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웅담 채취당하다가 도축 당하는 사육 곰

조회수 2020. 7. 16. 15:06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야생은 언제나 거기 있었다

코로나19로 봉쇄된 도시에
야생동물이 등장하다

야생을 새로 발견한 것만 같은 요즘이다. 칠레 산티아고에서는 퓨마가, 콜롬비아에서는 여우가, 그리고 지구 어딘가 도심에 계속 원숭이, 늑대, 칠면조가 나타났다. 


도심을 의연히 어슬렁거리는 포유류 무리는 영화에서나 보았을 법한 이질감을 풍긴다. 인간이 쌓아 올린 문명과 날것 그대로의 야생이 동일한 시공간에 놓여있다. 어색하고 기묘한 풍경이 오버랩된다. 

접촉, 경계, 공존

야생동물이지만 동물원에 갇혀 있는 곰이 있다. 야생동물이지만 웅담 채취를 위해 철창 속에서 10년을 살다 도축당하는 일명 ‘사육 곰’이 있다. 


야생동물의 개체 수 복원을 위해 자연에 방사한 곰이 있다. 그리고 야생에서 자유롭게 사는 곰이 있다. 이 각기 다른 상황에 처했으나 전부 ‘야생동물’이라고 불리는 곰들의 다른 처지에 대해 생각한다. 


인간에게 착취당하고 생명을 잃으면서 동시에 또 인간에게 구출되고 보호받는 그들 존재의 아이러니다.

하늘에서 로드킬을
당하는 새들에 대하여

우리나라에서만 한 해 약 800만 마리의 새가 방음벽에 부딪혀 죽는다. 하늘 로드킬이다. 띄엄띄엄 붙어 있는 맹금류 스티커는 전혀 효과가 없다. 


맹금류의 그림자를 보면 새들이 ‘아이코, 천적이다. 무서워!’ 하며 피할 거라는 생각은 다분히 인간 중심적이다. 차라리 유리창을 만들 때 자외선을 반사하도록 처리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서산의 한 지방도로 방음벽 아래 죽어 있던 물총새를 보며 생각했다.

뉴 노멀: 공존을 위한
생태적 시선이 필요하다

시인 이문재는 ‘세면대와 화장실에서 바다를 떠올릴 수 있다면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변기는 바다의 입’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느끼자. 철창 너머, 콘크리트 벽 너머의 생명을 상상하자. 우리의 평범한 일상 이면에 있는 복잡한 그물망을 떠올리자. 


팬데믹이 종식되고 잃어버렸던 일상을 되찾아도, 야생동물이 있던 자리 위에 인간의 삶터가 세워졌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일상에서 야생을 떠올리는 일은 새를, 박쥐를, 곰을 위한 일이자 결국 우리를 위한 일이 될 테니까.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