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흘리던 아빠들이 눈물 흘릴 때

조회수 2020. 12. 18. 2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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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프로야구 NC다이노스(이하 NC) 구단이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차지했다. NC는 창단 9년 만에 페넌트 레이스와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며 명실상부하게 2020년 대한민국 프로야구 최고의 팀이 됐다. 우승이 결정되고, 선수들은 NC소프트의 히트 상품인 MMORPG <리니지>의 최고 무기 중 하나인 시가 수천만 원짜리 진명황의 집행검을 뽑아 들고 휘두르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KBO(한국야구위원회) 리그의 주도권이 산업화 세대와 함께 성장한, 군림하는 거대 재벌에서 2000년대 정보화 바람을 타고 성장한 ‘택진이 형’의 젊은 유니콘 IT벤처기업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였다.

출처: Unsplash

NC가 우승하는 날 야구장 앞을 지키던 제자의 치킨집은 문을 닫았다.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야구장 입장 관객이 줄었다. 뒤풀이도 줄었다. 야구장에서 포장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한 방역 조치 때문에 수입이 급감했다. 한국시리즈는 추워진 날씨 탓에 모두 돔구장인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렸기 때문에 경남의 야구 팀 NC는 홈구장인 창원NC파크에서 경기를 치르지 못했다. 


롯데자이언츠(이하 롯데)의 순혈 팬 ‘마산 아재’의 아들로 태어난 예의 제자는 어릴 적부터 롯데를 응원했지만, 가업을 지탱해주는 NC에 대한 애정을 키워가며 NC와 롯데 중 어디를 응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었다. ‘통계로 굽는 치킨’이라는 영상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아 졸업 후 NC에서 데이터 분석가로 일하다가 다시 가업을 잇겠다던 제자의 꿈은 일단 유보됐다.

출처: Unsplash

괜찮은 정규직 아빠들의 몰락

우리나라 동남권, 즉 부산∙울산∙경남의 경제는 1970년대 산업화와 이어지는 1980년대 민주화 시대를 거쳐 중국 경제가 날로 팽창하던 2000년대까지 쉼 없이 호황을 누려왔다. 산업화로 조선소를 필두로 각종 공장에 일자리가 생겼고, 전국에서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청년들이 이곳으로 유입됐다. 


1980년대에는 노동자 대투쟁을 상징하는 노동조합 결성과 임금 단체 협상의 결과로 임금과 복지가 극적으로 좋아졌다. 1990년대 들어 중국과 수교를 맺으며 여성들이 주로 일하던 마산이나 부산의 경공업 공장이 해외로 이전하는 바람에 일자리가 줄었지만, 중화학공업화로 생겨난 조선, 기계, 석유화학, 방위산업 등의 일자리가 늘어났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출처: Unsplash

2000년대에는 30년 동안 진행한 자본 투자의 결과로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되고 매출도 오르며 흑자의 연속이었다. 1998년 IMF 외환 위기 사태로 정리해고 바람이 불었지만, 환율 상승으로 수출이 잘되어 동남권은 오히려 ‘개가 1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어느새 이들은 중산층이 됐다. 괜찮은 정규직 일자리를 가진 이 지역 아버지들은 자녀가 공부를 못하면 공장 정규직으로 보내고, 공부를 잘하면 뭐든 하고 싶은 일을 하게 지원해주겠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저 열심히 땀 흘리고 성실하면 된다는 믿음을 가진 아버지들이 우직하게 키운 자녀들은 산업의 채용 관행과 좀 더 기민해지길 바라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 한국 사회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어느 정도 겉돌며 20대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지금 정규직 일자리는 사라졌다. 10년 전만 해도 아버지가 원청 정규직이면 자녀도 정규직 생산직이나 사무직으로 회사에 들어가기 쉬웠다. 대졸 사원을 공채로 뽑으면 가산점을 주고, 알음알음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이런 채용 방식은 ‘고용 세습’이라며 비난의 대상이 됐다. 


대기업들은 ‘무숙련 작업장’을 내걸고 정규직 생산직 노동자가 필요 없다며 채용하지 않았다. 신규 공장 일자리는 모두 사내 하청이나 N차 하청사의 일자리로 변했다. 경기에 부침이 있을 때마다 이런 일자리는 모두 극심하게 축소된다. 

출처: Pixabay

2014~2016년 조선 산업 위기 때 그랬고, 코로나19가 창궐한 2020년 역시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대졸 이상 학력을 요구하는 일자리 중 ‘좋은 일자리’인 연구 개발 기능과 제품설계 기능이 판교로, 용인으로, 결국 서울로 이전했다. 


열심히 노력하면 지역의 괜찮은 대기업 공장 엔지니어로 취직할 수 있었는데, 이런 기회도 격감한 것이다. 남은 괜찮은 직장은 공기업 직원과 공무원뿐. 물론 중소기업은 언제든 취업할 수 있지만, 꺼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열심히 땀 흘리고 성실하기만 하면 되었던

NC가 창단한 이후 지역의 고용 창출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스펙‘을 맞추지 못한 지역의 구직자들은 떨어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거점 국립대학 출신들도 입사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전국 어디에나 개발자, 데이터 분석가 지망생이 있지만 최고를 지향하는 회사에 들어가기는 만만찮다. 채용 공고를 보면 같은 직종에 필요한 인원을 뽑는 공고가 드물지 않게 올라온다. 이직률이 높아서 빈자리를 채우는 것일 터다. 우수한 인재를 뽑아 그들이 지방 근무를 못 버티고 나가면 새로 뽑는 형태다. 


경상남도는 김해에 NHN 제2데이터센터를 건립한다고 밝혔다. 500명 정도의 연구 개발 인력을 뽑는다고 한다. 지역 출신 고용에 대한 약정이 없다면 NC소프트처럼 지역 대학 출신들이 채용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가시지 않는다.

출처: Unsplash

동남권의 경제는 현장에서 공구를 만지는 사람들의 땀방울을 바탕으로 한 제조업 경제로 산업화 이후 50년을 지탱해왔다. 공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지역사회에서 소비했고, 자영업자와 다양한 서비스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그럭저럭 중산층으로 살 수 있었다. 


그렇게 축적한 부로 한 세대가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다. 1980년대 동남권의 대규모 공장들이 많은 수의 노동자들을 고용했기 때문에 그들의 자녀는 현재 20~30대인 경우가 많다. 

출처: Unsplash

그저 열심히 땀 흘리고 성실하면 된다는 믿음을 가진 아버지들이 우직하게 키운 자녀들은 산업의 채용 관행과 좀 더 기민해지길 바라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 한국 사회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어느 정도 겉돌며 20대를 보내고 있다.


산업화의 상징이던 창원의 팀이면서 또 새로운 산업의 세대를 말하는 NC가 우승을 일궈내는 지금, 동남권은 어떤 정치와 어떤 이야기들을 만들어내야 다음 시대 ‘좋은 일자리’와 ‘좋은 삶’을 말할 수 있게 될까.


글/ 양승훈(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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