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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이슈코리아

인생에는 아이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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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2인 체제 동방신기는 활발하게 활동 중이나 이 글에는 필자가 ‘덕질’을 하던 시절의 5인 체제 동방신기를 ‘동방신기’로 지칭했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첫 월급을 받던 날 나는 두 번 절망했다. 통장에 찍힌 숫자가 너무 작아서, 그리고 동방신기가 없어서. 


스무 살 무렵 내 꿈은 얼른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해서 동방신기의 일본 콘서트에 가는 것이었다. 

동방신기 2008년 공식 팬클럽 팬미팅

그러나 그들은 당연히 내 월급날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후 사회인이 되고 월급날이 돌아올 때마다 생각했다. 이제 내가 번 돈으로 일본 콘서트에 갈 수 있는데 동방신기가 없다고. 

이제 내게 동방신기는 두고두고 안부가 궁금한 동창 같은 존재가 되었다. 

동방신기 2017년 팬미팅 티켓

지금 나는 방탄소년단의 팬이다. 아이돌은 월급날을 기다려주지 않기에 때때로 신용카드를 써야 한다는 걸 아는 30대가 되었다. 그러나 동방신기가 전성기에 깨질 거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듯, 인생은 맘처럼 되는 게 아니다.


이제 내겐 방탄소년단도 있고 신용카드도 있지만 콘서트가 없다. ‘신천지발 코로나19 사태’로 방탄소년단의 2020년 투어가 취소되었을 때, 나는 “이×× 목 따러 갑시다!”를 가장 진심으로 말하는 상위 0.1% 인구에 속했다. 

방탄소년단 2020년 언택트 콘서트

그때 나는 1997년 H.O.T.에 입덕한 이래 23년 아이돌 덕질 인생에서 가장 좋은 좌석에 당첨됐었다. 그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내게 돌아온 좌석은 무려 본무대와 돌출 무대 사이의 그라운드석이었다.


그러나 다들 아시다시피 올해 방탄소년단의 오프라인 콘서트는 취소됐다.

덕질은 끝나도 인연은 계속된다

누군가 말했다. ‘덕질은 나만 놓으면 끝나는 관계’라고. 1997년 H.O.T.부터 신화, 쟈니스 주니어, X-JAPAN, 동방신기를 거쳐 방탄소년단에 이르기까지, 나는 참 많은 아이돌의 손을 놓았는데 덕질이 끝난다고 다 끝나는 건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우리 학교의 토니 부인 300여 명 중
제일 목소리가 큰 애였다.

‘탈덕’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중학교 2학년 때 H.O.T.에서 탈덕 했을 때 내 책상에 누가 ‘배신자’라고 써놨던 일이 기억난다. 이념적 배신자 취급을 받으며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나는 우리 학교의 토니 부인 300여 명 중 제일 목소리가 큰 애였다.


그때는 정말 자라서 토니와 결혼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우리 사이의 유일한 장애물은 여덟 살이라는 나이 차밖에 없는 줄 알았지만, 오빠는 30대 중반에 자기보다 열여섯 살 어린 여자 친구를 사귀었다. 

HOT 2017년 콘서트

지금 내 이상형은 그때와 같이 나와 여덟 살 차이가 나는 방탄소년단의 RM이다. 사실 오늘 RM이랑 손잡는 꿈을 꿨다. “나 몇 살인 줄 알아요?” 하고 묻는 순간 꿈에서 쫓겨났다. 그런 걸 왜 물어봤을까.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을 텐데.


다행히 나는 RM과 나 사이에 유일한 교집합은 RM도 나도 사람이라는 사실 말고는 없는 걸 인지하는 멀쩡한 30대 중반이 되었다.

이상형 RM과 나

2017년 9월, 2인 체제 동방신기가 제대하고 연 팬 미팅에도 갔다. “네가 왜 거길 가?” 그냥 가고 싶었다. 인생의 큰 산을 넘고 새로운 출발점 앞에 선 그들을 응원하고 싶었다. 장인의 향기가 느껴지는 그야말로 완벽한 공연이 끝나고 동방신기가 깊이 허리 숙여 인사했을 때 사람과 사람이 오랜 세월을 함께 쌓아야만 가능한 묵직한 감동을 느꼈다.


그리고 깨달았다. 덕질은 끝나도 인연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날 인스타그램에 이런 일기를 썼다. ‘깊고 넓은 우정을 담아 여기에 왔다. 윤호야, 창민아, 고맙다. 우리 이렇게 어른이 됐네. ‘O-正.反.合’ 가사가 무슨 뜻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인생에는 아이돌이 필요하다

내 덕질 연대기를 들려주면 사람들은 애잔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괜찮다. 지금 내겐 방탄소년단이 있고, 난 인생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바야흐로 2020년이다. 코로나19로 인생이 가장 생각대로 풀리지 않은 해.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사태’의 그 클럽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살고, 실직자이며, 1인 가정의 가장인 나는 가족들에게도 코로나19의 현현 같은 존재가 되어 두어 달 동안 사람과 마주 앉아 식사를 하지 못했다. 

방탄소년단이 없었으면 사람의 온기를
느끼지 못해 얼어 죽었을 거다.

방탄소년단은 왜 인기가 많을까? 그 이유 중 하나는 방탄소년단이 아주 건강한 웃음을 짓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디에서나 자연스럽고 활기차다. 이것이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간 많은 K-POP 아이돌이 미국 시장에 도전했지만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까닭은 그들이 경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사람을 압도할 수 있다고 믿는 대형 기획사에서 올림픽에 출전하듯 영어 가사로 된 곡을 발표해왔다. 잘한다는 생각은 들지만 듣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방탄소년단 2019년 콘서트

이에 반해 방탄소년단은 시스템이랄 게 없는 작은 기획사에서 데뷔했다. 가진 건 꿈밖에 없고 믿을 건 서로밖에 없는 환경에서 출발했다. 서툴더라도 멤버 본인의 내밀한 심리를 가사로 쓴 힙합 장르를 기반으로 음악 활동을 하며, 방탄소년단 개개인이 지금 생각하는 것이 곧 방탄소년단의 현재인 서사를 구축했다.


여기에 노력과 우연이 더해져 방탄소년단은 시스템의 매력이 아닌 사람의 매력을 세일즈 하는 특별한 아이돌로 성장했다. 시스템에는 표정이 없다. 오로지 사람만이 미소 지을 수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방탄소년단이
아주 건강한 웃음을 짓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 덕후의 냉장고

내 인생에 아이돌은 더 이상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어느 날 방탄소년단이 나에게 왔다. 유튜브 자동 재생을 타고 왔다. 여전히 비자발적 자가격리자이자 실직자이며 1인 가정의 가장인 나는 오늘도 모니터 속 방탄소년단에게서 사람의 온기를 쬔다. 


인생에는 아이돌이 필요하다. 가장 절망적일 때에도 그들은 우리를 웃게 한다. 


글, 사진/ 최이삭


샵(#)빅이슈

출처http://www.bigissue2.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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