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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강아지 내가 때릴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조회수 2020. 7. 24. 19: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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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노


동물학대, 생명이 아니라 소유물?


오늘날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동물학대. 한 유튜버가 자신의 방송에서 반려견을 내던지고 발로 차는 등의 동물학대를 하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내가 내 개를 때린 게 잘못이냐, 내 재산이고 내 마음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인 사건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길 고양이의 학대 사건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죠.


한편 미디어에서는 소위 ‘강아지 공장’이라 불리는 반려견 유통 실태를 고발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햇빛도 잘 들지 않는 밀폐된 철창에 갇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다 생식 능력을 상실하면 버려지거나 고기로 팔리는 장면은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죠.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에 대한 공무원들의 태도와 경찰, 시민운동가, 방송 등을 대하는 주인의 뻔뻔함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해당 동물의 주인임을 강조하며 ‘생명’이기에 앞서 ‘소유물’, 궁극적으로는 ‘돈’이라는 인식으로 접근하죠. 이것이 동물학대를 증가시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강아지 공장'에서 생산되는 강아지들


동물을 사고 파는 문화


우리는 도심 곳곳에서 펫숍의 쇼윈도에 진열된 강아지와 대형 마트의 동물 코너에서 동물들이 팔리는 것을 목격하며 성장했습니다.


사고 파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과연 반려동물은 마트에서 판매하는 샴푸, 자전거, 휴대폰 등과 다르게 느껴질 수 있을까요?



동물을 소유한다는 것


반려동물 양육인구 1500만 시대. 600만 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펫산업’의 규모가 연 3조원의 육박하는 것이 지금의 한국 사회입니다. 하지만 이런 인기에도 불구하고 반려동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 수준은 동물을 물건 내지 상품으로 간주하는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죠.


평균 330마리의 반려동물이 매일 버려진다고 하니 이는 편리하게 구매했다가 필요 없어지면 버려도 된다는 생각이 만든 숫자일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동물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결정짓는 기본적인 조건은 ‘소유’ 관계입니다. 우리에게 동물은 생명 이전에 소유물로 간주됩니다. 물론 이러한 인식의 출발점은 자본주의인 것이죠.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유가 모든 것을 죽은 것. 다른 사람의 권력에 복종하는 것으로 변형시킨다. 소유가 대상을 물건으로 만든다.” 이것은 살아있는 대상도 소유 방식의 관계를 맺게 되면 죽은 것. 즉 물건이 된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소유에서 시작되는 동물학대


반려동물을 소유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상을 나의 물건으로 만든다는 뜻이고 더 나아가서 대상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 대상이 무생물일 경우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생명체일 경우에는 문제가 생길 수 있죠.


극단적으로는 버리거나 죽이는 것이 있고, 반려동물을 학대하고도 “내가 내 강아지 때린다는데…”라고 소리치는 유튜버. 불법 강아지 공장을 적발하고도 주인에게서 강아지를 떼어놓지 못하는 공무원들이 이해한 소유의 개념이 이런 것일 겁니다.


펫샵의 상품처럼 전시되는 동물들


이런 소유 관념은 몇몇 사람들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모든 관계를 소유관계로 인식하는 우리들 역시 이와 같은 소유 관념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지요.


거듭 이야기하지만 ‘산업’은 동물을 생명이 아니라 ‘물건(thing)’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정당화하며, 동물학대에 대한 정당화는 물론 고통을 호소하는 동물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게 만듭니다.



동물학대, 동물만의 문제는 아니야


이러한 동물학대가 동물에게만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동물과 생명을 물건처럼 취급하는 일은 동시에 인간성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의 황금만능주의가 인간성의 소외를 낳듯, 소유를 통해 동물과 생명을 물건처럼 취급하는 문화는 결국 생명을 무생물처럼 취급하고 인간마저 수단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를 인력으로 부르는 문화가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죠. 인력은 말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생명에 대한 명칭이 아닙니다.


현대 사회에서 ‘동물’에게 발생하는 모든 문제가 자본주의 탓은 아닙니다. 유기견이나 길고양이 학대는 ‘돈’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대부분은 동물이 인간보다 지위가 낮은 존재이므로 ‘주체’인 인간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발생합니다.




동물 학대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은 사회에 대해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폭행함으로써 해소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경우 주로 동물이 선택되는데 이때 동물학대는 사람을 겨냥한 폭력의 징후, 즉 여성이나 장애인 같은 약자에 대한 폭력의 전조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물’ 문제는 곧 ‘인간’ 문제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죠.



동물과 공존한다는 것


인간이 동물보다 고귀하다는 사고방식, 세상의 중심은 ‘인간’이고 동물은 인간의 소유물이나 수단이고 도구라는 생각은 오래전에도 있었습니다. 이것을 사고방식을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 또는 종차별주의(speciesism)라고 부릅니다.


인간중심주의란 인간 이외의 존재들을 인간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고, 종차별주의는 자신이 속한 종의 구성원들에게는 하지 않을 행동을 다른 종에게는 저지르는 ‘차별’의 논리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현대 사회에서 동물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자본주의적 소유 관념, 동물을 식량으로만 간주하는 도구적 인식.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육식을 반강제하는 육류산업과 인간중심주의와 종차별주의가 종합되어 형성된 것입니다.


이 때문에 ‘동물’을 둘러싸고 있는 문제는 단순한 논리나 법 제정만으로는 해결되기 힘들죠. 이는 법으로 특정한 행동을 금지할 수는 있어도 생각 자체를 바꾸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동물’에 관한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동물’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고 주인이라는 믿음을 내려놓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인간과 동물의 바람직한 공존 방식을 모색하는 데 있습니다. 동물을 소유나 도구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올바른 의미의 ‘공존’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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