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영웅' 박세리와 상록수, 그리고 슬럼프

조회수 2020. 12. 28. 10: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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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리 인터뷰

Q.

은퇴할 때 인터뷰를 보면 ‘장래가 불안한 사회 초년병이 된 것 같아서 불안하다.’고 한 적이 있더라. 이미 성공을 하고 목표를 이룬 사람에게도 이런 불안함이 있구나 싶었다. 

A.

미래에 대한 불안함보다는 선수 생활 외에는 초년병이니까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선수 생활을 은퇴하면 제2의 삶이 시작되는 건데 그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있었다. 근데 그게 정상이 아닐까. 운동할 때 선수 생활에 대해서는 너무 잘 알고 그렇게만 수십 년을 살았는데, 다른 일을 한다면 모든 게 처음이니까. 교육 쪽에 관심이 있었고 후배들을 위한 일을 해야겠다 하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는데 그걸 구체적으로 실현하려고 하니 어렵더라. 하고 싶은 일은 있는데 잘하고 있는 건지, 잘 만들어갈 수 있을지, 겪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후배들을 위해 선배로서 뭔가 만들어주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Q.

‘상록수’ 박세리 영상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박세리는 ‘역경을 딛고 일어난’ 노력형 캐릭터다. 그런데 후배들에게 주는 메시지에서는 ‘열심히 해라’가 아니라 ‘자신에게 관대해져라’라는 말을 많이 하더라.

A.

내가 이런 얘기 하면 다 이룬, 성공한 사람이니까 저렇게 말하는 거겠지? 라고 하겠지만 성공해서가 아니라 슬럼프 때 정말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 충분히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다그치는 건 별 도움이 안 된다. 슬럼프에 빠졌을 때 내 자신을 돌아보니까 아쉬움이 크게 남더라. 운동 외에는 관심도 없었고, 내 몸이 아픈 것조차도 무시했다. 후배들도 마찬가지다. ‘지금보다 두 배 열심히 해야 해. 연습 무조건 더 많이 해야 해’ 그런 말은 할 필요가 없다. 왜냐면 다들 이미 그 이상을 하고 있으니까. 나도 선수일 때에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아침에 눈 뜸과 동시에 골프 훈련 시작하고 대회 준비하고 해 떨어지면 집에 들어가서 자기 전까지도 운동 생각하고, 연습만 하고. 심지어는 꿈에서도 골프 연습을 했다.(웃음) 


항상 머릿속에 연습, 대회 준비, 성적, 대회 장소로의 이동. 이게 너무 몸에 배어서 일상이 돼버린 거였다. 골프뿐 아니라 모든 운동선수가 아무리 조심해도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할 수밖에 없다. 몸을 너무 많이 써서 만신창이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신창이가 된 몸을 약을 먹고 운동을 해서 겨우 버티게 하는 거다. 선수들은 자기 몸이 아프단 걸 알지만 그걸 무시하고 계속 연습을 하는 거다. 그런데 은퇴하고 나서 보면 몸에 영광의 상처밖에 남은 게 없다. 흉, 수술 자국, 다친 흔적. 나도 슬럼프를 겪으면서 알았다. 정말 그때 힘든 시간이었는데, 그 힘든 시간에 보람된 걸 배웠구나 싶더라. 만약에 슬럼프가 없었으면 성숙하지 못했을 거다. 

Q.

박세리의 슬럼프는 매일 스포츠 신문에까지 보도됐다. 정신적으로도 쉽지 않았을 거다.

A.

힘들었지. 그런데 슬럼프를 겪고 운동을 잠깐 쉬니까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생기더라. 그 시간에 내가 잘해왔던 거만 생각나는 게 아니라 이 자리에 오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생각났다. 내가 이런 게 부족했구나, 이런 걸 못했구나. 저런 게 참 아쉬웠구나. 내 부족함이 보이는 거다. 그래서 후배들이 ‘언니처럼 하고 싶어요.’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한다. 정말이다. 선수들 생활을 보면 다 열심히 똑같이 살고 있다. 그런데 누구는 빛도 보지 못하고 꿈도 이루지 못하고 포기한다. 그런 후배들이 너무 많다. 누구나 충분히 꿈을 이룰 수 있는데 지치고 포기해서 못하는 거다. 모든 걸 다 해내려고 쏟아부으니까 금방 지치는 거다. 핸드폰도 충전이 필요한데 하물며 사람도 충전을 해야 하지 않을까. 


충전 없이 쏟아내기만 하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쳐서 재미와 목표를 잃게 된다. 힘들게 시작해서 성공해도 부족한데 힘들게 시작해서 힘들게 끝나는 선수들이 너무 많다. 그런 후배들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나는 괜찮아. 남들도 다 하고 있잖아. 나도 참아야 해’ 그러지 말라고 해주고 싶다. 쉬어야 할 땐 쉬고, 자기를 너무 몰아붙이고 자책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열심히 하라는 말보다는 자책하지 말고 자기에게 관대해지라는 말을 많이 해주려고 한다. ‘열심히’는 내가 말 안 해도 이미 다들 하고 있으니까. 

Q.

요즘 박세리를 가장 설레게 하는 일은 무엇인가. 

A.

골프 오디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방송은 12월 말 정도에 될 것 같은데. 가수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골프 선수들을 육성하는 방송이다. 주니어 선수들을 실력을 통해 오디션을 보고 지원도 하게 될 것 같다.


Q.

그 역시 일의 연장선 아닌가. 박세리 개인의 행복을 위해 하는 일은 없나. 

A.

골프 오디션이 정말 즐거운데.(웃음) 골프 오디션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골프도 좋아했으니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거고. 좋아하지 않는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할 수 있을까. 일은 책임감으로 하고, 사생활에서 따로 즐거움을 찾고 그런 건 없다. 아직 취미가 없는데 ‘꼭 재밌는 취미를 찾아야지.’ 생각하지 않는다. 일할 때 충분히 즐겁다.

사진. 김영배

스타일리스트. 박선용 

헤어. 조은혜 

메이크업. 김민지

인터뷰 전문은 빅이슈 241호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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