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는 것은 비겁하지만 도움이 된다

조회수 2020. 3. 13. 18:53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청년들이여 남쪽으로 튀자! 박향진 감독 인터뷰

40분 남짓의 다큐멘터리에서 청년들은 도망치는 중이다. 2년 전, 열 명 남짓의 청년들이 불현듯 서울에서 경상남도 남해로 향했다. 서울보다 훨씬 저렴한 집을 계약했고, 때때로 어망을 던져 물고기를 잡으며 생활했다. 비는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 도시를 겪은 청년들은 남해에서 ‘뭔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를 질문했다. <도망치는 것은 비겁하지만 도움이 된다>의 박향진 감독은 정착자로서, 감독으로서 그 시간들을 기록했다. 대부분은 고민의 시간이었다.


남해로 가야겠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작품을 기획했나.

친구 한 명과 ‘내려가볼래?’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책모임하는 친구들과 ‘남해에서 뭔가 해볼 순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영화 제작지원을 받게 되었다. 우리가 ‘지역’에 왜 가고 싶은지, 현재 우리가 처한 환경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향이라곤 하지만 지역에 집중해서 뭔가 시도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20대를 되돌아봤을 때, 어떤 순간에 고향인 남해가 떠올랐나.

그런 게 진짜 많았다. 전 시골 사람이다.(웃음) 남해 중에서도 작은 동네라 나가서 인사하면 다 알아보는 식이다. 그런 폐쇄성이 주는 어려움도 있을 텐데, 나고 자라서 그런지 편한 느낌이 컸다. 집에서도 혼자서 잘 놀고.(웃음) 대학교 졸업 후 여행을 다녔었다. ‘베이스캠프’라는 말이 있지 않나. 산에 가면 등반을 위해 머무르고 쉬는. 친구들도 내려가보니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남해에 있으면 “서울 가기 싫다.”, “편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베이스캠프’로서 2년 전 서울에서 남해로 갔을 때 경험한 일상이 궁금하다.  

친구들 중 두세 명은 아예 남해에서 일상을 보내고, 저는 2주에 한 번 가서 사나흘씩 있었다. 진짜 많이 놀았다.(웃음) 카드게임 하고, 그림 그리는 친구도 있고. 나도 작업을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촬영한 것 확인하는 작업을 많이 했다. 친구들이 식당을 준비했었는데 그땐 토론하는 게 일상이었고. 시간이 많았다. 바다에서 낚시를 조금씩 하고.(웃음) 바다에 어망 던져놓고 그랬다. 농사짓는 친구들도 있었다. 밥 해먹고, 그러면 시간이 다 가고.


남해에서 낚시하고 농사짓던 친구들의 행방은 어떤가.

다른 집을 구해서 더 있어보겠다고 한 친구들이 있다. 지금 저는 부모님이 계신 집을 오가는 정도다. 어떻게 해나갈까 고민하는 과정에 있다.


영화 도입부에서 박 감독을 포함한 인물들은 사실상 일을 통해 시간을 굴린다. 서울에선 시간이 많다는 감각을 느끼기 어려운데, 남해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게 특별하다.

시간이 온전히 나에게 있는데, 서울에선 그걸 제대로 쓸 수가 없었다. 집에서도 핸드폰으로 일하고. 일이 일상과 사적인 시간을 잠식한다고 느꼈다. 시간이 한정적인데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 고민했었다. 월세도 그랬다. 집세를 내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데, 저임금이고….(웃음) 내 시간을 다 바쳐서 주거비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느 순간 그게 너무 싫더라. 


영화에선 ‘일확천금’, ‘손쉽게 돈 벌기’에 대한 욕망도 등장한다.

집에 와서 ‘왜 이렇게 힘이 없지?’ 하면 ‘밖에서 너무 많이 힘들었구나.’ 싶다. 온 힘을 다 써 일했는데 월급은 쥐꼬리면, 보상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되고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다. 당연한 수순이다.


한 인물의 “내가 서울을 낙오시켰다.”는 말이 당당하게 느껴졌다.

그 친구가 정말 재밌다. 서울이 아닌 곳으로 가면 당연히 낙오당했다고 보는 편견을 반영한 말이다. 내가 이곳을 떠나온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자는 의도인 것 같다. 서울에 기회가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완전한 나의 선택으로 서울을 낙오시킬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것 말고도 나에게 중요한 게 있다고 판단한다면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도망치는 것은 비겁하지만 도움이 된다>는 제목의 의미는.

당시 감정적으로 동요하고 있던 사건이 어린, 혹은 내 또래 친구들이 일하다 죽는 일들이었다. 어쨌거나 남해로 가는 건 내가 처한 환경에서 벗어나는 거니까. 처음엔 그런 의미를 전하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도망치는 것밖에 없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러다 촬영하면서 계속 고민했다. 이게 어떤 의미일까. 도망인가? 사실 되게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인데. 가만히 있는 일은 쉽지만 새로운 곳으로 움직이는 건 쉽지 않은데. 도망이 뭘까? 도망치지 않는 건 괜찮나? 어디서부터 도망일까? 의문이 들었다. 내가 벗어나려고 했던 것이 뭘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제일 어렵다. 청년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어딘가 떠나고 싶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쉽게 판단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