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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이슈코리아

"임신한 사람을 발로 차고, 신접살림 한 달만에 남편이 총에 맞았습니다."

왜놈보다 더했다던 대한민국의 충격적인 진실, 제주4.3사건 72주기를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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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업은 제주의 할망(‘할머니’의 제주어)들을 만나는 일이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무언가를 배울 수 있어 좋다. 나는 아무 마을 아무 길 위에서 아무 말이나 하면서 아무 할머님이나 만난다. 할머님들은 생판 모르는 나를 반겨 주시는데, 이런저런 이야기에 달콤한 즉석커피. 그 신비로운 조화에 중독되어 할망을 만나러 다닌 지 벌써 8년째다. 


혼자 듣기 아까운 이야기들을 세상과 나누는 동안 ‘제주 할망 전문 인터뷰어’라는 직업이 생겼다. 몇 해 전부터는 지역방송에서 어르신들을 만나는 프로그램의 리포터로도 일한다. 그러자 별명이 하나 생겼다. 시청자들이 나를 ‘조잘조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조잘조잘, 그것은 내가 내는 소리 같지만, 사실 할머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적에 모두에게서 나는 소리다. 함께 웃기도 울기도 하면서 우리는 재잘재잘 노래하는 새처럼 잠시 만나고 쿨하게 헤어진다. 

"살당보다 살아져라"


대화는 늘 유쾌하게 시작되어 여운을 남긴다. 이따금 내게 노인과 대화하는 비법을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요령은 간단하다. 애써 무언가를 묻지 않아도 된다. 하고 싶은 만큼의 이야기를 하시도록 그냥 둔다. 8~90년을 살아온 할머님께서 당신 삶을 남에게 전하는 방식이란 매우 시적이기 때문에, 일단 말문이 열리면 그저 고맙게 들으면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만일 이야기가 슬프고 고통스러워지더라도 함부로 할머니를 불쌍히 여기거나 공감하는 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 아프고 불편한 마음은 그대로 가지고 집에 온다.  생각하면 그들이 살아온 시대에는 말도 안 되는 일만 가득했다.  일제강점기가 그랬고 한국전쟁이 그랬다. 제주4·3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을 보듬어야 할 국가는 광기 어린 폭력으로 사람들을 상처 입혔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온갖 비극을 다 겪으며 살아온 할머님들은 그 고난의 길을 딱 여덟 자로 줄여 말한다. “살당보난 살아져라(살다 보니 살아지더라).” 그리고 사이사이에 깊은 한숨을 내뱉는다.


여전히 아무도 제주4·3사건을 ‘추억’이라 부르지 않는다. 일흔 해가 더 지나도 제주4·3사건은 아물지 않는 상처이자 처방약을 찾지 못한 질병처럼 섬을 떠돌기 때문이다. 한숨으로 시작하는 할머님들의 이날에 대한 기억은, 문득 떠오르는 첫 구절만으로도 아프다. 늘 그렇다.  

"신접살림 차린 지 한 달 만에 남편이 총 맞고…”,
"왜놈들도 그러지는 않았어…”,
“옆집 할머닌 죽창으로 다섯 번을 찔렸는데…”,
“임신한 사람 배를 발로…”,
"같은 마을 사람이 아버질 죽였어…”

동백꽃보다 동백 씨가 좋은 할망들

제주4·3사건(1948~1954)은 당시 30만 명이던 도민 인구의 10분의 1을 휩쓸어갔다. 저마다의 기억들은 섬을 가라앉게 할 만큼 무겁지만, 힘들었던 시간이야 흘러버린 지금. 대부분은 제법 유쾌하고, 외로워 보여도 혼자는 아니다. 집 떠난 자식과 손주들 밥상에 올릴 동백 씨를 해마다 줍고 묵묵히 일상을 살아간다.


세상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흩어지더라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힘. 그들에겐 내가 ‘인간력’이라 부르는 그 힘이 있다. 갑작스레 몰아친 코로나19가 세상을 무너뜨리고 있는 요즘, 여러 차례 무너졌던 섬을 고사리손으로 정성껏 되살려 낸 할머님들이 더없이 소중하다. 그런 그들에게 한없는 존경을 표하며, 나의 ‘조잘조잘’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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