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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News | 코리아

코로나19 집단감염... 콜센터의 '민낯'도 드러났다

취약한 근무 환경 탓에 얼마든지 '집단적 고통'으로 둔갑할 수 있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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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충남 천안시 고용노동부 콜센터에서 직원들이 민원 처리 업무를 하고 있다

출처NEWS1

"37도가 넘으면 들어가라고 해요. 당장이라도 보내줄 것처럼 말하지만 돈 받고 쉬는 거 아녜요. 연차가 없으면 무급으로 쉬어야 하니까 '자가 격리'될까 꺼리고 숨는 분위기가 저절로 조성되는 거죠."

김지연(가명)씨는 경기도 소재 40명 규모의 콜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최근 일어난 구로 콜센터 노동자들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가 남 일 같지 않다.

13일 기준 구로 콜센터 관련 코로나19 확진 환자는 109명. 상황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대구에서도 삼성전자 서비스 등 콜센터 13곳에서 60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감염자 대부분이 출ㆍ퇴근 시간 대 대중교통을 이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콜센터가 종교단체 신천지에 이어 '지역 감염'의 진앙이 되는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김씨는 할 말이 많다. 집단 감염이 불거진 이후 사측의 지침도 많아졌고 사내 긴장감도 높아졌다. 그러나 근무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노동계는 이번 사태를 '예견된 인재'라고 단언한다. 집단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근무 형태, 누구도 안전을 책임지지 않은 간접고용 등 구조적 문제가 사태를 키웠다는 것이다.

콜센터 감염자 대부분이 출ㆍ퇴근 시간 대 대중교통을 이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콜센터가 종교단체 신천지에 이어 '지역 감염'의 진앙이 되는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출처NEWS1

집단 감염에 취약한 환경

"마스크를 쓴 사람은 없었습니다. 업무를 못하니까요."

12일 자가 격리 중인 이정민(가명)씨는 BBC코리아에 이렇게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한 서울 구로구 소재 에이스손해보험 콜센터 현장에 있었다.

김씨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그가 일하는 콜센터는 3층 건물 반지하에 있다. 햇빛도 들지 않는 공간인 데다 직원들은 불과 1m 남짓한 간격으로 다닥다닥 붙어앉아 하루 종일 고객을 응대한다. "다들 올 게 왔다고 합니다. 이전에도 기침이 나오면 동료에게 미안했는데 지금은 더 그렇죠."

SK텔레콤이 최근 서울 구로구 콜센터 직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90명 이상 집단감염되는 등 콜센터 감염위험이 크게 부각되자 12일 희망자를 대상으로 재택근무를 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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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구로 콜센터 사태 전후 직장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나도 걸리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 때문에 다들 예민해졌다는 설명이다. 지방자치단체가 부랴부랴 점검에 나서자 회사도 그제야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지급하겠다고 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준수한다는 명목으로 한 사람씩 떨어져 앉고, 마주보고 앉지 말라는 지시도 내려졌다.

하지만 회사는 지침만 내렸을 뿐, 사실상 지원해준 것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띄어 앉기가 가능해진 것도 코로나19 덕분이다. 감염병 확산세가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돌봄 공백이 생긴 직원들이 하나 둘 그만둬 빈 자리가 생긴 것이다.

업무량은 그대로인데 인원이 줄면서 일은 몇 배 더 바빠졌다. 신규 채용은 계속됐다. 그는 "신입이 들어오면 모니터를 같이 보면서 업무를 가르쳐야 하는데 사회적 거리 두기가 어떻게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되물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서비스일반노조는 11일 열린 긴급기자회견에서 "구로 콜센터 집단 감염은 예견된 사건"이라고 결론 내렸다. 감염병이 아니더라도 독감과 눈병 등 전염성이 강한 질병이 발병하면 취약한 근무 환경 탓에 얼마든지 '집단적 고통'으로 둔갑할 수 있는 구조라는 분석이 뒤따랐다.

13일 구로구 건물 7층 콜센터에서 근무하던 직원 19명이 자리를 옮겨 근무한 곳으로 알려진 서울 영등포구 7호선 신풍역 바로 인근의 건물의 콜센터가 관련 안내문이 붙은 채 폐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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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재택근무를 하지 않았나

구로 콜센터 사태가 터지자 서울 120다산콜센터와 통신사 등은 재택ㆍ분산 근무를 감염 예방의 대안으로 권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콜센터는 지금까지 왜 일반 사무직처럼 재택근무를 할 수 없었던 걸까.

콜센터 노동을 연구해온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이승윤 교수는 '노동 통제'나 다름 없는 업태 관리 방식에서 원인을 찾았다. 그는 "닭장 같은 물리적 근무 환경은 빙산의 일각"이라며 "효율적인 인력 감시를 위해 현장근무를 선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콜센터 직원들의 증언도 이 교수의 진단과 일치한다. 김씨는 "관리자들은 목표한 응답률을 맞추려 뒤에서 버럭버럭 고함을 치기 일쑤"라며 "(전화 응답률이) 97~98% 이하로 떨어지면 큰 일이라도 난 듯 '화장실은 한 명씩 교대로 가라'는 메시지가 올 때도 있다"고 전했다.

김씨는 이런 수직적인 현장 분위기를 감안하면 재택근무는 언감생심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구로 사태 이전 사측은 "개인 정보를 다루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재택근무는 불가하다는 논리를 댔다.

실제 집단 감염이 발생한 구로 콜센터에서도 재택근무는 고려되지 않았다고 내부 관계자는 전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대전지역일반지부 구성원들이 12일 오전 대전 유성구 KB국민은행 콜센터 앞에서 코로나19 감염확산 대응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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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ㆍ비정규직, 그리고 최저임금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구로 콜센터 첫 확진자는 출근 뒤 오후 4시쯤 이상 증상을 느꼈지만 오후 6시까지 일하고 퇴근했다.

노동 전문가들은 콜센터 직원들이 감염 위험을 무릅쓰면서 업무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배경으로 이들의 '취약한 노동 지위'를 꼽는다.

이승윤 교수는 "콜센터 노동자는 하청과 비정규직, 저임금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대다수"라며 "청소 노동자와 함께 한국 서비스업에서 불안정성이 가장 큰 직군"이라고 말했다.

출처그래프: 이승윤 교수 제공

통계청 자료를 보면 전국 콜센터ㆍ텔레마케팅 서비스업 사업체 수는 2016년 기준 944개, 종사자는 7만5767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50인 미만 영세 사업장이 절반가까이 된다.

전체 종사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 역시 66.5%에 달했다. 구로 콜센터 사례(12일 기준)만 봐도 서울 거주 확진자 52명 중 46명이 35~60세 여성이었다.

민주노총 콜센터 지부는 이들이 대개 최저임금에 맞춰진 기본급에 10만원 안팎의 인센티브나 근속 수당을 받으며 일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10년간 일자리 수는 늘었지만 노동 진입 장벽이 낮다는 이유를 내세워 경력단절 여성 등 비숙련자에게는 급여가 최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용 안정성도 낮은 편이다. 민주노총 이윤선 콜센터 지부장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사태 때도 그랬고, 콜센터는 회사 사정으로 휴업하더라도 개인 연차를 쓰도록 하는 문화가 있다"며 "싱글맘으로 아이를 키우는 여성도 많은데 당장 급여가 끊기면 생계가 상당히 곤란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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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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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BBC

어떤 개선이 필요한가

이 교수는 콜센터 연구를 하면서 재하청도 아닌 '3단계 하청' 사례를 자주 목격했다. 그래서 "콜센터의 원청-하청 구조가 지속되는 한 노동자 건강이나 산업재해 이슈를 제대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노동계도 이런 문제 의식에 동의한다. 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은 10일 성명을 내고 "사전 예방 대책을 세워야 할 보험사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것이 집단 감염의 원인"이라며 "사측은 도급 계약을 맺고 있는 콜센터노동자들의 건강권과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공인노무사인 김종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법규국장은 "감염병이 계속 번지는데도 위험을 줄이기 위한 변변한 법 규정 하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콜센터 노동자에 대한 장비 지급 및 최소 근무 공간 설정을 의무화하는 등 세부 산업안전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번 사태를 통해 타인의 열악한 근로조건이 나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김 노무사가 마지막으로 건넨 당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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