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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News | 코리아

또 다른 팬데믹 'n번방'.. 최전방 활동가들이 말하는 사건의 핵심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니지만 그 누구보다 깊이 들어가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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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뉴스1

전 국민을 분노와 경악 속으로 몰아넣은 텔레그램 'n번방'이 최초 보도된 지 약 6개월이 지났다. 이후 경찰은 관련 디지털 성범죄로 수백 명을 검거했고 이 중 수십 명이 구속됐다.

이 과정에서 일부 언론은 가해자들의 서사에 주목했고, 일각에서는 피해자의 신상을 캐기도 했다.

하지만 n번방 사건에는 가해자와 피해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최전방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의료진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팬데믹인 디지털 성범죄 퇴치를 위해 최전방에서 뛰는 활동가들이 있다.

이들은 피해자들이 그 누구에게도 말 못할 수 없었던 치욕적이었던 순간에 대해 처음 얘기하는 상대다. 피해자를 돕기 위해 잔혹한 피해 영상을 인터넷에서 찾아 헤매고, 또 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 하기도 한다.

피해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보며 좌절하기도 하고, 피해에서 회복하는 것을 넘어 '파이터'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며 사뭇 놀라기도 한다. 피해에 누구보다 공감하고 고통이 전이되기도 하지만, 때때로 피해자가 원하는 조치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얘기해줘야 한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니지만 n번방에 그 누구보다 깊이 들어가 있는 이들의 서사를 통해 사건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고자,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의 도움으로 피해자를 돕는 이효린·감이 활동가와 원민경 변호사의 얘기를 들어봤다.

이효린 활동가는 피해자를 도우며 충격도 받고 트라우마도 받지만, '우리가 왜 이 일을 계속 해야 되는지에 너무 명백한 근거가 또 되는 거 같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출처윤인경

'n번방은 신종이 아니다'

이들은 n번방 사건에 충격적인 요소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매우 익숙했다"고 말했다.

2017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 피해 지원을 시작한 이효린 활동가는 몇년 전 이미 n번방 성착취 피해와 유사한 피해에 대해 들었다. 그래서 n번방이 터졌을 때,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고 한다.

"2018년쯤 미성년자 피해자분이 도와달라고 자신의 피해촬영물을 공유해 주셨는데 공포스러운 느낌이 들었어요. 뭔가 인간의 존엄을 짓밟고 여성의 존재를 능욕하는 거였고… 타격감이 있었어요. 지금 텔레그램 성착취도 잔혹하고 신체상해적이라 더 끔찍한 요소가 많지만 여성의 존재를 능욕한다는 포인트는 같아요."

n번방 사건 피해자를 돕고 있는 한국성폭력상담소 감이 활동가 역시 "(n번방 사건도) 표면적으로 봤을 때는 되게 익숙하긴 했다"고 했다.

감이 활동가는 아이들에게 '엄마는 용기있는 사람들과 같이 하는 사람이다'라고 자신의 직업을 설명한다고 말했다

출처윤인경

그는 "가해자가 마치 어떤 왕국의 군주처럼 피해자 등을 내려다보면서 그들을 노예, 메뉴라고 칭하는 것은 무섭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면서도 "(지금까지도) 피해자를 능욕하고 자신들의 문화 안에서 그것을 놀이로 삼고 있는 불법촬영물은 너무 많았던 거 같다"고 말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신종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신종이 아니예요. 환경에 따라 계속 변화한 거죠. 진화라는 표현은 여기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고요. 단지 (가해자들이) 가장 잘 쓰고 있는 도구들을 너무 잘 이용해서 (기존의) 남성들의 문화가 그 공간에서 펼쳐진 거예요."

피해자 법률 지원활동을 하는 원 법무법인의 원민경 변호사는 이런 사건이 자꾸 나오는 기저에는 "결국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여성은 남성의 성적욕구의 배출구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법적으로는 많이 막아 놓았지만 모든 남성들이 이게 실제로 막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이런 식의 피해는 다른 방식으로 계속 재생산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원민경 변호사는 여성 피해자 법률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제일 힘든 것으로는 '수사기관과 정책집행자들이 피해자들의 피해에 공감하려 하지 않는 점'으로 꼽았다

출처윤인경

'공감하려 하지 않는 수사기관'

원 변호사는 성착취 피해자들의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들의 현재 삶만이 아니라 과거로부터의 삶을 쭉 봐야 한다는 것이다.

"(n번방 사건 피해자 일부가) 소위 '스폰'을 받으려고 했다가 이런 피해를 겪었다고 하는 댓글을 봤어요. 이분들이 돈이 필요하셨다면 왜일까요? 어떤 여성들은 10대를 지나는 순간 오롯이 혼자서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인 거죠."

누군가는 "생존력"과 "회복탄력성"이 다른 사람보다 더 약할 수 있다고도 했다. 어려서부터 존중받지 못하거나 다양한 학대를 경험하고 살아온 피해자의 경우엔 더 그렇다.

원 변호사는 특히 수사기관 등 공권력이 이러한 피해자의 서사에 좀 더 귀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의당 관계자들이 n번방 처벌법 처리 원포인트 국회 촉구 침묵 유세를 하고 있다

출처뉴스1

"피해자들이 사건 해결을 위해 만나야 하는 수사기관 관계자나 정책 담당자는 매우 좁은 문을 통과한 분들이에요. 굉장히 생존력이 강한 분들이라고 할 수 있죠. 저는 이분들로부터 피해자의 피해에 공감하지 하려 않는, 오히려 좀 질책하는 그런 눈빛을 느껴요. 이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스웨덴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스웨덴에서는 성매매 단속 시 양쪽 당사자를 모두 처벌하다가 1999년 성 구매자만 처벌하는 쪽으로 법을 개정했다. 성 판매자를 범죄자로 봤던 경찰의 교육에 상당한 노력을 들였고, 현재는 경찰이 성매매 피해 여성에게 지원책을 안내하기도 한다고 원 변호사는 설명했다.

피해 회복의 시작은 '다시 시작하기'

이효린·감이 활동가는 피해 회복의 시작은 수동적 존재, 즉 피해자로 남아 있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라고 깨닫고 그 사건에 압도되는 게 아니라, '그 사건이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될거야'라고 생각하는 게 시작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주변의 도움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감이 활동가는 현재 상담이나 신고를 한 피해자는 지극히 일부이며, 피해를 알린 이들의 권리 보장 여부가 핵심이라고 했다.

"아직도 상담 시작을 못 하시고 신고도 하지 못하신 분들도 여전히 있어요. 일단은 상담받고 신고하신 분들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해야 되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이송되는 모습

출처뉴스1

이는 피해자의 서사를 이해해야 한다는 원 변호사의 맥락과도 일치한다.

"보통 사람들은 내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적어도 대여섯 분 이상씩 다 되실 텐데, 피해자분들은 그런 분이 없는 분들이 꽤 많이 있어요. 그럴 때 상담소와 변호사가 이 분의 고민, 어려움을 같이 풀 수 있는 조력자가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단 용기를 내시는 것 같아요."

그러나 피해자가 짧은 기간에 단순히 상담소의 도움 혹은 변호사의 조력만으로 바로 A에서 Z단계로 넘어가진 않는다. "B로 됐다가 다시 A로 돌아가기도 하죠. 그런데 분명한 건 한 번 조금 더 위 상황으로 넘어가셨던 분들은 혹시 돌아가도 다시 올라가시려고 한다는 거예요."

최전방 활동가로서의 기쁨과 슬픔

"피해자의 고통이 저에게 전이되기도 해요. 일종의 외상 후 스트레스 같은 걸 경험하기도 했죠."

이 활동가는 2017년 불법촬영물(리벤지 포르노) 삭제와 피해자 지원에 주력했던 당시 자신을 "마구 썼다"고 했다.

자신의 쉼이 피해자에 타격이 갈 게 두려워 밤을 새서라도 피해자의 고통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타인에게 직접적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선택했고, 그 선택에 후회가 없다고 했다.

지인 사진을 공유하며 능욕하는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성범죄도 등장했다

출처트위터 캡처

실제로 그 역시 피해자가 느끼는 불안감을 느낀다. 불법촬영물 삭제 업무를 하다 자신이나 가족, 혹은 지인과 닮아 보이는 사람이 보이면 떨리는 심정으로 확인을 하게 된다고 했다. 한사성에 합류하기 전에도 어느날 밤 자신으로 보이는 불법촬영물의 썸네일을 우연히 보고 밤새 펑펑 울며 불안에 떨기도 했다. 동이 틀 무렵에서야 자신이 아닌 것을 확인하고 안도한 경험도 있다고 했다.

원 변호사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피해자를 볼 경우에는 "굉장히 좌절감을 느끼다"고 했다. 가정폭력의 피해자지만 가해자로 재판을 받는 상황도 있다. 하지만 해결 과정에서 피해자가 성장하는 것을 보기도 한다.

"정말 '이 분 이렇게 해서 운동가가 되시겠구나' 하고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어요. 또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계시는 많은 분들이 계세요. 그런 분들이 저희로 하여금 계속 이 활동을 하게 하는 거겠죠. 다른 사람을 도울 때 몸에 좋은 호르몬이 나온다 하잖아요."

n번방 규탄하는 시민단체 회원들

출처뉴스1

그는 공대위에서 법률지원을 하는 변호사들의 최근 모임에서 나눈 다짐도 공유했다. "'우리가 이렇게 도울 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고 얘기했어요. '하지만 1년, 2년 뒤에는 또다시 이런 공대위에서 뭉쳐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죠."

27일 기준 경찰은 박사방과 n번방을 포함해 총 664명의 피의자를 검거해 86명을 구속했다. 이 중 현재 406명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확인된 피해자는 536명으로, 이 중 482명을 특정해 조사를 진행했다. 이 중 473명은 경찰의 지원·보호를 요청해 신변보호, 주민번호 변경 조치 등이 지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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