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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News | 코리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멜라니, 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별세

'할리우드 황금기' 배우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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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멜라니 역으로 출연 후 일년 뒤 모습

출처Getty Images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에 출연했던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26일 별세했다. 향년 104세로, 그는 아카데미(오스카)상을 수상한 연기자 중 최고령이었다.

드 하빌랜드의 홍보 담당자는 그가 프랑스 파리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50여년 동안 50편에 가까운 영화에 출연했던 그는 '할리우드 황금기'의 대표적 여배우로 꼽힌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출연진 가운데 마지막으로 생존해있던 배우이기도 했다.

그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멜라니 역 등으로 5번이나 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드 하빌랜드는 101세이던 2017년에는 대영제국 훈장을 받았다.

에롤 플린과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이들은 좋은 호흡을 선보였다

출처Getty Images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1916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이후 가족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1960년대 이후 파리에서 거주해왔다.

1935년 영화 '캡틴 블러드(Captain Blood)'에서 에롤 플린의 상대역으로 좋은 호흡을 선보이며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그 후 드 하빌랜드는 데이비드 오 셀즈닉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영화화한 작품에서 멜라니 역에 캐스팅됐다.

당시 비비안 리가 연기한 스칼렛과 정반대인 차분하고 우아한 성격의 멜라니 역을 충실히 소화하며 호평을 받았다.

이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의 영예는 스칼렛의 흑인 유모 매미를 연기한 해티 맥대니얼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드 하빌랜드는 이후 '그들에겐 각자의 몫이 있다(To Each His Own)'와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The Heiress)'로 1946년과 1949년 두 차례에 걸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왼쪽)와 동생 조앤 폰테인(오른쪽). 1945년의 모습

출처Getty Images

'드 하빌랜드 법'

드 하빌랜드는 거대 제작사가 스타들을 통제하던 시절 반기를 들기도 했다.

영화배우조합(Screen Actors Guild)의 지원을 받아, 그는 1943년 워너 브라더스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배역을 거절했다는 것에 대한 패널티로 계약 기간 종류 이후에도 계속 소속사에 묶여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주 대법원은 드 하빌랜드의 손을 들어줬고, 이 판결은 '드 하빌랜드 법'으로 불린다.

그의 여동생 역시 아카데미 수상자인 배우 조앤 폰테인인데, 둘의 사이는 나빠 의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동생과는 어린 시절부터 관계가 삐걱거렸다. 그러다 1942년 두 사람 모두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는데 폰테인이 수상하면서 둘의 관계는 더욱 악화했다.

드 하빌랜드는 또한 1946년 폰테인이 자신의 남편 마커스 굿리히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하자 분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1975년 어머니 치료 방식을 두고도 둘은 의견이 갈렸다. 폰테인은 2013년 세상을 떠났다.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101세 때 대영제국훈장을 받았다

출처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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