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일의 철벽 요새를 박살낸 벙커버스터의 원조들
지난 13일 폴란드 인근 항구 도시
해저에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제거된 사상 최대 규모의 불발탄은
1945년 공습 당시 영국 공군이
투하한 길이 6m, 무게 5.4t의
지진폭탄 '톨보이(Tallboy)'였다.
폭탄의 파괴력은 지상의 목표물을
타격하고 살상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힘의 작용 때문에 독일의
견고한 요새를 파괴하지 못했다.
영국의 엔지니어 반스 월리스는
폭탄을 땅에 박아 넣어 폭발시켜
충격파로 지반을 흔들어 건조물의
구조를 허무는 지진폭탄을 고안한다.
최초 설계로 제안한 거대한 폭탄은
무게만 무려 10t의 미친 스펙으로
당시 적재할 수 있는 폭격기가 없어
영국군은 터무니 없다며 무시했다.
그러던 중 반스 월리스가 설계한
물수제비 폭탄 '업킵(upkeep)'이
독일의 루르강 댐 폭격 작전에서
제대로 적중하면서 영국 공군은
그가 제안했던 거대한 폭탄에
다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당시 영국의 주력 대형 폭격기
랭커스터의 폭탄 탑재량이 6.4톤 정도여서
원래 설계안의 폭탄 무게 10톤을 5.4톤으로
축소한 6.4m 크기의 폭탄 톨보이를 선보인다.
톨보이의 육중한 무게 때문에
낙하 속도는 더욱 가속이 붙고
꼬리 날개가 폭탄을 회전시켜서
회전력을 가진 총알이 관통하듯
지표를 파고 들며 폭발하게 된다.
1944년 6월 8일 밤 영국은
독일군의 보급로로 사용될
소뮈르 철도 터널을 폭격했고
톨보이는 암반층을 뚫고 들어가
터널을 완벽히 박살내며
성공적인 첫 임무를 수행했다.
혹시나 했던 톨보이의 위력에
고무된 영국은 닥치는 대로
톨보이를 던져 공략하지 못하던
독일군 요새를 파괴하기 시작한다.
나치의 V2 로켓 발사 기지와
프랑스, 네덜란드 해안에 있는
유보트 기지의 씨를 말렸다.
다른 항공 폭격에 끄떡도 안 하던
비스마르크급 2번함 티르피츠를
여러 번 강타해 침몰, 전복시켰다.
항공 정찰로 발견된 거대 시설이
수상하다는 이유로 정체도 모른 채
톨보이로 폭격해 날려버렸는데
초장거리 대포인 V3의 기지였고
계획을 박살내는 성과도 얻었다.
전쟁 중 총 854개의 톨보이를 투하한
영국 공군은 혁혁한 전과를 올렸지만
독일군도 이에 적응하며 더욱 견고한
기지를 구축하며 대비하게 되는데
이에 월리스는 톨보이의 초안이었던
길이 7.7m, 무게 10톤의 지진폭탄을
다시 제안하게 되고 톨보이의 위력을
확인한 영국군은 더 크고 아름다운(?)
폭탄 '그랜드슬램'을 개발하게 된다.
톨보이로 쏠쏠한 재미를 본 영국은
적재 중량을 초과하는 그랜드슬램을
매다는 형태로 랭커스터 폭격기를
특별 개조하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데뷔전은 톨보이 폭격도 견뎌낸
독일 베스트팔렌 지역의 철교로
폭탄이 목표물을 비켜 갔음에도
무너뜨리는 위력을 발휘했다.
전부 41회 사용되었던 그랜드슬램은
톨보이에도 버티도록 독일이 강화한
교량, 항구, 기지 등을 무자비하게
날려버리며 효용을 인정받으면서
태평양전쟁에 사용할 계획이었지만
독일과 일본의 패전으로 무산된다.
또 이들 폭탄을 본 미국은 1944년
그랜드슬램 무게의 2배에 달하는
20톤의 T-12 클라우드메이커를
개발하는데 원자폭탄의 등장으로
실전에 사용하지 못하고 폐기한다.
2차대전 시기에 혁혁한 공로를 남긴
지진폭탄의 개념은 현대로 전승되어
벙커버스터의 활약으로 이어지고 있다.
구성 및 제작 : 디지틀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