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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만 있으면 괜찮아, 내 인생의 구원

조회수 2021. 1. 10. 21: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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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2' 리뷰

어떤 사람들에겐 크리스마스가 더 쓸쓸하게 느껴진다. 세상 사람들이 가족, 친구, 연인과 “메리 크리스마스!”를 연호할 때 성대한 만찬은커녕 당장 먹을 저녁거리도 없고 즐거운 이벤트는 언감생심인 거리의 극빈곤층에게 명절은 상대적 박탈감을 증폭시키는 날일 뿐이다. 제임스 보웬(루크 트레더웨이)에게도 그랬다. 

전편에서 노숙하던 시절부터 어깨 위 고양이와 함께 잡지 빅이슈를 판매하는 버스커로 화제가 되어 책을 출간하고 마약중독을 극복하며 베스트셀러 작가에 오르는 제임스의 인생 역전 스토리를 담았다면, 속편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2'(A Christmas Gift from Bob)에선 제임스와 밥이 처음으로 함께한 크리스마스 시즌이라는 짧은 기간을 배경으로 한다. 이번 영화를 기획한 프로듀서 애덤 롤스턴의 제작기를 읽어보면 속편 제작을 위해 남은 단 하나의 자료인 책 '밥의 선물'(A Gift from Bob)을 찾아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2'는 전편에 버금가는 흥행을 기대하며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영화다. 밥이 제임스를 집사로 간택해 서로가 서로를 살리게 된 놀라운 실화를 바탕으로 하기에 ‘기적’을 이야기하기에 제격이다.

밥과 만들어가는 크리스마스의 기적

영화가 보여주는 제임스와 밥이 함께 맞은 첫 크리스마스는 녹록지 않다. 에세이 '내 어깨 위 고양이, 밥'(A Street Cat Named Bob)을 쓰기 전 제임스는 생활비 걱정으로 패닉에 빠지고, 돈을 벌기 위해 길거리에서 노래하고 빅이슈를 팔아야 하는 빈곤층이었다. 게다가 그는 크리스마스에 회의적인 사람이었다. 그가 떠올리는 크리스마스는 정신병원에서 깨어난 날이거나 아빠가 옆에 있기를 바랐지만 전화로만 연락할 수 있는 쓸쓸한 날이었다. 과연 제임스에게도 즐거운 크리스마스가 찾아올까? 

기적이 찾아오려면 시련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영화는 중반까지 제임스에게 닥치는 고난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끼니 걱정, 밥의 의료비 걱정 등 가난 때문에 비참한 순간을 수없이 맞닥뜨리는데, 어느 때보다 제임스가 정신적으로 무너질 위기에 처하는 건 고양이 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할 때다. 이유 없이 그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동물보호국 직원 한 사람 때문에 밥을 두고 실랑이가 벌어지는 것. 


이 직원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끈끈한 제임스와 밥 사이를 갈라놓을 힘을 가진 사람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동물보호국의 다른 직원들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유명한 고양이를 잡아가 매스컴을 타는 상황을 꺼리기 때문에 혼자 시쳇말로 ‘뻘짓’을 한 거나 다름없고 고난의 드라마는 약해진다. ‘마라 맛’ 시련이 없어 크게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되는 건 이 영화의 장점이기도 하다. 설정상 외부 환경의 압박보다는 이어지는 시련에 불안정해진 제임스의 심리 상태가 더 불안하게 다가온다. 다른 집이라면 밥이 지금보다 더 안락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자신의 환경을 자조하기 때문이다. 

제임스를 지지하는 친구들, 비와 무니 그리고 밥

제임스가 무너지지 않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건 아시안 이웃들의 존재다. 전편에서 밥을 돌보는 데 어려움을 겪는 제임스에게 선뜻 손을 내미는 지원 주택 이웃 ‘베티’에 이어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2'에선 자선단체에서 일하는 ‘비’(크리스티나 톤테리 영)와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모디’(팔두트 샤르마)가 등장한다. 흥행 성과를 거둔 중국과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설정으로 보인다. 


중국과 필리핀 혼혈인 배우 크리스티나 톤테리 영이 연기하는 비는 가난한 제임스에게 필요한 무료 반려동물 의료 서비스 정보를 알려주고 동물보호국에 밥과 제임스의 신뢰 관계 대해 증언하는 등 둘 사이를 지지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비라는 인물은 입양아라는 사실 외엔 개인사가 밝혀지지 않고 감정 변화를 드러내는 장면에 대한 부연 설명도 없다. 제임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설정된 캐릭터이지만, 비를 위한 서브 플롯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한편 남아시아계 이민자로 추정되는 무니 아저씨는 제임스가 인생의 풍파에 흔들릴 때마다 교훈적인 옛이야기를 들려주어 상황을 곱씹어볼 수 있게 한다. 이웃들의 조력으로 제임스는 크리스마스라는 쓸슬한 명절의 기억을 따뜻한 환대의 자리로 바꿔놓을 수 있게 된다. 따뜻한 집에서 친구들과 만찬을 나누는 제임스와 밥의 크리스마스는 소박하고, 그래서 더욱 뭉클하다.

전편에 이어 실화의 주인공 밥이 본인을 연기했고, 대역으로 생김새가 닮은 여섯 마리 고양이가 함께했다. 일곱 마리 고양이 배우가 힘을 합쳐 만들어낸 고양이 밥은 여전히 귀엽고 위풍당당하다. 크리스마스가 연상되는 빨간 옷을 입은 밥은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아픈 연기를 펼칠 땐 힘들어하는 밥을 안고 병원으로 내달리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메소드급 연기를 해낸 밥은 2020년 6월, 열네 살 나이로 안타깝게도 제임스 곁을 떠났다. 그의 친구 제임스를 넘어 온 세상에 기적 같은 이야기로 동을 선사한 밥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슬프지만 우리는 이 영화 덕분에 그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할 수 있게 됐다. 영화는 밥의 마지막 선물일지 모른다. RIP, Bob.


전체 관람가, 12월 24일 개봉

사진.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2>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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