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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옥상은 왜 그렇게 생겼나

조회수 2021. 3. 2. 17:4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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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가 아닌 일상을 살아가는 도시에서 길을 걸을 때 건물의 옥상을 올려다보며 걷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옥상은 잘 보이지 않는다. 평소 존재감이 없는 만큼 옥상이 눈길을 끌었다면 예삿일은 아닐 것 같다. 내가 서울에서 발견한 옥상 위의 구조물 모두 흥미로운 사연을 가졌다.

용산 나진전자월드상가 앞을 걷던 참이었다. ‘저게 뭐지?’ 7층짜리 파란색 타일 건물 옥상에 은빛 돔이 보였다. 분명히 돔이었다. 돔 바로 아래에 ‘과학동아천문대’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과학동아 천문대 홈페이지의 소개 페이지 상단에는 “별을 보고 탄성을 질러본 적이 있습니까?”라고 쓰여 있었다. 홈페이지의 소개 문구를 쓴 사람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저는 용산 전자상가 길거리에서 과학동아 천문대를 보고 탄성을 질렀어요!” 

2013년 과학동아 건물 옥상에 설치되어 문을 연 천문대는 지름 7m의 원형 돔으로 360도 회전하는 천창이 있어 망원경을 통해 달, 행성 등을 관찰할 수 있다. 달 관측 프로그램에 참가해보았는데,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어두운 곳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깜깜한 용산역 북쪽의 넓은 부지, 점점 쇠락해가는 용산 전자상가의 공중에서 첨단 천체망원경을 통해 달을 보는 기분은 오묘했다.

옥상, 세상 위의 세상

경복궁역 4번 출구 쪽에서 길을 건너던 중이었다. 친구가 “지혜 씨 저게 뭐예요?” 하고 소리쳤다. 친구가 가리킨 것은 서울경찰청 건물 옥상 정중앙에 설치된 콘크리트 구조물이었다. 6층의 구조물은 위로 갈수록 원의 반경이 작아졌고, 탑처럼 보였다. 인터넷 검색으론 용도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없어 다음 날로 경찰청 시설과에 문의했다. 여러 차례 전화를 돌리고, 돌리고, 돌린 후에 통신용 송신탑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무엇을 기대했는지 몰라도 답변을 듣고 실망했는데, 다른 지역의 지방경찰청 건물을 찾아보니 다들 옥상에 철탑이 높이 서 있었다. 다른 지역의 지방경찰청 철탑은 쉽게 통신용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는 생김새였다. 서울경찰청만 유독 SF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형태일 건 뭐람.

남대문로5가에 있는 밀레니엄 힐튼 호텔 24층 건물의 최상층은 객실창이 난 건물의 다른 입면과는 다르게 두 층 높이로 루버가 설치되어 있다. 이 부분에 대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김종성은 이렇게 말했다. 

“이게 대단히 높은 건물이 아닌데도 그때(1980년대 초반) 정부 방침에 시내에서 조금 높은 건물은 고사포를 배치를 해야 돼요. 그래서 여기에 고사포, 여긴지 어딘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고사포가 있고, 고사포를 운영하는 군인들 숙소가 있고.”(<김종성 구술집>, 마티, 2018.) 

호텔 옥상에 비행기 공격용 화기라니. 남산타워에서 레이저빔을 쏘면 국회의사당 지붕이 열리면서 태권브이가 나타난다는 도시 괴담같이 들렸지만 정말이었다. 힐튼호텔의 고사포는 이사를 나갔지만, 여전히 서울 도심 고층 빌딩 곳곳에는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방공단이 근무하는 진지가 있다.

높은 곳에서 도시를 내려다본다고 해도 건물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색다른 풍경에 사로잡히지 옥상을 눈 여겨 보는 사람을 드물 것 같다. 

옥상은 길에서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아도 잘 보이지 않는다. 잘 보이지 않는 곳, 미지의 영역이라는 느낌 때문일까. 옥상에 있는 구조물은 어딘가 낯선 세계와 연결될 것 같다. 가끔 옥상을 올려다보고 기이한 구조물을 발견할 때마다 낯선 세계로 이어지는 상상을 해본다.   


글, 사진제공/ 신지혜

출처: http://www.bigissue2.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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