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줘'와 '가즈아'가 공존하는 이상한 세계

조회수 2021. 2. 8. 19:0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팬데믹 속 경제 양극화

삼성전자의 주가가 1년도 되지 않아 두 배 정도 올랐다. 코로나19의 여파로 곤두박질쳤던 코스피 지수는 사상 최고점인 3000을 돌파했고 그 이후로도 쉬지 않고 계속 상승하고 있다. 기술주를 중심으로 모아놓은 코스닥 지수 또한 역대 최고점을 돌파해 한 번도 달성한 적 없는 1000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런 호황이 주식시장에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서울 주요 지역 아파트들은 연달아 신고가를 경신했다. 노원, 강북에 이어 금천이나 구로 지역의 아파트도 ‘10억’을 돌파했다. 상황만 놓고 보면 우리는 수십 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호황을 맞은 것 같다. 

그러나 이건 이상한 일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 세대에서 한 번도 겪은 적 없던 최악의 전염병 사태 한가운데 있다. 여객을 실어 나르는 비행기는 1년째 멈춰 있으며 대부분의 국가는 작년 한 해 동안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여행업에 종사하던 사람, 서비스업계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직장에서 내쫓겼고, 자영업자들은 텅 빈 거리를 보며 한숨을 쉬며 버티거나 폐업했다.

한쪽에서는 ‘가즈아’를 외치면서 엄청난 투자 소득을 챙기는 반면에 한쪽에서는 ‘살려달라’고 절규하거나 그조차도 못해 삶을 포기하고 있다. 이건 ‘자본주의의 민낯’으로 간단하게 치부해버릴 일이 아니다. 우리는 팬더믹의 시대를 맞아 불시에 큰 상처를 입었고 다급히 응급조치를 시행했다. 그리고 촉박하게 시행된 응급조치는 부작용을 일으켰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아직 부작용이 제대로 나타나기 시작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금융 위기의 반성에서 나온 ‘돈 풀기’ 정책

마크 블라이스는 저서 '긴축: 그 위험한 생각의 역사'에서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때 유럽 국가들이 펼친 긴축정책을 비판한다. 당시 유럽 내에서 비교적 덜 건실했던 국가들(PIIGS: 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은 유로화가 단일 통화라는 점을 활용해 원래 자신들이 부담해야 할 이자보다 낮은 수준의 금리로 국채를 발행한다. 유럽의 대형 은행들은 이 채권을 안전 자산으로 인식하고 엄청나게 사들이며 이들 국가에 유동성을 공급했다.

그러다가 2008년, 미국 내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대규모 채무불이행 사태가 나타나면서 금융위기가 촉발되었다. 금융위기가 터지자마자 전 세계 국채가 폭락했고 PIIGS 국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문제는 유럽 대형 은행들이 이들 국가의 국채에 너무 많은 돈을 투자했다는 점이었다. 미국의 금융 위기는 곧 유럽의 금융 위기가 되었지만 유럽과 미국의 대처는 달랐다. 미국은 곧바로 엄청난 재정을 투입해 위기에 빠진 은행들에 긴급 수혈을 했다. 

하지만 유럽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단일 통화를 사용했기 때문에 쉽게 화폐를 발행해 확장 정책을 취할 수 없었고 재정 정책을 펼치기에도 장애물이 많았다. 결국 문제의 원인을 다른 데로 돌리기 시작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국가의 방만한 국가 경영’ 때문에 유럽 일부 국가들이 금융 위기에 취약해졌다고 설명했다. 위기 상황에서 이런 주장은 쉽게 먹혀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리스가 복지 포퓰리즘 때문에 망했다’는 이야기가 쉬지 않고 전해졌다. 유럽 국가들은 긴축 조치를 취해야 했다. 복지 혜택을 줄이고 소비를 줄여 ‘재정 건전성 확보’에 나섰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긴축이 썩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건 역사적으로 수차례 증명되었다. 1929년 대공황이 터지자 미국은 대대적인 증세를 펼치며 긴축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실업률은 더욱더 치솟았고 공황 상태는 더욱 심각했다. 결국 미국은 1933년부터 대대적인 경기 확장 정책을 취했고 그제야 공황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997년 동아시아 금융 위기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를 바탕으로 한국 정부에 긴축을 포함한 여러 조건을 내걸며 돈을 빌려줬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다. 돈을 써야 할 때 쓰지 못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고금리 및 초긴축 재정 정책을 취했던 한국은 결국 생존할 수 있었던 수많은 기업의 도산과 그로 인해 수많은 실직자가 양산되는 사태를 그냥 지켜봐야만 했다. 결국 한국이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계기는 카드 활성화 정책을 통한 소비 진작이었다. IMF도 후에 이 점을 반성했다. 2017년 한국을 방문했던 휴버트 나이스 전 IMF 아태국장은 한국에서 취했던 긴축재정과 고금리 정책이 잘못임을 인정했다. 

2008년 경제 위기도 마찬가지였다. 긴축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와중에 일부 학자들은 ‘긴축정책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실업률을 크게 높이며 결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이 높아지는 악순환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긴축정책을 감행했던 그리스 같은 나라는 더욱더 깊은 침체에 빠졌다. 그러나 통화가치를 절하하고 자본을 통제하는 한편 오히려 복지 정책 강화했던 아이슬란드는 위기를 빠르게 벗어날 수 있었다.

마크 블라이스는 역사적으로 이뤄진 긴축정책을 두고 “소득 하위 계층은 상위 계층이 초래한 문제를 해결하는 비용을 내라는 불공정한 요구를 받았고 상위 소득 계층은 자신들이 초래한 문제임에도 국가를 비난함으로써 책임을 모두 회피했다”고 표현했다.

2008년 경제 위기에 대한 반성을 통해 세계경제는 더 이상 ‘긴축은 답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우리에게 2020년 팬데믹이 찾아왔다. 

팬데믹 호황

코로나19가 본격화된 지난해 3월부터 올해 1월까지 미국의 시중 통화량(M2)은 약 20% 이상 증가했다. 금액으로만 따져도 우리 돈으로 약 4000조 원이 넘는다. 전례 없는 유동성 확대는 과거의 교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위기 상황에서 긴축은 경제에 더 큰 악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미국이 지출한 금액 중 상당수는 재난지원금과 실업급여 등 직접 지원금이었다. ‘헬리콥터 머니’라고 부를 정도로 막대한 자금을 시중에 뿌렸다. 미국만 그런 것도 아니다. 경제적 여력이 있는 나라들은 위기에 봉착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일단 돈을 살포하고 봤다. 자칫 잘못하다간 장기 침체에 빠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닥친 위기가 아니었다. 도시가 봉쇄되고 거리가 텅 비면서 자영업자와 그들에게 고용된 사람들, 경기에 민감한 소비재를 생산하는 기업들, 여행 관련 산업이 크게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생활이 멈춰버린 것은 아니었다. 

비대면 소비가 확대되면서 아마존이나 쿠팡 같은 전자상거래(이커머스)를 주도하는 업체가 수혜를 입었고, 또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화상회의 서비스 기업들이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학교 등도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하면서 PC 소비가 늘었고 동시에 애플이나 삼성 같은 회사들이 바빠졌다. PC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자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하는 반도체업체 등도 공장을 멈추지 않고 계속 가동했다.

각 나라들이 펼친 재정 정책은 누군가에겐 겨우 오늘 입에 풀칠할 정도의 생존 금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자영업을 하거나 서비스업을 하는 건 아니었다. 직장에서 잘리지 않고 회사를 잘 다니던 사람들에게는 체감할 만한 경기 위축이 없었다. 그들에게 정부가 살포한 돈은 ‘공돈’이었다. 

물론 정부도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에게 추가로 자금이 지원되면 소비가 늘 것이고, 이렇게 늘어난 소비가 제한적으로나마 길거리 경제를 살릴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오랫동안 저금리정책이 계속된 상황에서 시중 유동 자금까지 늘어나니 주식시장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면서 콘텐츠 기업인 넷플릭스, 화상회의 소프트웨어 제공 업체인 줌 커뮤니케이션,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아마존 등 소위 ‘언택트 기술주’들이 상승을 이끌었다. 큰 폭락장 뒤에는 반드시 반등장이 온다는 것을 수차례 경험했던 개인투자가들이 여유 자금을 가지고 전략적 선택을 했다. 그리고 다우, 나스닥, 코스피, 코스닥은 모두 ‘팬데믹 호황’이라는 기이한 현상을 보이며 새로운 고점을 기록했다.

주식시장만 들썩인 것은 아니다. 금리가 낮고 시중 유동성이 높아지면 돈의 가치가 떨어지기에 자산 가치가 올라간다. 금값과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한국은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지 않자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패닉 바잉’까지 이어지면서 서울 대부분의 아파트 가격이 최고점을 경신했다. 

‘뉴 노멀’이 만든 새로운 양극화

잠시 2년 뒤를 생각해보자. 그때쯤 우리가 ‘팬데믹 종식’을 선언한다면 우리는 이제 모든 상처를 깔끔하게 털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인한 호황으로 자산 시장에서 돈을 벌었던 사람은 코로나19를 축복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각종 지원책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의 시대를 견뎌내지 못하고 탈락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수입이 그럭저럭 괜찮던 이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도 있고, 겨우 버텨내던 이들도 가지고 있던 자산을 대부분 까먹은 채 ‘다시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져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는 팬데믹이 끝난 시기다. 시중에 풀린 돈을 회수해야 한다. 금리도 올려야 한다. 금리가 올라가면 물가도 오른다. 오른 물가만큼 소득이 오르지 않는다면 실질소득은 줄게 된다. 이뿐 아니다. 코로나19를 버티기 위해 빚진 자들은 금리가 오르면 고통이 배가된다. 팬데믹이 끝나도 누군가에겐 끝나지 않은 일이 될 수가 있다.

코로나19를 버티기 위해 확장 정책을 펼친 정부가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팬데믹 초기에, 누가 소득이 줄고 타격을 입었는지 불명확했기에 모든 국민에게 무차별적으로 지원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은 지 1년째다. 누가 힘들고 누가 그렇지 않은지 구별할 만한 데이터가 쌓였다. 유동성을 풀고 재정 지원을 하되, 이전처럼 무차별적 지원을 하는 게 아니라 골라내 집중해야 한다.

자영업자와 실직자, 저임금 종사자는 아낌없이 지원해 그들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시국을 어려움 없이 버틸 수 있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그들에게는 조세를 포함해 ‘고통 분담’을 요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에도 코로나19가 만든 ‘불평등’이라는 후유증에 한동안 더 고통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글/ 백승호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