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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과몰입하게 만드는, 요즘 다들 본다는 드라마!

조회수 2021. 1. 2. 13: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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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아파트에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 '스위트홈'

*'스위트홈'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철거 직전의 오래된 아파트 ‘그린홈’에 모인 이들은 죽고 싶지만 살아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아니, 적어도 대부분의 인물들이 최소 한 번은 ‘죽고 싶다’는 생각에 잠기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목격한 이들 외에도 강남에서 떵떵거리며 살다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 왔거나, 몇 번이나 공무원 시험에 떨어져 좌절했거나, 더 이상 내일이 궁금하지 않을 정도로 희망을 저버린 경우 등이다. 인생에 출구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이제는 그린홈의 모든 출구를 막고 고립을 선택하는 상황에 놓인다. 

출처: 넷플릭스 방송화면

그린홈 주민들 중 폭력을 경험한 이들은 괴물이 없던 세상에서 인간관계가 단절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삶을 살았다. 가족의 압력으로 학교 폭력을 참고 넘어가야 했던 차현수(송강)나 남편에게 몇 십 년 동안 맞고 살아온 안선영(김현)에게는 그 누구도 의미가 없다. 특히 대화나 친밀감이 상황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현수는 스스로 숨어버린다. 그러다 모두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의무를 주고받고 서로를 감시해야 하는 ‘재난’ 상황에서 관계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약한 존재를 보호하는 서이경(이시영), 편상욱(이진욱)의 등장은 사람들을 물리적으로도 보호하고, 감정적 유대 관계를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더불어 황폐한 공간에서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의 마음이나 타인의 약이나 물건 하나라도 챙겨주려고 하는 마음은 남아 있는 인간성을 부각하는 장치가 된다. 안전하지 않은 그린홈에서 유지되는 관계는 아슬아슬하고 그만큼 질기다.  

출처: 넷플릭스 방송화면

스릴 넘치는 크리처물을 보면서 오지 않은 가상의 세계에 과몰입하는 건 코로나19의 영향일까. 그린홈 주민들에게 더 잔인하게 느껴지는 건, 인류가 왜 이런 위험을 맞이하게 됐는지 아무 설명도 들을 수 없다는 점이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괴생명체와 싸워야 하는 절망의 가운데서 존재를 이어주는 역할은 무엇이, 어떻게 담당해야 할지 생각해본다. 하나씩 죽어나가는 곳이 아니라, 하나씩 살아나가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안경잡이’ 이은혁(이도현)의 냉철함을 처음엔 모두 비웃지만 그의 전략 없이 그린홈은 ‘스위트 홈’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 정재헌(김남희)이 신의 뜻을 얘기할 때 사람들은 얼굴을 찌푸리지만, 딱 기도만 할 수 있는 기운만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살아남으십시오. 건투를 빕니다.” 그린홈 주민들도, 나도 드라마 속 대국민담화의 이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고립된 이들에게 말만으론 아무 격려도 용기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일까. 욕망으로 인해 괴물이 되는 것이 스위트홈 속 세상이라면, 어떤 욕망을 가져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구하라, 아니 살아라. 그러면 주실 것이니. 가끔은 끈질기게 기도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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