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폐지 줍는 노인'이 많은 이유

조회수 2021. 3. 22. 11: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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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가난의 문법> 저자 소준철 인터뷰

폐지 줍는 노인은 ‘우리의 도시 생활’을 구성하는 요소가 됐다. 이들이 없다면 밀집한 주택가는 금방 쓰레기 천지가 되고 말겠지만 도시 사람들은 고마움을 느끼기보단 오히려 위험천만하게 리어카를 끌고 가는 뒷모습에서 가난한 노년에 대한 두려움을 발견한다. 연구자 소준철은 도시 어디에나 있지만 누구도 고민하지 않던 이 주변화된 존재에 주목했다. ‘알게 모르게 착취당하는 존재’일 거란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재활용품 수집인 없이 굴러가지 않는 재활용 산업의 빈틈을 파고들었고 빈곤이 어떻게 여성 노인의 삶에 파고드는지를 연구했다. 지난해 11월 말 출간한 <가난의 문법>은 그 결과물이다. 

출처: 사진제공. 푸른숲

Q.

'가난의 문법'이 지난 1월 7일에 4쇄를 찍었네요. 책이 화제가 됐는데,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A.

1쇄만 나가면 다행일 거라는 얘기를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4쇄까지 찍었다고 하니까 뭐라고 해야 할까요? 어깨가 무겁기도 하고, 사실 대책을 명확하게 얘기할 수 있는 책은 아니어서 요즘 더 심란해요.

Q.

코로나19 때문에 재활용품 사용이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이것들을 제대로 배출하고 있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생겼잖아요. 그것만 생각하다가 이 책이 버려진 재활용품을 산업에 진입시키는 수집인들의 역할과 이들이 이 일을 하게 된 배경에까지 생각이 확장된 것 같아요.

A.

시기가 좋았던 것 같아요. 요새 재활용 관련 책이 굉장히 많이 나왔죠. 제로 웨이스트 관련 움직임도 뚜렷하고요. 정부 역시 제로 웨이스트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는데, 제 책이 ‘개인한테 재활용을 강요해봤자 세상이 변하는 게 뭐야?’라는 문제를 생각해보게 하는 역할을 한 거 같아요. 한국의 쓰레기 문제는 통계적으로 완벽하거든요. 전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재활용 쓰레기 처리율을 자랑하는데, 진짜 그러냐고 물어봐야 하는 때라는 거죠. 


홍수열 선생님이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에서 시스템은 완벽하지만 낡은 정책이 문제라고 얘기하시는데, 저는 행정을 위한 쓰레기 통계는 완벽한데 실제 산업과 구조는 굉장히 취약하다고 봐요. 폐지 줍는 노인처럼 누군가를 착취하는 구조이기도 하다는 거죠. 산업이 굉장히 잘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최근 드러난 쓰레기산 문제처럼 행정적으로는 완벽한데 실제 처리는 불투명한 지점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북아현동의 수집인이 보관해둔 재활용품.

Q.

문제점을 던져주셨는데, 이 시스템을 보완하거나 사각지대에 있는 수집인을 제도권 안에 포섭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A.

사실은 없어요. 부끄러운 얘기지만 저는 현재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고 구조를 밝혀내는 인간이에요. 정책은 이제 다른 연구자 혹은 정치가들이 해주기를 바라는 입장이라 제가 집중해야 할 부분이 아니라고 봐요. 제가 더 해야 할 건 두 측면인 것 같아요. 한국 사회가 소수자라고 불리는 존재뿐 아니라 다수였지만 사회의 주축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책의 대상이 되지 않은, 지금 노인이 된 여성들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쭉 밝혀내는 게 제 작업 중 하나일 거예요. 또 다른 작업은 이번 문제에서 드러나듯 행정이 어떻게 완벽한 척을 하고 있는지 그 신화를 파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이번 작업을 하며 더 굳히게 됐어요.

Q.

한국에선 재활용품 수집을 주로 여성 노인들이 하고 있는데, 우리만의 상황인지 궁금해요. 다른 나라에서는 어떤가요?

A.

예를 들어 인도는 국제노동기구(ILO)에서 관련 보고서가 몇 개 나오고 있고, 남미 쪽에서도 같은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 관한 연구 결과가 있어요. 그 연구들을 책에 충분히 소개를 못한 게 좀 아쉽기는 해요. 간략히 말하자면 한국에선 이 일을 노인들이 주로 한다면 인도에선 농촌을 떠나 도시로 들어왔다가 실패한 젊은 사람들이 해요. 취업하기 힘든 사정이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몇 가지 일 중 하나인 거죠. 

재활용품으로 가득찬 한 수집인의 카트.

Q.

책에서도 언급하셨는데, 한국에서도 수집인들 간 경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면서요. 이전엔 여성 노인과 남성 노인의 경쟁이었다면 이제는 젊은 청장년층, 외국인들도 이 일을 한다고요?

A.

그렇죠. 제 기억에 6~7년 전쯤 전주시에서 조선족 젊은 부부가 재활용품 수집을 한다는 사실이 기사로 밝혀진 적이 있어요. 그때 댓글이 난리가 났었어요. 우리나라의 가난한 사람들도 살기 힘든데 저 사람들까지 나서게 해야 하느냐며 다 쫓아내야 한다고 말도 안 되는 국수주의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었죠. 그 이후로 저도 시간만 나면 동네에서 찾아보는데 서울에서도 꽤 많이 보여요.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들어온 분들이 원래 하던 노동에서 이탈해서 그 일을 하는 거죠. 막노동보다도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요. 

Q.

체력이 부족해도 할 수 있는 일이고요. 

A.

맞아요. 일용직 노동은 ‘오야’(책임자)라고 부르는 존재한테 허락을 받아야 하는 구조잖아요. 그런데 재활용품 수집은 이런 허가도 필요 없는 일이니까 접근성이 아주 좋은 거죠. 그래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계속 몰리는 것 같아요. 다르게 보면 한국 사회가 중산층을 기반으로 한 사회구조를 다지는 데 집중하기는 했는데, 중·하 혹은 하층 계급을 위한 일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는 점과 복지제도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클릭하면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글/양수복

사진제공/소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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