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자 아나운서만 계약직으로 뽑나요?

조회수 2020. 3. 23. 20: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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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오늘도 맞서 싸우는 유지은 MBC 아나운서

유지은 아나운서는 대전 MBC에서 6년째 일하고 있는 프리랜서 아나운서다. 2014년, 더 큰 비전을 품고 이직해 묵묵히 일해왔다. 프리랜서라기엔 정규직만큼이나 회사 일이 많지만 그런 대로 참을 만했다. 일이 재밌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회사는 여성 프리랜서 앵커와 남성 정규직 아나운서를 채용했다. 속 아픈 날들이 시작됐다. 유 아나운서는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했다. 지난해 6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성별 채용 차별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했고, 묵묵부답인 결과를 기다리며 오늘도 일하고 또 싸운다. 그가 싸우는 이유는 사랑하는 직업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다. 


여러 방송사에서 근무했다. 그때도 정규직이 아니었는데 이직을 거듭하며 아나운서라는 일을 계속해왔다. 

너무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게 이 직업의 맹점이고 사용자도 그 점을 안다. 돈을 주고서라도 경력을 쌓고자 하는 사람이 많고, 나도 그런 마음이었다. 경력이 있어야 다음 경력을 쌓을 수 있으니까 일했고, 그다음엔 고용 안정이 될 거라 믿었다. 지상파에선 울산방송(UBC)에서 처음 일했는데 역시 비정규직이지만 배우는 단계라고 생각했고 현 직장으로 이직했다. 그런데 전과 같은 일이 반복되니까 참을 수 없었다. 이제는 경력 쌓겠다는 것도 아니고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생각해보니 채용 성차별이라는 걸 알고 문제 제기를 하게 됐다.


이직 5년 차에 인권위에 채용 성차별에 대한 진정을 넣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나.

남자 아나운서의 정규직 채용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특정한 사람 때문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날 지지해주는 소중한 동료인데, 단지 남자 아나운서라는 이유로 자리를 채용한 것이 계기가 됐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더불어 2017년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MBC 전체 파업이 끝나고 여성 아나운서 처우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 정규직 여성 아나운서 공채가 있을 줄 알았는데 프리랜서 앵커를 채용한 거다. 또 비정규직이었다. 그러다 남자 아나운서 선배가 다른 부서로 발령 나면서 남성을 상정한 정규직 공채가 논의됐다. 상실감이 컸다. 실은 전에 다닌 회사에서도 같은 경험이 있었다. 


프리랜서 계약은 어떻게 맺나.

고용계약서를 쓴 적도 없고 6년간 구두계약으로 일했다. 모든 지역 방송사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저는 프리랜서였지만, 아무리 봐도 프리랜서가 아니었다. 프리랜서 아나운서라고 하면 한 방송국 일만 하지 않고 정말 다양한 프로그램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입사하기 전까진 모든 여성 아나운서들이 2년 계약직으로 일했다. 


잘하면 전환 논의를 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2년씩만 일을 시켰다. 그래서 입사하고 1년 후부터 이직을 준비한다. 사람들은 여자 아나운서들이 회사를 자주 옮기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과연 정규직이라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면 옮겼을까? 남성 방송직군 종사자들도 이직률이 높지만 이직 때 비정규직으로 입사하지 않는다. 그 잣대는 여성 아나운서에게만 들이밀어진다. 


사측은 ‘고용 성차별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연대하는 사람들, 단체들이 많고 언론 보도도 많이 나갔다. 변화의 기미는 없나.

없다. 정말 안타깝다. 진정 결과가 나오는 대로 진행할 거다. 많은 분의 응원으로 버티고 있다. 가끔,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으면 행복하게 일했을까 생각해본다.


프로그램 네 개를 진행하다가 지금은 라디오 프로그램 한 개만 맡고 있다. 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아쉬움이 크겠다.

그래도 라디오는 피드백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매체라 힘을 많이 받는다. 남은 한 가지가 라디오라서 정말 다행이다. 한 번은 공기업을 준비하던 애청자분이 합격했다고 하셔서 내 자식 일처럼 너무 기뻤다.(웃음)


직업이 천직인가 보다.

너무 좋다. 너무 재밌고. 그러니까 더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상황에서 일하고 싶은 거다.


최근 언론 발전에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성유보 특별상을 수상했다. 수상하고 기뻤겠다.

지인들은 멋있다고 하는데 나는 부끄러웠다. 내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많은 분들이 내게 상을 주기 위해 어필했을 거고 거기에 감사한 마음이 컸다. 이 상은 버티고 기다리는 상황에서 내가 가는 길이 맞다고 이정표를 세워줬다. 일에 대한 가치와 상징성을 생각하게 됐고, 의지를 다지게 됐다.

수상 소감도 감동적이었다. 어떤 아나운서가 될 것인지 고민을 멈추지 않고 이제 답을 찾은 거 같다고 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어떤 아나운서가 될지 늘 고민한다. 아나운서는 말하는 사람이고, 입력된 대로만 말하는 사람은 아니어야 한다. 나라는 필터를 거쳤을 때 내가 내 영향력을 말할 수 있어야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뭔가를 영향력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진짜를 말하는 사람이 되는 게 최종 목표겠구나 싶었다. 


지치고 힘들 때는 어떻게 해소하는 편인가. 

정신 승리를 한다. 핑곗거리를 찾는다. 힘들 때, 전에는 행복했을까 의심해보면 꼭 그렇지도 않더라.(웃음) 나도 사람인지라 무너질 때가 있지만 비교적 정신 승리를 오래 지속하려고 하고 상처 회복력도 빠르다. 이건 내 긍정적인 기질 덕분이다. 나와 기질이 다른 사람에게 이 방법을 권할 수는 없다.


일하기 위해 선택한 싸움이다. 앞으로는 어떻게 일하고 싶은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이제까지 비정규직 여성 아나운서라는 틀에 갇혀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나운서라는 롤에 대한 고민은 현재 진행 중이다. 영역을 확대하고 능력치를 얻는 건 내가 하기 나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행뿐만 아니라 연출 등 다양한 역할을 능동적으로 해내고 싶다. 월급 따박따박 받아가면서 편하게 일하고 싶진 않다. 그러지 않기 위해 싸우고 있다. 더 능동적인 아나운서가 돼서 다양한 사안에 대해 외치는 ‘스피커’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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