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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가게들] 혜화에서 11년 자리 지킨 책방 문을 닫으며..

조회수 2020. 11. 19. 21:1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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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 서점 '책방이음' 조진석 대표

서울 혜화동의 책방이음에 지난 11년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베스트셀러를 소개하는 대신 품이 많이 드는 방식으로 판매할 책을 골랐고, 대형 서점에 유통하기 어려운 작은 출판사의 좋은 서적을 비치했다. 


이 ‘서점’이 오는 12월 말 문을 닫는다. 다만 영원한 ‘폐업’이 아니라 다음을 약속하는 ‘폐점’이다. ‘폐점은 처음’이라며 웃는 조진석 대표는 서점을 나서는 손님에게 올해 중 또 오라며 인사를 건넸다. 문을 닫는 절차를 밟는 것만으로도 분주할 텐데, 그는 11년간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을 떠올리느라 바빴다. 서점이 폐점해도 사라질 수 없는 건 이곳에 보내는 그들의 신뢰와 애정일 것이다. 

책방 폐점에 대한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겠다고 결심한 이유를 조금 더 설명해주기 바란다. 

어두운 시대에 어두운 모습을 직시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본다. 도피하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외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현실을 바로 봐야 희망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폐점은 ‘실패’일 수도 있지만 그 요인이 개인에게만 있지는 않다. 그동안 내가 많이 이야기한 ‘3재’, 즉 코로나19, 도서 정가제 개악, 문화체육관광부의 해태가 서점 경영에 악영향을 줬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반이 약한 산업에 영향을 준 셈이다. 저리로 대출받은 돈도 임대료로 지출한 상황이고, 더 이상 책방을 운영하기 어려운 한계점에 도달했다.


이전 책방 주인에게 이 공간을 인수했다. 어떤 과정을 거쳤나.

내가 인수하기 전에 문예창작과 출신 사장님이 서점을 운영하셨는데, 그때 이름은 ‘이음아트’였고, 예술 서적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는 근처 직장에 취직하면서 이 공간을 발견했는데, 처음 여기 들어올 때 공간에서 빛이 난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을 둘러보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동안 많이 팔리는 책이 아니라 책방이음만의 기준으로 다양한 책을 소개해왔다. 좋은 책을 선택하는 안목을 기르는 방법이 있을까. 

자신이 품은 질문에 답해줄 수 있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돈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에게 ‘돈 없이 사는 법’을 말하는 책을 권하는 건 이상하지 않나.(웃음) 모든 사람에게 잘 듣는 보편적인 약이 없듯, 보편적인 책 역시 없다고 생각한다. 

책방 주인이니 책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손님에게 포기하시라고 말하곤 했다.(웃음) 내가 그분의 생각을 잘 모르는데 무턱대고 책을 추천할 순 없으니까. 손님들은 많은 고민을 안고 이곳을 찾아온다.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 학교 과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등 저마다 목적이 다르다. 그럴 때면 함께 앉아서 고민해본 뒤 인터넷을 검색하는 등 자료를 찾아가는 방법을 택했다. 결국 한참 이야기를 해봐야 한다.

책방에 오래 머물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많은 분이 고민을 같이 나눌 사람이 있다는 생각으로 이곳을 찾아온 것 같다. 다만, 임대계약이 보통 2년 단위 아닌가. 이 동네에 오랫동안 머물 수 없는 터라 시간이 지나면 방문이 뜸해지는 분도 많았다. 우리는 계속 떠다닐 수밖에 없는, 문제를 오랜 고민 없이 즉각 해결해야 하는 현실에 처한 것 같다. 

오랜 시간 책방에서 손님에게 책을 건네고 이야기를 주고받아왔다. 코로나19로 많은 소통 창구가 비대면으로 대체되는 현상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비대면 방식으로 부가 성장을 하고 삶의 질이 나아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당장 홈리스나 장애인,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편인데, 지금 아무렇지 않다면 살아남은 자다. 살아남을 수 없는 이들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지금 우리가 책과 독서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집에서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세워질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설계는 되어 있지만, 홈리스를 포함해 도서관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책과 독서를 접할 수 있는지 질문해야 하지 않을까. 현재가 편안한 사람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겐 굉장히 불편한 사회구조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누구에게 맞춰진 책인가, 누구에게 더 편한 도서관인가를 질문하다 보면 더 많은 이들이 책과 독서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방이음

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14길 12-1

2020년 12월 말까지 운영

사진. 김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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