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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News | 코리아

'연애·결혼' 대신 '커리어' 꿈꾸는 평양의 젊은 여성들

영국 외교관 남편을 따라 2017년부터 평양에서 2년 간 생활한 린지 밀러는 자신의 경험담을 담아 책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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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LINDSEY MILLER

린지 밀러는 북한 주재 영국 외교관 남편과 함께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평양에서 거주했다. 그는 비교적 최근까지 북한에서 지내며 보고 느낀 경험담을 담아 '북한, 어느 곳과도 같지 않은 곳 (North Korea, Like Nowhere Else)'이라는 책을 집필했다.

발리에서 찍은 해변 사진을 보여주자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북한 주민, 담요에 싼 어린 딸아이를 대뜸 안겨줬다는 남루한 차림의 중년 남성, 결혼 대신 커리어를 쌓고 싶다고 말하는 여학생까지, BBC 코리아가 출간을 앞두고 있는 그를 화상으로 만나 북한에서의 생생한 경험담을 들어봤다.

기대, 그리고 오해

누구나 새로운 지역으로 떠나게 되면 그곳에 대한 여러 정보들을 사전에 찾아보기 마련이다. 북한으로 떠나게 된 린지 밀러 역시 비행기에 오르기 전까지 탈북민들의 증언이나 북한 전문가 이야기 등 북한에 대한 많은 정보를 찾아봤다.

"제가 찾은 정보를 토대로 떠올릴 수 있었던 북한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어딘가 '로봇' 같고 차가운 것이었어요. 특히 외국인들에게는 매우 냉담하거나 적대적일 것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평양 한복판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지금, 이런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자신이 만난 북한 주민들은 매우 친절하고 따뜻했으며 상냥한 사람들이었다고 회상했다.

"보통 매스게임이나 김일성 광장에서 펼쳐지는 열병식 같은 특정 렌즈를 통해 북한 사람들을 바라보잖아요. 때문에 북한 사람이라고 하면 성격도 매우 엄격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죠. 하지만 북한 사람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에요. 북한 사람이라고 해서 매일 김정은 얘기만 하는 건 아니거든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손주를 예뻐하고 또 가족을 사랑하는 그런 사람들이에요."

그는 북한 사람들이 '로봇' 같을 것이라고 표현하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사람을 인격체로 보지 않는다는 의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밀러가 책을 쓰기로 결심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비록 개인적인 경험일 수 있지만 그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통해 사람들에게 잠시라도 편견이나 추측을 버리고 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없을까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밀러는 자신이 만난 북한 주민들은 매우 친절하고 따뜻했으며 상냥한 사람들이었다고 회상했다

출처LINDSEY MILLER

감시 속의 '호기심'

밀러는 외교관의 아내로 평양에 거주하며 운이 좋게도 북한 주민들과 어느 정도 우정을 쌓고 가까이 지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평양의 다른 모든 외국인들처럼 북한 당국의 감시는 있었지만 그 속에서도 북한 주민들과의 교류는 있었다.

하루는 더운 여름날, 차를 타고 평양 시내를 이동하던 중 물을 사기 위해 숲이 있는 워터파크 근처에 멈춰 섰다. 바비큐를 굽고 노래를 부르며 휴일을 즐기는 가족들이 많았다던 그곳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어느 남루한 차림의 중년 남성이 양쪽에 두 아이의 손을 잡고 금발의 그에게 다가왔다.

"나를 봐서 너무 기쁜 듯한 모습이었어요. 만나서 너무 반갑다고 하길래 저도 한국어로 인사를 했죠. 그랬더니 아이들이 제가 한국어를 한다면서 깜짝 놀라더라고요."

뜻하지 않았던 북한 주민들과의 소소한 만남은 그에게 모두 잊지 못할 따뜻한 기억들이었다.

밀러는 북한 당국의 감시 속에서도 북한 주민들과의 교류는 있었다고 전했다

출처LINDSEY MILLER

"유아용 튜브를 갖고 있었는데 그걸 대뜸 저한테 건네줬어요. 처음엔 나보고 수영을 하라고 주는 건가 의아해했는데 튜브가 무거워서 무릎 위에 툭 떨어지더라고요. 안을 들여다봤더니 담요에 덮인 여자 아기가 들어있었어요. 제가 너무 귀엽다며 아기 이름이 뭐냐고 물었고, 그렇게 대화를 이어갔어요."

밀러가 만난 많은 북한 주민들은 영국 문화에 대해서도 많이 물었다고 했다. 이해를 잘 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도 있었는데, 특히 성 평등 문제나 동성 결혼 등에 대해서는 거의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았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북한 주민들이 가장 관심을 가진 건 밀러가 여행한 곳들에서 찍은 사진들이었다. 전 세계 어디 어디를 가봤느냐며 사진을 볼 수 있는지 물었고, 사진을 보여주면 한참을 보고 있었다고 했다.

"제가 발리에서 찍은 해변 사진이 있었는데 너무 아름답다면서 그걸 계속 쳐다보고 있었어요. 홍콩을 엄청 좋아하는 북한 주민도 있었는데 제가 찍은 홍콩 사진 보는 걸 좋아했죠. 내게 서울도 가봤냐고 물어봤어요. 어떤 사람은 자기 꿈이 파리에 가서 보트를 타보는 것이라고도 했어요."

평양 내 외국인 사회에서 북한 당국의 감시가 이뤄진다는 건 밀러를 포함해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때문에 그가 북한에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눈에 보이는 북한 사회의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개별적으로 만난 북한 주민들은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매우 많았고, 강압적인 북한 정권도 쏟아지는 그들의 질문을 막을 순 없었다는 게 밀러의 설명이다.

'커리어' 꿈꾸는 소녀들

평양살이 2년 동안, 밀러가 가장 흥미롭게 느꼈던 부분은 바로 평양의 젊은 여성들에 대한 것이었다. 젊은 여성들과 특히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는 그는 연애와 결혼, 커리어에 대한 그들의 달라진 사고방식에 매우 놀랐다고 전했다.

밀러가 평양에서 지내는 동안 가장 흥미롭게 느꼈던 건 젊은 여성들의 달라진 사고방식이었다

출처LINDSEY MILLER

"평양의 젊은 여성들은 제가 결혼을 했는데도 아이가 없다는 점을 매우 궁금해했어요. 연애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한 압박을 받는 게 불만이라는 여성도 있었죠. 결혼을 하기 싫다는 여학생도 있었고 어떤 여학생은 결혼 대신 커리어를 갖고 싶다고 했어요. 물론 평양의 엘리트 계층에 해당하는 얘기겠지만 그래도 매우 놀랍고 흥미로웠어요."

일과 가정의 균형, 여성과 엄마로서의 삶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는 평양 여성들도 있었다.

"장시간 일하는 게 너무 피로하다는 얘기를 한 여성도 있었어요. 가족이 있다는 한 여성은 일과 가정의 균형을 찾는 게 힘들다고 했죠. 어릴 때 운동선수를 해서 쉴 때면 운동을 하며 행복을 느낀다고 했는데, 아이를 낳고 그럴 시간도 없어졌고 스스로를 잃어가는 것 같다고 했어요. 주변에 아이가 있는 친구들이 엄마가 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것 같다는 말을 종종 했는데 그 생각이 났어요."

밀러가 만난 북한 청년들 중에는 해외 경험이 있는 젊은이들도 종종 있었다. 자신의 해외 경험에 대해 매우 자랑스러워했던 그들은 대개 다른 청년들보다 활력이 넘치고 보다 개방적인 느낌이었다.

"식당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이 있었는데 영어를 엄청 잘했어요. 물어보니 부모님 일 때문에 해외에서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스페인어도 한다고 했는데 저도 스페인인어를 할 수 있어서 같이 스페인어로 대화했죠. 미국 친구, 영국 친구, 프랑스 친구도 있다고 하길래 그들과 계속 연락이 되는지 물었더니 안 된다고 했어요. 그리고 더는 질문을 할 수 없었죠."

'정치' 대신 '사람'

밀러가 북한에서의 거주 경험을 담아 책을 쓰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 이야기가 아닌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밀러는 북한 문제에 있어 정치보다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전했다

출처LINDSEY MILLER

"어느 더운 날, 신의주를 가던 길이었어요. 길 위에는 땅을 파서 물을 뿌리며 도로를 정비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차를 타고 가는데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길을 건너는 어떤 여인을 봤어요.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는데 경적소리도 듣지 못한 것 같았어요. 40대 후반 정도 돼 보였는데 얼굴이 새까맣고 지나가는 차에서 묻은 것 같은 흙도 있었죠."

당시 그의 눈에 들어왔던 시골 도로 위의 그 여인을 생각하면 그는 지금도 울컥함을 느낀다고 했다.

"차가 오는 지도 모르고 걸음을 옮기던 그 여인의 얼굴에서 공허함 같은 게 느껴졌거든요. 탈북자들이 증언하는 것처럼 시골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특히 더 어려워요. 기근으로 고생하는 가족들도 너무 많고요. 그 여성을 보면서 이 사람은 얼마나 많은 가족을 잃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밀러는 북한 정권이 원하는 대로 북한을 생각하고 싶지 않다면서 북한 사람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물론 북한 문제에 있어 정치는 중요한 부분이지만 너무 정치에만 집중하다 보면 그 속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잊어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2500만 명의 사람들이 지금 그곳에 살고 있어요. 코로나로 인해 국경은 봉쇄됐지만 우리의 마음까지 닫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정치가 아닌 사람에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북한 정권에 대한 적개심은 가질 수 있어도 북한 사람에 대한 적개심은 가져선 안 된다는 얘기에 저는 동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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