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휴일 알차게 보내고 싶다면? 당장 넷플릭스 ON★

조회수 2020. 12. 31. 12: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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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과 새해에 보기 좋은 드라마, 퀸스갬빗과 더 크라운

*퀸스갬빗, 더 크라운4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극장행을 자제하게 된 영화 기자인 내게 올해는, 제 버릇 남 못 주고 OTT 콘텐츠의 홍수 속으로 빠져든 날들로 기억될 모양이다. 특히 해외 TV 시리즈의 트렌드에 둔감했던 드라마 초심자로서 처음엔 미처 몰랐더랬다. 잘 만든 시리즈물의 세계에 입문하면 꼼짝없이 인생의 시간을 뭉텅이째 상납하는 크나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코로나19가 은둔을 강제한 2020년, 나는 그 파우스트적 거래가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고 자부해본다. 내가 길고 깜깜한 시간들을 선심 쓰듯 내어주면 50분의 희열을 돌려준 시리즈들이 거기에 있었다. 


엄혹한 날들 가운데서도 아직 인간에겐 훌륭한 이야기가 있다고, 심지어 그것이 줄지어 쏟아진다고 생각하면 묘한 위안마저 찾아왔다. 한 해를 돌아보며, 플레이 버튼을 누르길 참 잘했다 싶은 드라마들 중 넷플릭스 오리지널 두 편을 추려 매력을 되짚었다. 내 저녁 시간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들, '퀸스 갬빗'과 '더 크라운' 시즌4의 특별한 감흥을 소개한다.

'퀸스 갬빗' : 여자들의 중독

1950년대, 천재적인 여성 캐릭터, 그리고 고풍스럽게 스타일링한 배우 안야 테일러 조이. 몇 가지 눈에 띄는 단서들로 유추해본 '퀸스 갬빗'은 솔직히 말해 첫눈에 끌리는 드라마는 아니었다. 천재의 성공 신화란 제아무리 독창적이어도 결국은 비슷하다는 나의 통념이 섣불렀음을 뒤늦게 인정한다. 비상한 실력을 지닌 여성 체스 플레이어 엘리자베스 하먼(안야 테일러 조이)의 “긍지와 비애”로 향하는 '퀸스 갬빗'은 그늘진 시간을 술과 약물로 채우며 예상치 못한 틈새 전략을 펼쳐 보인다. 이 파괴적 정념의 중심엔 미국 사회의 약물 오남용, 그중에서도 변방에 자리한 여성들의 중독이 자리하고 있다. 


천재의 재능 이전에 여성의 우울과 고독으로부터 또아리를 튼 이야기에서, 주인공 베스는 유년기의 불안을 고아원에서 배급받은 안정제로 잠재우고 그녀를 입양한 휘틀러(마리엘 헬러) 부인은 피아니스트의 꿈을 대신할 유일한 자발적 선택지로 키친드렁커의 삶을 산다. 휘틀러 부인의 집과 베스가 머물렀던 보육 시설은 인테리어 측면에서 천국과 지옥마냥 상반되지만, 그곳에 여자들이 꽁꽁 발 묶여 있다는 점에서 하등 다를 바 없다. 

드렁커들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능한 '퀸스 갬빗'이 흥미로운 지점은 인물들이 끝내 고기능성 중독자의 면모를 유지하면서(!) 결코 추락하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천재의 자아도취와 그로 말미암은 자기 파괴적 행위는 그동안 얼마나 무수한 서사들에서 사회적 민폐로 귀결되었던가. 나는 아직도 '스타 이즈 본'(2018)의 그래미 시상식 무대에 올라간 브래들리 쿠퍼가 자기 바지를 적시던 장면의 나르시시즘을 잊지 못한다. 테이블을 한번 대차게 엎지르고 주먹이라도 휘둘러야 천재성의 폭주가 멈추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퀸스 갬빗'은 우울과 중독의 상태를 직시하면서도 인물을 괜한 궁지에 몰아넣지 않고, 여성 주인공이 언젠가 지나친 고초를 겪고 말 거라는 불안 앞에서 유유히 함정을 피해 간다. 베스는 무절제하게 밤을 지새우고도 대국 시간에 맞춰 뛰쳐나간다. 휘틀러 부인은 자기가 사랑하는 술을 끝까지 즐겁게 마시다가 떠난다. 그리고 예기치 못한 순간에, 이런 모든 근심으로부터 자기를 단단히 지켜낸 또 다른 여자(졸린)가 등장해 베스에게 연대의 손을 내민다. 남성형 서사에 여성이 진입했을 때의 기묘한 반전들을 품은 '퀸스 갬빗'은 요컨대 비틀거리는 여자들의 ‘체크 메이트’ 스토리라 할 만하다. 조금 더 건강하거나 혹은 조금 더 취약한 채로, 그들은 어쨌든 자기 진로를 거침없이 개척해 판도를 뒤집는다.

'더 크라운' 시즌4 : 걸작의 탄생

아직도 흥분을 완전히 가다듬지 못한 채로 결론부터 고백하자면, 시즌4부터 보아도 좋다. 충분히 좋다. '더 크라운'은 1952년에 스물여섯의 나이로 즉위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일대기를 다루는 시대극 시리즈다. 처음부터 시즌6 정도의 분량을 내다보고 시작된 '더 크라운'의 얼굴은 배우 클레어 포이에서 올리비어 콜먼으로 우아하게 나이 들어갔고 여왕의 생애와 함께 드라마의 밀도도 무르익는 낌새를 보이더니 시즌4에서 일을 냈다. 이번 시즌의 주인공은 배우 질리언 앤더슨이 연기하는 마가렛 대처 총리다. 1975년에 마가렛 대처가 취임하는 것으로 1화의 문을 열어 그가 퇴임한 1990년으로 문을 닫으며, 8개 에피소드 만에 15년간의 굵직한 역사적 순간들을 에피소드별로 깔끔하게 압축해내는 구성력이 압권이다. 


왕관의 무게와 여성으로서의 동지애를 은근히 공유하는 엘리자베스 여왕, 대처 총리의 만남은 정기적으로 열리는 둘만의 비밀 접견 신을 통해 느와르와 페미니즘 드라마를 오가는 스릴을 피워낸다. 막강한 두 여자의 힘겨루기도 모자라 시즌4에는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또 다른 타이틀 롤로 나섰다. 신인 배우 엠마 코린은 풍성한 숏컷의 헤어스타일부터 한쪽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리고 조용히 웃는 특유의 내성적인 미소까지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영리하게 캐리커처하는 데 성공했다.

엘리자베스와 마가렛, 다이애나가 맞붙는 시즌4에서 대처는 여성 총리로서의 내면적 모순과 허황까지 날카롭게 껴안은 인물이다. 여왕과의 첫 만남에서 가정보다 일을 우선할 것임을 나서서 어필하고, (자신을 제외한) 여성은 감정적이라 장관급으로는 채용하지 않겠다던 대처는, 퇴근 후 신문 보는 남편 옆에서 셔츠를 다림질한다. 불도저 같은 자유시장경제로의 개혁 때문에 민심을 잃었을 때에도 눈 하나 깜짝 않던 철의 여인은 그 와중에 내각 인사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앞치마를 매고 밥을 지어 먹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녀가 스스로 자처한 이 기이한 역할극은 큰아들이 실종된 후 여왕과의 정무 회의에서 덜컥 눈물부터 쏟는 모습으로 진가를 드러낸다. ‘여성 총리’인데 눈물까지 쏟았다며 재빨리 자책하는 대처에게 여왕은 재빨리 심려의 기색을 거두고 “내 앞에서 눈물을 쏟은 총리는 절대 당신이 처음이 아니랍니다.”고 화답한다. 올리비아 콜먼의 예의 수줍은 미소와 함께 대처에게 티슈와 위스키를 건네는 여왕은 어쩐지 지금 누구보다도 대처를 잘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임을 아는 듯하다. 웰컴 투 더 크라운. 왕관의 무게를 견딜 자들의 연대는 그렇게 이상한 순간에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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