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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10주기: '죽은 동료들이 너는 왜 살았냐고 묻더라'

사건 당시 막내 하사였던 생존자 정주현 씨를 만났다. 그는 지난 10년을 어떻게 보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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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하이의 ‘우산’을 들으며 침대에 누워 있었어요. 자정부터 당직이어서 미리 잠을 자 두려고 했죠. 갑자기 몸이 붕 뜨는 거예요. ‘파도가 높은가’ 생각했는데 천장이 제 오른쪽에 있더라고요.”

정주현 씨는 2010년 당시 열아홉살 해군 하사였다. 바다가 좋아 해군이 됐다고 했다. 그는 천안함 침몰 사건 생존자다.

그해 3월 26일 밤, 한국 해군 초계함 천안함은 백령도 남서쪽 1km 지점에서 침몰했다.

배는 두 동강이 났다. 46명이 전사했고 58명이 구조됐다. 한국 국방부는 ‘북한 소행’이라고 주장했고 북한은 혐의를 부인했다.

천안함 사건 10주기를 한 달 앞둔 지난 2월 말, 한국 대전에서 정 씨를 만났다.

미리 양해를 구하고 사건 당일의 기억에 대해 물었다. 그는 천천히 기억을 되짚었다. 단어를 조심스레 고르는 듯했고, 말을 자주 멈췄다.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30분

정 씨의 기억을 토대로 침몰 순간을 재구성했다.

이날 정 씨는 자정 당직 임무를 기다리고 있었다. 좁은 3층 침대 꼭대기 층에 누워 음악을 듣던 중이었다. 부대에 MP3가 막 보급된 시기였다.

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데 몸이 갑자기 공중으로 붕 뜨더니 물건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처음 사고를 인지한 순간을 떠올렸다.

곧이어 ‘쾅’ 소리와 함께 배가 오른쪽으로 뒤집혔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 먼지가 호흡기 안으로 확 들어오더라고요. ‘배 안에 침 뱉으면 안 되는데’ ‘내가 치워야 하는데’ 같은 생각을 하는데 침이 계속 나오는 거예요. 곧이어 불이 꺼지고 주황색 비상 전원이 들어왔어요.”

그 순간, 누군가 ‘물이 들어온다’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턱걸이도 못 했는데 초인적인 힘으로 기어서 좌향 갑판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는 갑판에 올라서는 순간 보이던 달빛을 아직도 기억한다고 했다.

“동굴에서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뒤를 돌아봤는데……. 뒤따라 올라오는 사람들이 꼭 좀비 같았어요. 피범벅이 된 사람, 발가벗고 기어오는 사람, 누구는 목이 부러지고 누구는 허리가 부러지고. 바닷물엔 기름과 잔해가 둥둥 떠 있었습니다.”

군인들은 서로의 옷을 찢어 피투성이가 된 동료의 상처를 동여맸다.

정 씨는 “어디 계세요”를 외치며 ‘넘버 투’ 하사를 찾아 나섰다. 하사는 엉덩이뼈에 금이 간 채 옴짝달싹 못 하고 있었다.

또 다른 동료는 부서진 구조물에 대퇴부가 깔려 입에 거품을 문 채로 발견됐다.

아비규환 속, 바다 먼 끝자락에서 불빛이 보였다. “엎드리라”는 함장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람이 죽기 전 주마등처럼 지난날들이 지나간다고 하잖아요. 필름처럼 눈앞에 찰칵, 찰칵, 찰칵……. 기억도 잘 안 나는 다섯 살 시절까지 보이는 거예요.

정 씨는 다가오는 배가 적군일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여기서 잡혀서 북한에 가면 사형 당할 수도 있는데’ 같은 생각도 했고요. ‘저 배가 공격하면 여기서 뛰어내려야겠다’ 싶었는데 갑판 끝이 어둠이더라고요. ‘그럼 죽겠다’ 싶어서 ‘그냥 배가 터지면 나도 터져야지’ 하고 체념했죠.”

천안함에 접근해 온 배는 구조선이었다. 파고가 높은 날이었다. 구조선에 부상자들을 옮겨 싣는 일은 쉽지 않았다.

“70, 80kg 되는 사람들을 두 명이 들고 다른 배에 넘겨야 하는데, 구조선은 가까이 붙지도 못 하고요. 죽겠다고 소리지르는 동료를 딱 들어 올렸는데, 제 허리에서 ‘펑’ 소리가 나는 겁니다. 너무 급박하니까 아픈 것도 모르겠더라고요.”

부상이 덜한 사람들이 다친 동료들을 들고 구조선을 향해 내던졌다. 던지지 않으면 옮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 씨는 무사히 해경정에 탔다.

“해경에게 가서 ‘아저씨, 마음이 너무 안 좋아서 그러는데 담배 한 대만 주실 수 있어요?’ 했죠. 물에 다 젖은 담뱃갑을 건네 주는데, 세 대 남아 있더라고요. 한 대를 꺼내 덜덜 떨면서 피웠어요. ‘아저씨,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 하니까 ‘어뢰 맞은 것 같아요’ 하더라고요.”

“’그때 죽었어야 했다’는 말도 들어”

정 씨는 전남 여수에서 나고 자랐다. 집 대문을 열고 몇 걸음만 달려나가면 선착장이 보였다고 한다.

“친구들과 놀이터에 가는 게 아니라 바닷가에 가서 놀았어요. 고구마도 구워먹고, 어부 아저씨들이 생선을 가져오면 같이 회도 떠 먹고. 수건 한 장만 있으면 바로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그런 환경이었죠. 물 흐르듯 해군이 됐습니다.”

정 씨는 “해군이 된 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천안함 사건 이후에도 군에 남았다. 파병도 다녀왔다.

그는 “이 일 때문에 바다에 못 나간다면 스스로에게 지는 거라고 생각했다”며 “죽은 사람들에게 미안해서라도 정말 멋있는 군인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정 씨는 사건 5년 뒤인 2015년 6월 군을 떠났다. 계획에 없던 전역이었다. 그는 “해군 내에서 종종 패잔병 취급을 받았다”고 했다.

“제가 다른 천안함 생존자와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너희 둘 같이 있으면 또 재수 없는 일 생길 수 있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어요. ‘그때 죽었어야 했다’고 혼을 내던 상관도 있었고요. 천안함 사건을 겪고 나서도 이겨내려고 다시 배에 탔는데 동료들이 그러니 정말 너무 힘들었습니다. 배에서 뛰어내리고 싶었어요.”

천안함 사건 생존자 정주현 씨

출처BBC

그는 “죽지 못해 살고 있다”고 말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도 호소했다.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엘리베이터도 잘 안 탄다”고 덧붙였다.

그의 주머니에선 여러 종류의 약이 나왔다. 3년 전부터 복용해 온 수면제, 알코올중독 치료제, 공황장애 약물이라고 했다.

“죽은 사람들이 자꾸 꿈에 나옵니다. ‘너는 왜 살았느냐’고 묻습니다. 원래는 그런 말을 할 분들이 아닌데…….”

천안함 사건 생존자 정주현 씨

출처BBC

“’내가 진짜 아프구나’ 생각했던 게, 언젠가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환영이 보이더라고요. 죽은 사람이 제게 다가오는 환영이요. ‘와, 이건 진짜 병원을 가야겠구나’ 싶었습니다.”

정 씨는 2015년 국가유공자 지정을 신청했지만 아직 인정받지 못했다.

민군합동조사단 “북한 어뢰공격이 원인” 결론

사건 발생 20일째부터 인양 작업이 시작됐다. 시신 40구가 절단된 배 곳곳에서 발견됐다. 6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다.

민군합동조사단은 2010년 5월 20일 한국과 미국, 호주, 영국, 스웨덴 등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조사 결과 보고서를 냈다.

조사단은 “천안함은 북한에서 만들어진 어뢰 공격으로 인한 수중 폭발로 침몰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증거들은 분명 해당 어뢰가 북한 잠수함에서 발사됐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북한은 이튿날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사건과 하등 관계가 없다”며 “조사 결과는 미국의 승인과 비호, 조장에 의한 자작극”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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