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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성 물려주기'... 우리는 어디까지 왔을까

이 부부는 5개월 전 태어난 딸에게 엄마 성 씨를 물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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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처음엔 '그게 가능해?'라는 반응이에요. 이런 제도가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시더라고요"

지난해 12월 딸을 낳은 이수연 씨가 아기 이름을 말하면 주변 사람들은 모두 놀라워한다. 딸 제나에게 아빠 성 '박 씨'가 아니라 엄마 성인 '이 씨'를 붙여줬기 때문이다.

흔치 않은 결정을 하게 된 이유를 묻자 수연 씨는 "아이가 세상의 기준에 끌려가지 않고 차별과 편견이 없는 세상에서 살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아이 이름도 순우리말로 '자기 자신'이라는 뜻의 '제나'로 지었다.

하지만 이 과정이 쉽진 않았다. 양가 부모님들의 반대도 거셌다.

그때를 아빠 박기용 씨는 "난리가 났었다"라고 표현했다.

"저희 어머니는 '다시 볼 생각하지 마라'라는 말씀도 하셨는데, 오히려 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이게 그렇게까지 우리가 싸워야 할 정도로 큰일인가 싶기도 하고... 법을 위반하는 것도 아니고요."

기용 씨는 주변에서 특히 '아빠로서 아쉽지 않냐'라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

그는 "내 형제들이야 박 씨지만 어머니는 정 씨고 내 여동생과 결혼한 매제는 홍 씨"라며 "가족이 모이면 여러 성이 다 있는데 굳이 박 씨 한 명이 늘고 그런 게 중요할까? 가족인 게 더 중요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지인들은 아이가 아빠와 성이 다르면 편견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힐 수 있지 않냐며 우려했다. '미혼모나 이혼 혹은 입양 가정의 자녀'라고 오해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이에 대해 엄마 수연 씨는 "그런 가정들을 위해 엄마 성씨 쓰기가 가능해진 측면도 있지만 사람들이 아직 많이 모른다"며 "부모들이 '내게 이런 선택지도 있구나'하고 알게 되면 고민하며 엄마 성을 선택하는 사람도 생겨나리라 본다"고 했다.

아직은 낯선 엄마 성 쓰기

2008년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한국에서 엄마 성을 쓸 수 있게 된 지도 10년이 넘었다. 헌법재판소는 2005년 "성 역할에 기초한 차별로 정당한 이유 없이 남녀를 차별하는 제도"라며 호주제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부부처럼 태어난 아기에게 엄마 성을 물려주는 부부는 여전히 드물다. 그러다 보니 엄마 성을 따르기로 한 사례가 과연 몇 건이나 되는지 관련 통계조차 찾기 힘든 실정이다.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정고운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는 아버지의 성, 즉 부계가 문화적 관습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엄마 성은 낯설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산업화로 친족 관계는 약화하고 있지만 부부가 여전히 확대가족으로부터 전세금 마련이나 육아 등의 물적·실질적 자원에 의존하는 상황"이라며 "전통적 관념을 지닌 확대가족의 여러 행위자가 개인의 행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라고 말했다.

부계중심주의는 법에도 반영돼 있다. 현행 민법(781조)은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는 부성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예외 조항으로 엄마 성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까다로운 절차

엄마 성을 선택하려면 추가 절차도 거쳐야 한다. 우선 '출생신고'가 아닌 '혼인신고'를 할 때 엄마 성을 따를지 여부를 미리 결정해야 한다. 이 때 정하지 않으면 엄마 성씨 선택은 불가하다.

협의서와 주민등록증 사본도 제출해야 한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출석하지 않으면 인감증명서와 서명에 대한 공증서를 내야 한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는 '부성주의 원칙'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조사에 의하면 조사대상자 약 3000명 중 67.6%가 '부성주의 원칙은 불합리하다'고 답했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71.6%가 '자녀의 성은 부모가 협의해 선택해야 한다'고 답했다.

지난해 10월 임산부의 날에는 '둘째 아이에게는 엄마 성을 주고 싶다'며 "부성주의 원칙을 폐지하고 출생신고 때 성을 정할 수 있게 해달라'라는 국민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엄마 성 씨 협의서

출처BBC

외국은 대부분 규제 없어

그렇다면 해외 상황은 어떨까.

덴마크·노르웨이·핀란드·스웨덴 등 유럽 국가에서는 부모의 성씨 가운데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하는데, 따로 선택하지 않으면 엄마 성을 따른다.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에게 다른 성 씨를 물려주기도 한다.

스웨덴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와 그 동생 베에타 에르만의 이름에도 이 부분이 드러난다. 아빠 스반테 툰베리의 성을 따른 그레타와 달리, 베에타는 엄마 말레나 에르만의 성을 따랐다.

미국에서도 자녀의 출생신고 시 부모가 성 씨를 선택한다. 부모의 성이 아닌 새로운 성을 써도 대부분 주에서 규제하지 않는다.

한국처럼 유교 문화 영향을 받은 일본과 중국에서도 부성주의 원칙은 폐기된 지 수십년이 지났다.

특히 중국에서는 엄마 성씨를 붙여주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대도시 같은 경우는 이런 비율이 더 높은데, 상하이인구관리소 발표에 따르면 상하이의 경우 2018년에 신생아 10명 중 1명꼴로 엄마 성을 따랐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전했다.

그레타 툰베리(가운데)와 여동생 베에타 에르만(좌측)

출처Getty Images

현 정부 방침은?

한편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은 한국 부성주의 원칙과 관련해 8차례 걸쳐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 정부는 1984년 해당 협약을 비준했지만 '가족성에 대해 부부가 동일한 권리를 가지지 않는다'는 조항을 이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 힘입어 제도를 개선하려는 시도가 없지는 않다.

2018년 12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내놓은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에도 부성 우선주의 폐지 원칙이 담긴 바 있다.

로드맵은 현 법제가 저출산을 부추긴다고 보고 자녀 성 결정 시, 아버지 성을 우선하는 부성주의 원칙에서 부모 간 협의 원칙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9일에도 자녀가 아버지 성을 따르도록 한 '부성 우선주의'를 폐지하라는 법무부 산하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 권고가 나왔다.

법무부는 위원회의 권고에 대해 "검토해나갈 예정"이라며 "관련 법제의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박소현 법률구조 2부장은 "아빠 성이 원칙인데 예외적인 상황으로 돼 있는 '엄마 성'을 꺼내서 쓰기란 쉽지 않다"며 "법 원칙 자체가 차별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부성주의 원칙 폐기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부부가 아이를 낳은 후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고 엄마 성도 쓸 수 있다는 점이 제도적으로 알려져야 국제적 흐름에 발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영상: BBC코리아 김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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