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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News | 코리아

총각엄마와 10명의 아이들의 좌충우돌 온라인 개학 일기

북한에서 온 10명의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는 총각엄마 김태훈 씨의 바쁜 하루를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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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각엄마'로 불리는 김태훈 씨는 북에서 온 10명의 아이들과 함께 15년째 한 집에서 살고 있다

2020년 봄, 전세계적으로 발생한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한국은 사상 첫 '온라인 개학'을 맞게 됐다. 코로나19로 인해 10명의 아이들이 한번에 온라인 수업을 듣는 건 어떤 모습일까?

북한에서 온 10명의 아이들과 함께 한 집에서 살고 있는 '총각엄마' 김태훈 씨의 바쁜 하루를 들여다봤다.

첫 온라인 개학, 10명의 아이들 한번에 수업 듣기

"여기서 선생님 기다려야지, 이걸로 유튜브 보고 있으면 어떡해!"

2020년 4월, 첫 온라인 개학이 있던 날, 총각엄마 태훈 씨의 집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큰 아이부터 막내까지 방마다 돌아다니며 곤히 잠든 아이들을 깨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삼촌'의 재촉에 아이들은 2층에 있는 큰 탁자에 각자 노트북과 태블릿 PC를 갖고 모여 앉았다. 10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한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 해서 부족한 스마트 기기는 교육청에서 대여를 받았다.

"개학 전까지 얼마 간의 시간을 두고 예행 연습을 했어요. 처음에는 우왕좌왕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이들도 나름 잘 적응했어요. 1교시, 2교시 이렇게 시간 맞춰서 강의 영상이 올라오고 점심 시간이 되면 수업이 딱 멈춰요. 저는 그럼 또 음식 차려놓고 애들 불러서 다같이 점심 먹고 각자 다음 수업 들어가죠."

분주했을 개학일이 지나고 화상 인터뷰로 만난 태훈 씨는 10명의 아이들과 함께 한 온라인 수업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이른 아침, 아이들 기상에서부터 학교 과제 하나까지 손수 챙기는 그를 아이들은 '삼촌'이라고 부른다. 이들에게는 과연 어떤 사연이 있을까?

사상 첫 온라인 개학을 맞아 학년도 학교도 다른 10명의 아이들은 한 집에서 다같이 수업을 듣게 됐다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

서울의 한 2층짜리 주택에는 '총각엄마'라는 별명을 가진 태훈 씨와 10명의 남자 아이들이 함께 살고 있다. 아이들이 '삼촌'이라고 부르는 태훈 씨 외에는 모두 북한이 고향인 아이들이다. 그가 이른바 '북한이탈청소년'들과 함께 한집에서 가족으로 살아온 지도 어느덧 15년째를 맞았다.

초등학생인 막내 준성이부터 중학생인 주영이, 금성이, 청룡이, 호빈이, 고등학생인 철광이, 권이, 광일이, 명도, 그리고 가장 큰형인 대학생 군성이가 모두 한 가족이다. 그리고 이들 개성 넘치는 아이들을 뒷바라지 하며 보살펴주고 있는 사람이 바로 올해 45살의 김태훈 씨다.

"각자 사연은 다 다르지만 저희 아이들 대부분은 한국에 부모님이 안 계세요. 북한에 있는 부모들이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아이만이라도 잘 살 수 있도록 브로커를 통해 자식만 한국으로 보내는 거죠. 아주 어린 경우엔 브로커 등에 업혀서 탈북을 하게 되는 아이들도 있어요."

태훈 씨네 가족은 '그룹홈'이라는 일종의 공동생활가정이다. 탈북청소년들이 함께 모여 살기 때문에 탈북청소년 그룹홈으로 불리기도 한다. 탈북을 하게 되면 통일부 산하의 하나원에서 3개월 간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교육을 받게 되는데, 이후 미성년자인 아이들은 혼자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기숙학교나 보호시설 등으로 가거나 이같은 그룹홈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그룹홈은 아이들을 보호하는 시설 중에서 가장 최소 단위예요. 지역사회에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정착하며 살 수 있도록 가정의 형태로 운영되는 보육시설인 셈이죠. 하지만 우리집 아이들은 이 집을 보육시설로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내 집이라고 생각해요."

태훈 씨의 설명에 따르면, 그룹홈은 기본적으로 만 18세까지 살 수 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에 들어가게 되면 졸업 때까지 연장할 수 있다. 취업을 하면 1년 안에 자립해야 한다.

"저희 집 가장 큰 아이는 대학에 진학해 저와 함께 살고 있고요. 처음 같이 살았던 아이는 지금은 20대 성인이어서 이미 독립해 살고 있어요."

아동보호법에 따라 하나의 그룹홈에는 최대 7명까지 함께 살 수 있다. 때문에 가족이 많은 태훈 씨네 집은 1층과 2층, 두 개의 그룹홈을 꾸려 지내고 있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10명의 아이들은 이곳을 보육시설이 아닌 진짜 '집'으로 생각하고 살고 있다.

'빨래부터 장보기까지'...총각엄마의 바쁜 일과

태훈 씨의 하루는 새벽 6시에 일어나 아이들을 깨우는 일부터 시작된다. 학교 가야 하는 아이들을 깨워 아침 밥을 챙겨 먹이고 등교 준비를 시키다 보면 아침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대가족의 살림을 꾸려 나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집안일은 태훈 씨가 직접 다 해오고 있다.

"집안일 중에 제일 힘든 건 장보는 일이에요. 어마어마한 양을 매일 봐야 하거든요. 한창 자랄 나이의 남자 아이들이다 보니까 먹는 양도 보통이 아니거든요. 저는 분명 카트에 어마어마한 양을 실어서 장을 봐왔는데 그게 하루 만에 다 없어지면 허탈하기까지 해요. (웃음)"

식구가 많다보니 한 달 생활비도 만만찮다. 매일 같이 장을 봐야 하니 식비만 해도 한달 평균 250만원에서 300만원에 달한다. 그룹홈 초반에만 해도 기본적인 생활비는 디자인을 전공한 그가 미술 강사를 하며 벌어들인 돈으로 해결했다. 하지만 식구가 늘어나고 돌봐야 하는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아졌다.

때문에 이후에는 일부 정부 보조금에 기업 사회공헌 제도의 도움을 받아 살림을 꾸려왔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일이 여전히 편하지 않다는 그는 최근 강원도 철원에 작은 카페를 열어 조금이나마 경제적 자립을 해보기로 했다.

"이 일을 15년째 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누군가에게 계속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게 참 쉬운 일은 아니에요. 도와달라고 하는 말조차도 너무 어려워요. 그래서 내 스스로도 좀 벌어서 우리 아이들을 잘 키워야겠다는 마음으로 가게를 열게 됐어요."

오전 일찍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가게에 나가 장사 준비를 하고 다시 저녁에 와서 아이들을 돌보다 또 가게를 마감하러 간다. 가게 일로 잠시 집을 비워야 할 때면 사회복지사 선생님이나 어머니가 직접 집에 와서 일을 도와주기도 한다.

특히, 태훈 씨의 어머니는 거의 매일 같이 집에 와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리도 해주며 살림에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부모님이 처음부터 그를 응원했던 건 아니었다.

'총각이 애를 키우겠다니'...가족의 반대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태훈 씨는 원래 평범한 회사원의 삶을 살고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하며 북한이탈 청소년들에게 멘토링하는 봉사활동을 계기로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제가 31살 때 봉사활동을 하면서 처음 만난 아이가 하룡이라는 친구예요. 멀리 일하러 나간 엄마 때문에 집에서 혼자 지내던 아이였는데 하룻밤만 같이 있어달라는 그 말에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북에서 온 10살 하룡이와의 만남은 그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직장을 갑자기 그만두고 북에서 온 10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살겠다는 그의 결심을 부모님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처음에 많이 당황해 하셨어요. 부모님 눈에는 저도 아직 애로 보이는데 네가 무슨 애를 키우냐면서 반대하셨죠. 그런데 어떡해요. 그 애는 저만 바라보고 있었고 차마 매몰차게 너랑 같이 살긴 힘들 것 같다고 말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부모님과 연락을 끊게 됐어요."

그렇게 하룡이와 함께 살기 시작한 이후, 아이들은 하나 둘씩 늘어났고 지금의 가족이 됐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는 말처럼 부모님도 그의 결심을 조금씩 이해하게 됐고 지금은 태훈 씨의 부모님이 이 집의 1등 후원자다.

그날 태훈 씨의 손을 꼭 잡았던 아이는 이제 어엿한 26살 청년이 됐고, 지금은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든든한 술친구가 됐다.

탈북민에 대한 편견과 싸워온 15년

10명의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집안일과 경제적인 부분보다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바로 탈북민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었다. 15년째 북에서 온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거의 2년마다 이사를 해야 했던 그는 늘 이같은 차별적인 시선과 마주해야 했다. (다행히 지금은 한 독지가의 도움으로 10년간 무상으로 살 수 있는 집을 제공받아 이사를 가지 않고 지낼 수 있게 됐다.)

"아무래도 아이가 많다 보니 집주인들이 싫어하셔서 이사를 자주 해야 했어요. 그런데 이사를 다닐 때마다 어떻게 아시고 이웃 주민들이 저한테 와서 얘기를 해요. 여기 탈북자들 사냐고요. 그러면서 탈북자들 이 동네에서 조용히 살아야 될 거라고 경고 메시지 같은 걸 보내기도 했어요."

한번은 또래 친구가 태훈 씨네 집 아이를 간첩이라고 신고를 한 일로 집안이 발칵 뒤집힌 적도 있었다. 아직 미성숙한 아이의 철없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정식으로 학교에 가서 항의를 했고 상대편 아이의 부모님과도 얘기를 나눈 뒤 사과를 받았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다수의 아이들에게 북에서 온 친구가 왜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인지 알려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학교에 요청했다. 다행히 학교 측에서 이러한 요구를 들어줬고 아이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우리집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어요. 겉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그런 자리를 갖고 난 뒤 자기를 쳐다보는 친구들의 눈빛이 많이 달라졌다면서 학교 생활을 더 즐겁게 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더라고요."

그는 우리 사회에 여전한 탈북자들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속상한 적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아직은 한국 사람들이 북에서 왔다고 하면 아래로 깔고 보는 시선이 있어요. 일부 사람들은 북에서 온 사람을 적대시 하는 경우도 있고요. 근데 전 너무 슬픈 게 우리 아이들은 아직 청소년이에요. 정치적인 색깔로 봐서는 안 되는 아이들이거든요."

'사랑받은 아이가 건강한 사회인이 된다'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전체 탈북민 수 3만 3천여 명 가운데 탈북청소년은 약 2천 5백명으로 추산된다. 종종 뉴스에서 한국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북한이탈청소년들의 학업 중단 문제가 거론되곤 하지만, 태훈 씨는 아이들을 모두 대안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보내고 있다. 공부를 못해도 좋지만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살다 온 아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성인이 되어 함께 잘 살아가려면 '친구'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안학교가 나쁘다는 게 절대 아니에요. 다만 저는 충분히 집에서 아이들을 서포트할 수 있으니까 대안학교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은 거죠. 고향 친구들하고만 모여서 지내다 보면 나중에 성인이 됐을 때 한국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잖아요. 일반 학교에서 함께 추억을 공유했던 친구들은 자라서도 관계가 유지될 거고 이게 저는 아이들에게 큰 자산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때문에 그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학교운영위원은 물론 전교 학부모회장까지 도맡아 한 열성 삼촌 역할을 자처했다. 그는 결혼 안 한 총각이 전교 학부모 회장을 한 건 자신이 대한민국 최초일 거라며 웃어보였다.

"북에서 온 저희 집 아이가 일반 학교에서 학생들이 직접 투표해서 뽑는 선거에서 전교 학생회장이 된 적도 있어요. 반에서 학급 반장을 하는 아이도 있고 학교 전체 임원을 맡아서 하는 아이들도 있고요."

6년 전 쯤, 중학생이던 아이가 선거에서 전교 회장으로 뽑혔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슴이 뛰어서 주체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당선 공고문에 있는 아이의 이름을 사진으로 직접 남기고 싶어 늦은 저녁 학교로 달려가기도 했다.

태훈 씨와 처음 함께 살게 된 꼬마 하룡이는 이제 20대 성인이 됐다

"그리고 자원봉사 제일 열심히 한 친구에게 주는 상이 있는데요. 거기서 대상을 받아서 한국 대표로 미국 워싱턴까지 다녀온 아이도 있어요. 저 그날은 엄청 울었어요. 좀 바보 같지만 그냥 모르겠어요. 갑자기 막 벅차 가지고 엄청 울었어요."

10명의 아이들이 한집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지켜야 할 생활 규칙 같은 건 없다. 이 집에는 '룰이 없는 게 룰'이라고 말하는 태훈 씨에게는 나름의 확실한 교육관이 있다.

"저도 학창 시절에 부모님과 살면서 집에 규칙 같은 건 없었어요. 그냥 인간으로서 당연히 그 나이대에 지켜야 되는 예의, 이런 것만 잘 지키며 사는 거지 청소나 빨래 같은 집안일을 분담하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왜냐면 저도 부모님이 그렇게 키워 주셨으니까요."

그는 가끔 주변에서 나중에 아이들 독립을 위해서라도 그런 걸 가르쳐야 되지 않겠냐는 질문을 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확실하다.

"전 근데 그것보다도요. 청소년 시기에 부모님한테 충분히 사랑받고 자란 아이들은 나중에 독립을 해서도 그 사랑받은 그 힘, 그 에너지로요.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다고 믿어요. 저도 빨래하는 법, 청소하는 법 몰랐어요. 몰랐는데 닥치니까 하게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저도 저희 부모님께 충분히 그만큼의 사랑을 받았으니까요."

"저는 우리집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서 나중에 독립하면 '나는 불우하지 않았어. 부모님은 없었지만 이렇게 행복하게 컸구나' 하는 마음으로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을 거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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