리 500권을 판매한 게 시작이었죠. 본격적인 사업을 위해 가족과 은행에서 자금을 최대한 끌어모았어요. 그 뒤로 충무로 인쇄소에 발품을 팔며 다양한 문구를 만들기 시작했죠.

누군가와 같은 마음이었다는 게 올라이트의 존재 이유군요.

처음엔 다 팔리지 않으면 할머니 될 때까지 평생 써야 하나 싶은 걱정도 들었어요. 막상 저도 다이어리를 다 채우니 기뻤거든요. 비슷한 사람들이 많아서 함께 성장할 수 있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걸 만들면 파장이 되어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고 만들어요. 오프라인 숍을 운영하면서는 다이어리를 사러 오는 손님들에게 감사해요. 직접 만져보고 사는 건 다르니까요. 종이가 주는 따뜻한 물성을 느끼며 숍을 운영한 지도 어느덧 5년이 됐네요.


창의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당신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는다고 느껴요. 다 채운 다이어리를 제게 보여주는 손님들이 계세요. 한 권을 다 쓰는 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어렵거든요. 그리고 한 권 쓰면 다음에도 쓸 수 있는 힘이 생기잖아요. 

창의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당신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는다고 느껴요. 다 채운 다이어리를 제게 보여주는 손님들이 계세요. 한 권을 다 쓰는 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어렵거든요. 그리고 한 권 쓰면 다음에도 쓸 수 있는 힘이 생기잖아요.


상점을 찾는 사람들에게 어떤 가치와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나요?

사람들이 기록하면서 자신을 사랑하게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부담을 가지면 백지 앞에서 작아지는 기분이 들잖아요. 모든 계획을 다 지키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완벽을 위해서 누군가와 비교하는 대신 다시 용기를 내 써보는 거죠. 소소한 물건일지라도 누군가에게 용기를 줄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다이어리를 사는 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과는 다른 일이니까요.

종종 손때 묻은 다이어리를 수줍게 보여주시면 제가 실례지만 조금 보여달라고 할 때가 있어요. 몇 년 전에 판매했던 메모 패드 플래너를 찾으셨던 분인데, 입시를 준비하면서 스스로를 응원하는 말들을 빼곡히 써놓은 게 참 멋졌어요. 꾸준히 찾아주시는 분들에게 에너지를 얻고 그 힘으로 행복하게 만들게 돼요.


문구를 제작하고 수집하는 대표님의 취향과 기준이 궁금해요.

의도한 건 아닌데 지금까지는 올라이트가 곧 저로 연결된 것 같아요. 좋으면서도 한편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사람보다 상품이 먼저 보여야 좋잖아요. 해외에서 산 물건 중에 아까워서 못 쓰는 것들이 있어요. 포장도 안 뜯은 것들을 보면 자책감이 들어요. 그래서 요즘은 물건을 살 때 소장 가치보다는 자주 쓰게 되는 것 위주로 사요. 글씨로 가득 찬 노트를 보면 역시 이렇게 써야 제맛이라는 생각이 들죠. 무엇이든 다 쓰고 나면 신이 나잖아요. 문구의 목적은 쓰임이라고 생각해요.

기록은 운동과 비슷한 것 같아요. 가벼운 것을 들다 보면 더 무거운 것을 들 수 있잖아요.
작은 것부터 써보고 안 되면 다음 달에 다시 써요. 자책하지 말고 일단 적어보기를 추천해요.

올라이트의 물건들은 확실히 기본에 집중하는 것 같아요.

다만 ‘실용적’이라는 말은 경계해요. 예를 들어 집에서 화장실 갈 때도 가는 길에 뭘 하는 등 하나의 움직임도 낭비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일이 바쁘다 보니 시간을 쪼개서 쓰는 걸 당연하게 여겼고요. 

그래서 요즘은 행동 하나를 제대로 느끼며 하려고 해요. 사진관에 갈 때도 필름 한 롤 때문에 가기도 하고. 다른 곳으로 새지 않고 집으로 바로 오는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해요. 실용에서 벗어나서 순간에 몰입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다이어리를 다 채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팁이 있다면요.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사소한 것도 계속 적어요. 공과금 납부 같은 것도 다이어리에 동그라미를 치고 싶어서 빨리빨리 처리해요. 작은 계획들도 직접 써보면 하루하루 하는 일들이 아주 많다고 느껴요. 작은 계획들에 하루에 하나씩 동그라미 치는 게 삶의 당근이 되니까요. 기록은 운동과 비슷한 것 같아요. 가벼운 걸 들다 보면 더 무거운 것을 들 수 있잖아요. 작은 것부터 써보고 안 되면 다음 달에 다시 써요. 이루고 싶은 꿈은 계속 적다 보면 언젠가 그 힘이 생겼을 때 이룰 수 있으니까 자책하지 말고 일단 적어보기를 추천해요.


내가 만들고 내가 잘 쓰는 최애 제품을 하나 소개해주세요.

3개월 다이어리를 가장 자주 쓰게 돼요. 한 권 다 채웠을 때 보람을 느끼거든요. 노트북 가방이나 가방에 넣어도 부담 없는 가벼운 노트예요. 개인적으로는 1년에 4권을 사는 비용보다 사용하면서 느끼는 보람의 값어치가 훨씬 더 큰 거 같아요. 그리고 평소 안 쓰고 버리는 부분이 많았다면 자유롭게 그림도 그리면서 백지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곤 해요. 일기처럼 그림도 그리고 아이디어로 다채롭게 다이어리를 채워보시기 바라요.

대표님의 취향과 기호가 담긴 공간과 제품을 유지하는 비결이 뭔가요?

제 친구 말을 빌리자면 문구를 만들던 초기에는 ‘내가 이거 만들었으니까 사고 싶으면 사고 아니면 마’ 하는 느낌이 매력이었대요. 오프라인 상점을 열고 제가 만든 물건들을 한눈에 보니까 묘하게 닮아 있고 조화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요즘 유행하거나 누군가의 것의 첨가하는 걸 원하지 않고 뭐든 스스로 풀어내고 싶은 고집이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면서 느낌 점은 무언가요?

목적만 좇으면 어느 순간 삶의 균형을 잃을 때가 있잖아요.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모습이 종종 슬프게 느껴져요. 현재에 집중하다 보면 돈은 언젠가 따라올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일해요. 저는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니까 제 일이 힘들어도 생각할 시간이 많아서 좋아요. 올라이트를 시작할 때 서른 전에 빚을 다 못 갚으면 무슨 일을 해서든 갚을 계획이었어요. 근데 막상 지금 망한다면 큰일 날 거 같아요.(웃음) 회사 생활은 못 할 거 같아요. 그래서 제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출처: Unsplash

앞으로 올라이트를 어떻게 꾸려가고 싶어요?

누군가와 함께 늙어가는 느낌을 주는 다이어리를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손님들이 소비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다음을 위한 용기를 주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근황을 알려주세요.

식물이 계절에 따라 꽃을 피우고 에너지를 비축하듯이 삶에 집중하고 있어요. 보통 겨울에 바쁜데 지친 상태로 지금까지 달려온 몸과 마음을 돌보고 있죠. 올해 겨울에는 차곡차곡 에너지를 잘 쌓아보려고 합니다. 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조금 불안하더라도 앞으로도 이렇게 해보려고 해요. 참, 오늘 집에 가서 베이킹에 도전해볼 계획이에요.(웃음)


글/ 정규환, 사진/ 김화경

출처: http://www.bigissue2.kr/
샵(#)빅이슈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