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결코 알려주기 싫은, 비공개 플레이스트 유튜브 채널

조회수 2020. 3. 13. 19: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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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창고 대방출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다.’ 딱히 그 양이 방대해서 ‘바다’라기보다는 파도가 모든 것을 쓸어가는 것처럼 인터넷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쓸려가다 보면 시간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도 모르겠고,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낙오된 주인공이 정신을 차려 보니 무인도에 도착해 있는 상황과 비슷하다. 그러다가 우연히 보물을 찾곤 하는데, 이 또한 운이 좋으면 유튜브에서도 생기는 일이다. 이런 보물을 발견하면 비공개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놓고 함부로 남한테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끼면 뭐 된다고, 이를 교훈 삼아 고민 끝에 비공개 플레이리스트 속 보물을 공개해보고자 한다. 근데 이렇게 말해놓고 다들 아는 거면 어떡하지? 


CRITERION COLLECTION, ‘CLOSET PICKS’

전 세계 명작을 블루레이 DVD로 제작하는 그 크라이테리언 컬렉션 맞다. 크라이테리언의 방대한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만든 DVD 트레일러나 특정 영화를 봐야 하는 세 가지 이유를 1분 내외로 설명하는 시리즈 ‘Three Reasons’도 세련되고 매력적이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빛나는 것은 단연 ‘클로짓 픽(Closet Picks)’ 시리즈이다. 뉴욕에 있는 크라이테리언 본사를 방문한 저명 영화인들이 코딱지만 한 DVD 창고에서 갖고 싶은 영화를 고르는 시리즈이다. 개인적으로 에단 호크와 빌 헤이더, 마이클 세라의 클로짓 픽이 제일 웃기다.


에단 호크는 호들갑을 떨면서 '비포' 시리즈를 집어 들었고, 빌 헤이더는 그답게 데이트 영화로 <살로 소돔의 120일>(1976년작)을 추천했다. 마이클 세라의 클로짓 픽은 ‘Call me, we’ll talk more about it.’이라는 유명한 밈의 출처인데 모르고 봐서 더 웃겼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에드가 라이트와 사프디 형제의 클로짓 픽이다. 에드가 라이트는 <얼굴 없는 눈>(1960년작)을 들고 아버지와 호러 영화에 얽힌 썰을 풀었고, 베니 사프디는 의대를 그만두고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일 포스토>(1961년작)였다고 회상했다.

JOHN FASSOLD 'HOW EVERY SONG IS WRITTEN'

라나 델 레이, 체인스모커스, 위켄드 등 특정 콘셉트를 밀고 나가는 아티스트가 어떻게 앨범을 제작하는지 패러디하는 시리즈다. 스테레오타입이 뭔지 분석하기만 하면 대충 만들어도 이들의 노래를 엇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고 비꼬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에드 시런 노래를 만들려면 앨범 타이틀이 산수 기호여야 하고, 어쿠스틱 발라드를 세 개 정도 넣고 중간쯤에 힙합 엇비슷한 노래 두어 개, 묘하게 구체적인 디스 트랙이 들어가면 된다. 여기서 노래를 비꼬기만 좋아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자기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라서 패러디 영상을 만든 것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티스트의 팬들 중에서 유머 감각이 없는 이들이 악플을 남기곤 했고, 긍정적 피드백 또한 있지만 레딧 같은 유튜브 바깥의 커뮤니티에서도 순식간에 관심을 사게 돼 심적 부담을 견디기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급기야 2017년 하반기에는 영상을 전부 내리고 모든 소셜 미디어에서 종적을 감췄다. 그로부터 약 2년 뒤, ‘Bad Guy by Billie Eilish but’이라는 영상으로 갑자기 컴백했다. 채널의 초반 이미지가 시니컬하고 ‘힙스터’스러웠다면 현재는 가장 ‘진지한’ 음악도 밈과 섞어버리는 훨씬 자유로운 채널로 바뀌었다.

BLANK ON BLANK

PBS 디지털 스튜디오와 큐오티드 스튜디오(Quoted Studios)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함께 제작한 ‘Blank on Blank’는 아티스트 및 배우의 오래된 인터뷰 음원을 복구해서 만든 애니메이션 시리즈다. 현재까지 살아 있는 인물의 인터뷰도 많지만,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인터뷰가 다수를 차지한다. 커트 코베인, 그레이스 켈리, 지미 헨드릭스, 데이빗 보위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떨리는 사람들이 참여한 방대한 양의 인터뷰 중 최고를 가려내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시리즈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매해 돌아오는 위인들의 기일에 블랭크온블랭크(Blank on Blank) 시리즈를 찾는 사람들 덕분에 이 채널은 온라인 공동묘지 같은 곳이 됐고, 댓글 창은 온라인답지 않게 훈훈하거나 숭고하기까지 하다.  인터뷰에 거친 애니메이션이 덧씌워지면서,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대화에 일종의 시적인 리듬이 생기고 영원성이 부여된다. 인터뷰이의 이른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에게 이 시리즈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다. 두 사람이 생전 창작 활동을 하면서 겪은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방식이 큰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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