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줍는 노인이 될까봐..여성화된 빈곤

조회수 2021. 3. 22. 11: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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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가난의 문법> 저자 소준철 인터뷰

이전 편에서 이어집니다.

Q.

수집인들이 다른 수집인이 아니라 지자체의 환경미화원들이랑 경쟁하는 것도 이상하게 느껴져요. 분명 배출일 이외의 날짜에 쓰레기가 쌓이지 않게끔 일을 대신 해주는 것이기도 한데, 같은 날 겹치면 누가 먼저 쓰레기를 줍나 경쟁하는 거고요. 보완 관계도 경쟁 관계도 아닌 이 상황을 어떻게 보시나요? 

A.

수렵 채집 사회가 이렇지 않을까요? 저도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참 막연해요. 모두가 쓰레기 채집에 동원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죠. 도시에 쓰레기가 쌓여 있는 상황에서 다 이걸 돈과 자본으로 이해하려고 해요. 어떤 사람은 가난해서 하는 거고 어떤 사람은 역시 가난한데 고용돼서 돈을 벌려고 하는 거고요. 사실 환경미화원의 사정이 나으냐 하면 그들도 보호를 못 받거든요. 


몇 년 전쯤에 환경미화원 한 분이 국민청원으로 올린 내용을 짧게 정리해 책에 각주로 달았는데 그분들 역시 구청에서 위탁한 업체가 고용한 사람이에요. 휴가도 없고 쓰레기 양도 사람들 사정에 맞게 배분되는 게 아니라 구청과 계약한 총량에 맞춰서 바깥 날씨가 어떻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야 하는 사람들이에요. 모두 다 보호받지 못하는데, 더 웃기는 건 우리가 만든 쓰레기가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경쟁으로 밀어 넣고 있는 점인 것 같아요. 

Q.

쓰레기를 배출하는 개개인은 마음이 무겁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도 됩니다. 

A.

우리 개인의 죄책감도 필요합니다만 문제의 주체가 누군지 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적게 써야 하는 것도 맞지만 결국은 쓰레기를 재생산 산업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관리 주체인 정부 역시 책임이 있으니까 각 주체에 필요한 역할을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모두 책임을 나눠 지는 게 우리의 도시 생활이겠죠.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서 ‘난 어떡하지?’ 하는 개인적 감상은 지양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중림동의 고물상.

Q.

수집인 여성 노인들을 주목하면서 ‘한국 사회의 빈곤은 여성화된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A.

여성에게 기대하는 사회적 역할이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봐요. 식민지 시기부터 1980~90년대까지 여성들에게 주어진 역할은 가족을 잘 건사하는 일이었죠. 특히 모성과 희생정신을 발휘해 현모양처가 되기를 바랐어요. 그런데 1990년대 이후 2000년대가 되면서 우리 사회는 더 이상 가족 중심으로 굴러가는 곳이 아니잖아요. 더구나 여성 노인들은 갑자기 남편이 아프거나 자식들에게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사회보장에서 벗어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거죠. 


여성들은 현모양처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다가 어느 순간 가장의 역할까지 맡게 되는데 우리 사회는 여성이 가장일 수 없는 구조예요. 왜냐하면 지금까지 나가서 일을 할 수도, 기술을 가질 수도 없었으니까요. 여성들이 제도 바깥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거죠. 기초생활수급자라도 되면 모르지만 차상위계층이라면 얻을 수 있는 게 한정적이니까 결국 혼자 버텨야 하는 거죠. 이 사례가 아래 세대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봐요. 빈곤 문제는 세대 문제이기보다 계급 문제고, 전 세대에 걸쳐 하층계급 상황은 동일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런 면을 여성들, 특히 지금의 여성 노인들이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가난의 전형성을 여성 노인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본 거죠. 

Q.

또 가난한 이들이 자력 구제해야 한다는 요구가 가지는 맹점도 지적하시는데요.

A.

자활 논리의 가장 큰 특징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모두 문제의 원인을 개인한테 돌리는 데 있어요. 예를 들면, 형제복지원의 시대와 그 이전 시대에는 부랑인이 문제였어요. 부랑인은 현재의 노숙인과 유사한 형태인데 그 안에는 그냥 술 먹고 집에 안 간 사람도 있는 거고요. 단속할 때 주소를 말하지 못한 사람들이 부랑인이 될 텐데 국가가 이 사람들을 보고 뭐라고 했냐면 '떠돌아 다니는 습성이 있다', '일을 안 하려고 하는 개인적인 특성이 있다'고 했어요. 개인의 성격 문제로 귀결시킨 거죠. 지금의 가난한 노인들에게도 젊었을 때 한 번 잘못됐으니까 나중에 이렇게 사는 거야, 라고 얘기하면서 정부 혹은 사회가 멋들어지게 '우리가 네가 이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줄게' 하거든요. 그러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는 게 기본적인 자활의 논리인 거죠. 


저는 개인이 잘못됐다는 전제를 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 한다고 하지만 가난이 정말 개인의 특성 때문에 생기는 문제인 걸까? 구제할 방법이 진짜 없는 걸까? 하는 질문을 계속 하는 게 시작이라고 봤어요. 이런 면에서 가난이 구조적인 문제라는 인식을 널리 퍼뜨리는 게 가장 큰 목표라고 봤어요. 이 책도 그런 목적에서 쓰였죠. 즉 ‘자력갱생’이나, 요새 되게 많이 쓰는 ‘각자도생’ 같은 용어가 말하는 바는 사회가 개인에게 기회를 충분히 줄 테니 이 기회를 잡고 올라오라는 건데, 개인이 기회를 얻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사회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부를 한쪽에 몰아주는 문제도 있고, 기회가 균등한가 하는 질문을 원론적으로 할 때죠.

문래동의 재활용품 수집인.

Q.

쓰레기 하나에서 참 다양한 문제가 드러나네요. 앞으론 어떤 연구를 하실 건가요? 계획 중인 다른 연구가 있나요?

A.

박사 논문을 쓰고 있어요. 올해 가을쯤 마무리할 예정이에요. 가난한 사람들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하고 그 가난의 경로가 어땠는지 파악해보고 싶어서 연구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쓰레기 처리 시스템이 완벽하다는데 어떻게 수집인이 존재하는 거지? 그러면 그 체계가 가진 특징이 있는 거 아니야?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그걸 파헤치는 내용이에요. 

Q.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자유롭게 해주세요.

A.

저는 하층민과 쓰레기의 관계를 연구하는 사람이지만 핵심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문제를 안고 있는 것 같아요. 도시는 되게 괴로운 공간이잖아요. 먹고살아야 하고 빨리 돌아다녀야 해요.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것을 논할 때 홈리스들이 대표적으로 언급되죠. 행동이 굼뜨고 일도 하지 않고 밤이 되면 돌아다니니까 무섭고. 사회에서 노인들에 대해 가지는 부정적 인식과 비슷한 상황이죠. 왜 이들이 차도로 다니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지 꼬집는 사람도 있는데, “그러면 이 사람들은 존재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입니까?” 하고 질문하게 돼요. 1980년대처럼 사람을 가둬서 갱생시키겠다, 자립시키겠다고 하는 말도 안 되는 목표가 실패한 걸 목도한 상황에서 그들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 싶어요. 빅이슈도 이런 고민과 목적을 공유한다고 생각해요. 노인들도 몸과 상태에 따라 할 수 있는 역할이 뭐가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봐요. 도시와 속도가 맞지 않는 노인들에겐 맞는 속도를 찾아주는 게 다음 세대가 할 일이고, 제 책 다음에 누군가 같이 고민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글/양수복

사진제공/소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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