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연이라는 예능 신대륙

조회수 2020. 3. 28. 11:0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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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의 판도를 바꾸는 여자

얼마 전 디시인사이드와 한 AI어플리케이션이 ‘숨만 쉬어도 웃기는 천생 개그맨’이라는 주제로 온라인 투표를 진행했다. 그 결과 1위를 차지한 것이 장도연이었다. 이 주제에서 장도연이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여성 예능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보여준다. 사실 "장도연 대표작이 뭐야?"라고 누가 물으면 아직까지 대표작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고정으로 출연하는 방송 또한 많지 않다. 그렇다면 장도연은 도대체 어떻게 숨만 쉬어도 웃긴 뼈그맨이라는 찬사를 얻게 된 것일까?


출처: <호구의 연애>

장도연은 2019년 MBC 연예대상에서 베스트엔터테이너 상을 수상했다. <같이 펀딩>과 <호구의 연애>라는 프로그램이 출연작이었는데,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다수의 독자들은 그 방송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평균 시청률이 3%대였고, 유튜브나 SNS에서 화제가 된 방송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MBC가 준 그 상이 장도연이 데뷔 후 방송사 연예대상에서 받은 최초의 상이었다는 것이다.

장도연은 “무대에 올라오는 게 다섯 계단인데 올라오는 데 13년이 걸렸다”며 “장도연 너 겁나 멋있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그리고 이 시상식에서 전설의 ‘장도연 엄지짤’이 탄생했다. 절친 박나래가 대상을 타자 장도연이 진심으로 신이 나서 쌍엄지를 마구 휘둘렀고, 이 장면이 인터넷 밈이 되어 돌아다녔다. 장도연은 이렇게 지상파 고정 MC 자리 하나 꿰차지 않아도 대중에게 웃기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각인됐다. 


그리고 장도연 하면 다수가 철벽녀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겠다. <코미디 빅리그>의 콩트에서 장도연은 자신을 아는 척 하는 구남친에게 천연덕스럽게 “스미마셍~ 아임 낫 코리언”이라고 외치고, “우리 사귀었잖아.”라고 치근덕대는 남성을 피해 달리는 택시에서 뛰어내리기도 한다. 곧이어 장신의 키와 긴 팔을 활용해 과장된 액션을 취하기도 한다. 장도연의 웰메이드 예능은 여성의 외모나 과체중을 소재로 삼지 않고도 잘 짠 콩트만으로 건강한 웃음을 준다.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에서 장도연은 추구하는 개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얘기를 했을 때 누구 한 명 불편하지 않은 개그”라고.

장도연의 코너가 유튜브에서 유독 재생수가 높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티 나지 않게 조금씩, 누구도 불편하지 않게 개그의 트렌드를 바꾸는 역할을 장도연이 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무리한 개그를 하지 않고 치고 빠지는 토크에 능하다. 남성 MC 집단이 진행하는 예능에서 장도연이 능수능란하게 그들을 자기 페이스로 끌고 오는 토크를 보라. 여성 게스트가 출연하면 러브라인을 만드는 <아는 형님>의 관습 속에서 서장훈에게 철벽을 치며 핑크빛 웃음을 제조하는 장도연을 보고 있으면 물이 올랐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2016년 <말하는대로>에서 좌중을 쥐락펴락하며 이야기를 펼쳐가는 장도연을 보고 함께 출연했던 표창원 의원은 “이야기 공학자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과거 출연하는 방송마다 갑자기 종영되거나 자기만 잘릴 때에는 ‘내 길이 아닌가’ 고민도 했다지만, 현재 장도연은 모든 예능 프로그램에서 찾는 섭외 일순위 예능인이다. <나 혼자 산다>에선 먹지도 않을 콩나물을 키우면서 신나하고, 페미니즘 서적과 인문학 서적을 쌓아두고 매일 신문을 읽으며 공부하는 여자. 멋지게 운전을 하다가도 주차를 못 해서 내 차를 가로막는 저 전봇대 좀 치워달라고 눙치는 웃기고 매력적인 사람. 바로 장도연이라는 새로운 예능 신대륙이다.


장도연은 과거 <씨네21> ‘내 인생의 영화’에 글을 기고한 적이 있는데, 인생 영화로 <트루먼 쇼>를 꼽으면서 마지막 문장에 이렇게 썼다. “내가 만약 트루먼이었으면 어땠을까 상상을 해봤는데… ‘장도연쇼’라…. 전체 관람가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시청률은 잘 나올 거다”라고. 더불어 장도연은 15분 이상 혼자 스탠딩 코미디를 할 수 있는 코미디언이기도 하다. 그러니 지금 이 콘텐츠를 보는 제작진들은 뭐 하고 있나요. 얼른 <장도연 쇼> 안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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