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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 '69세 임선애 감독': '노인 여성이 젊은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한 게 왜 불쾌한가요?'

영화 속 사회는 '29세 남성이 69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사실을 쉬이 납득하지 못한다. 현실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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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애 감독의 영화 '69세' 속 주인공 효정은 예순아홉 살 여성이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생계를 꾸리고 생활을 공유하는 동거인도 있다.

평범한 한국 여성이었던 효정의 일상은 병원에서 스물아홉 살 남자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을 당하며 요동치기 시작한다.

가해자가 병원의 친절 담당이라는 설명에 "친절이 과했다"며 농을 치는 형사, 효정을 치매 환자로 몰아가는 사람들, 쉰 살의 나이차 때문에 범행의 개연성이 부족하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법원 앞에 효정은 홀로 맞선다.

BBC 코리아와 화상으로 만난 임 감독은 오래 전 읽은 칼럼 하나를 떠올렸다.

"노인 여성을 '무성적 존재'로 보는 사회의 편견이 되려 가해자들이 노인 여성을 목표물로 삼는 이유가 된다는 거예요. 신고를 해도 믿어주지 않으니, 그걸 악용한다는 거죠. '너무 악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실제 자료 조사를 해보니 노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많이 일어나고 있었어요. 이 역시 엄연히 폭력의 일환인데 거기에 다른 프레임을 씌워서 노인이라는 이유로 '노인'과 '여성'을 떨어뜨려서 보려는 이중잣대가 있더라고요."

검찰청에 따르면 60세 이상 여성 성폭력 피해자는 2014년 442명에서 2018년 728명으로 65% 가까이 늘었다.

이 숫자 역시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여전히 많은 노인이 성폭력을 당해도 신고를 꺼리기 때문이다.

'평범한 가해자'가 의미하는 것들

영화 속 사건의 배경은 병원이지만, '69세'가 그 공간 속에서 가해자를 설명하는 방식은 클리셰를 빗겨간다.

간호조무사인 가해자 중호와 요양보호사인 피해자 효정. 두 사람 사이엔 피해자와 가해자가 존재하는 현실 고발성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신분과 계급의 차이가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 설정상 가해자를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인물로 끌어내렸어요. 현장 간호조무사들이 애환이 많지만 병원 내에선 흔히 서열이 가장 낮은 직급이더라고요. 권력 관계에서 이야기의 본질이 나오는 게 아니라 '한 여성이 존엄과 명예를 지켜내기 위해 오롯이 투쟁하는 이야기'가 되길 바랐어요."

가해자가 '전형적인 악' 대신 지극히 평범한 젊은 세대로 그려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임 감독은 "우리 사회의 평범한 인물들 역시 가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가해자로서의 특정한 캐릭터나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노인 여성에게 건네는 '젊어보인다'는 칭찬, 왜 폭력이 아닌가

그는 성별을 불문하고 사회가 노인 여성을 대하는 보편적 방식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영화엔 수영장 탈의실을 배경으로 다른 여성들이 효정에게 "몸매가 처녀 같다"는 칭찬을 건네는 장면이 있다.

여성의 외모를 칭찬하는 행위가 성폭력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 왜 노인 여성에게만큼은 이같은 변화가 적용되지 않는지 되묻는 듯한 장면이다.

"노인 여성에게 그런 말을 해 주면 당연히 칭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어떤 가해도 하지 않았다'고 착각하는 경우들이 있어요. 노인이기 때문에, 노인이라는 전제가 은연중 작용하고 있어서 당연히 처녀가 아니고 당연히 아름다울 수 없다는 알 수 없는 전제가 있는 거죠. 그래서 그런 말들을 칭찬이랍시고 하는 폭력적 언어가 있다고 생각해요."

'남성 비하용 영화' 평점 테러 쏟아지기도

영화는 개봉 직후 '평점 테러'에 시달렸다.

일부 네티즌이 포털 사이트 등지에서 조직적으로 최하 평점을 매기면서 영화 평점은 2점대까지 떨어졌다.

'남성을 비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라는 평가부터 '토할 것 같다' '남자가 비위가 좋다'는 등 원색적 비난도 이어졌다.

이같은 공격에 반발한 이들이 잇달아 '10점 만점' 평점으로 맞서면서 영화 평점은 지난 17일 기준 9점대까지 다시 올랐다.

임 감독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라고 했다.

"좋게 보자면 그들도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 말도 안 돼' 하는 반응인 거겠죠. 하지만 노인 여성 자체를 폄하하는 내용들은 납득하기 힘들었어요. 제가 이 영화를 처음 생각한 게 2013년인데요. 2019년에 만들고 2020년 개봉을 하게 됐는데, 댓글을 보며 '그 사이에도 역시나 우리 사회가 일보도 전진하지 않았구나' 싶었죠. 따가운 시선이 변하지 않았다는 게 안타깝더라고요."

"영화 말미, 효정이 고발문에 가까운 편지를 써 내려가잖아요. 첫 문장이 '제 얘기가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가 아니라 '불쾌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예요. 저는 그 부분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이 이야기를 시놉시스로만 접했어도 대부분 사람이 눈살을 찌푸려요. 노년 여성이 피해를 입은 사실 만으로도 불편이 아니라 '불쾌함'까지 가는 거죠."

네이버 영화 감상평에 10점을 매긴 한 네티즌은 "이런 댓글들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얘기가 아닐까"라고 썼다.

또다른 네티즌은 "(평점 테러 상황을 보면) 이 영화가 왜 나왔는지 알 수 있다"고 평했다.

기획/취재 : 정부경, 영상: 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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