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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News | 코리아

코로나19 최전선서 사투... 의료봉사 간호사들의 이야기

'병원 문을 직접 열고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좀비 호러물에서 보는 그런 장면을 상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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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최전선에서 의료봉사 중인 홍유리 씨(왼쪽)와 오성훈 씨

출처BBC

"밤늦게 아내에게 의료봉사를 하게 됐다고 말했거든요. 그런데 아내가 다음 날 아침에 눈 뜨자마자 갑자기 눈물을 흘렸어요."

결혼 5개월 차인 오성훈 씨는 가족들 몰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의료봉사에 자원했다. 확정도 되기 전에 가족들에게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일은 빠르게 진행됐고, 가족들이 반대하기도 전에 그는 청도로 내려갔다.

경북 청도대남병원에서 의료봉사를 시작한 오 씨는 간호사 웹툰 '리딩널스'를 연재하고 있는 간호 관련 스타트업 대표다. 그는 간호 일을 쉰 지 1년 반 만에 다시 환자들의 곁으로 돌아갔다.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자 정부는 지난달부터 의료인력 자원 신청을 받고 있다.

서울 광진구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의료봉사 중인 홍유리 씨도 청도대남병원에서 이송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그는 현재 간호사가 아닌 척추전문운동지도사로 활동 중이지만, 강의를 나가는 문화센터가 한 달 휴강을 결정하자 의료봉사를 자원했다.

홍 씨도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아직까지 의료지원을 하러 갔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가족들에게 안부 전화가 올 때마다 '집에 잘 있다'라고 말씀드리는데, 그것도 힘드네요."

코로나19 최전선에게 뛰고 있는 오 씨와 홍 씨의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두 전직 간호사와의 일문일답.

(오 씨와 지난 6일 진행한 전화 인터뷰, 홍 씨와 지난 8일 진행한 서면 인터뷰를 편집해 싣습니다).

Q. 의료봉사 지원을 하고 병원을 배정받기까지 과정은 어땠나요

오성훈: 제가 몰래 지원을 했거든요. 아내 몰래. 지원한다고 100% 되는 건 아니라고 들어서 먼저 신청하고 진행이 되면 말하려고 했죠.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급박하게 진행이 되더라고요. 제가 수요일에 신청했는데, 이틀 정도는 연락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러다 갑자기 금요일 저녁 9시에 연락이 와서는 다음날 1시까지 와줄 수 있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아내한테는 자정이 넘어서 얘기했어요. 어쩌다 보니 떠나는 당일 말한 거죠. 부모님이랑 처가에도 청도로 내려가는 길에 말씀드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가족들이 반대할 여력이 없었던 것 같아요.

출발하는 아침에 아내가 눈을 뜨자마자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일단 가긴 가는데 주변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성훈 씨는 SNS에 간호사를 위로하는 웹툰을 연재하고 있다

출처오성훈

홍유리: 저는 질병관리본부를 통해 의료지원을 했어요. 저도 간호사지만 할아버지, 아버지, 동생까지 다 군인이에요. 나라가 어려울 때 가만있지 못하는 게 저희 집안 내력 같아요. 그런데 막상 의료지원 간다는 이야기는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안 했어요. 기사가 나가도 모르실 것 같은데. 정해진 근무를 마치고 자가격리 후 천천히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오성훈: 처음에 의료지원 확인 전화가 왔을 때, 청도 군청으로 오라고 말씀하셔서 보건소에서 근무하나 했어요. 당연히 대구로 갈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청도대남병원으로 가게 된 거죠. 전화 주신 분도 제가 거절할까 봐 불안해하시더라고요.

저도 솔직히 처음엔 당황스러웠어요. 가장 힘들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당연히 의료시스템 잘 갖춰진 대학 병원이나 대형 병원으로 가는 걸 상상했나 봐요. 당시 뉴스에서 비친 청도대남병원은 공포의 이미지가 있는 그런 곳이었잖아요. 정신과 폐쇄병동에서만 101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고, 첫 번째 사망자도 대남병원에서 나왔고요. 순간 저도 망설이게 되더라고요. 병원 문을 직접 열고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좀비 호러물에서 보는 그런 장면을 상상했죠.

코로나바이러스 전담병원 의료진은 주기적으로 바이러스 검사를 받아야 한다

출처NEWS1

Q. 실제 청도대남병원 상황은 생각과 많이 달랐나요.

오성훈: 실제로 상황이 많이 심각했던 병원이었지만 제가 갔을 때는 정부와 군청에서 협조하고 있었고, 국민 정신건강센터에서도 의료진분들이 직접 파견 나와서 도움을 주셨어요. 저 같은 의료 봉사를 온 간호사 선생님들도 계셨고요.

저는 내과 파트로 지원을 해서 환자들의 상태가 안 좋으면 투약을 하고 주사를 놓는 내과적 치료를 담당했어요. 그래서 정신과적 치료에 대한 불안이 있었는데, 병원에 계시는 정신과 간호사분들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서로 파트가 다르기 때문에 협업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여러 정보도 나누고 환자 상태도 공유하고, 현장에서 전우애를 느낄 수 있었어요.

그리고 걱정했던 것보다 환자들과 의사소통이 원활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제가 죄송하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더 신경 썼던 것 같아요. 최대한 맞춰서 한 마디라도 더 걸어보고, 대화를 시도해보려고 노력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청도대남병원 정신병동 입원 환자 모두가 분산 이송됐고, 이 중 일부가 국립정신건강센터로 옮겨졌다

출처NEWS1

Q. 국립정신건강센터 상황은 어땠나요.

홍유리: 저도 정신질환자분들이라는 부분을 의식했던 것 같아요. 돌발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할까 상상하며 긴장을 한 상태로 출발했죠.

제가 도착했을 때는 청도대남병원 환자분들이 도착한 직후였어요. 환자분들이 음압격리실에 각자 들어가야 하는데 처음에 아주 불안해 하셨어요. 병실에 안 들어가려고 하시고, 들어가서도 아이처럼 엉엉 우시며 같이 온 분과 함께 있게 해달라고도 하셨습니다.

바닥 생활을 오래 하셔서인지 병원에서 깨끗한 환의, 침구와 침상을 준비해드렸는데도 환자분들이 바닥에 쭈그려 앉아서 식사하려고 하셨어요. 제가 침대에 앉아서 편하게 식사하시라고 말씀드렸는데, 알고 보니 식사 판을 사용할 줄 모르셨던 거죠. 그래서 제가 직접 침대에 식사 판을 올려드렸어요.

Q. 언제 가장 힘드신가요. 육체적인 것도 있겠지만 정신적인 부분도 클 것 같습니다.

오성훈: 일단 방호복을 입고 일한다는 게 힘든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정말 10분, 아니 5분만 입고 있어도 땀이 나거든요. 열기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으니까 땀방울이 정말 물 흐르듯 흘러요. 특히 고글에 습기가 차는데, 그럼 앞이 잘 안 보이거든요. 또 눈에 땀이 들어가면 너무 따가운데 땀을 닦을 수가 없죠. 그런 상황에서 계속 움직이면서 환자들을 돌보는 거죠. 그래서 매뉴얼에는 통상 방호복을 최대 2시간 동안 입는 것을 원칙으로 해요.

방호복을 입고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근무 중인 홍유리 씨

출처홍유리

홍유리: 저도 격리병동에서 방호복을 입고 근무하는 게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처음에는 방호복을 입고 호흡이 힘든 N95 마스크를 끼고 3시간 가까이 근무해도 큰 무리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피로가 쌓이고, 몸이 지치더니 심한 두통이 발생하더라고요.

오성훈: 이건 제가 내과 파트라 느끼는 건데, 손에도 일반 장갑을 한 겹 끼고 그 위에 특수 장갑을 끼거든요. 그래서 손에 촉감이 없어요. 정맥이 잘 안 만져지는 거죠. 거기다 시야는 흐리고 눈은 따갑고 하다 보니까 피검사를 할 때나 수액을 연결할 때 긴장이 많이 돼요.

특히 청도대남병원 정신병동 입원 환자들을 돌볼 때는 내가 실수를 하면 안 되는데 '환자가 갑자기 손을 뿌리치면 어쩌지!' 이런 걱정을 하면서 긴장했던 것 같고, 그런 부분이 심적으로 힘들었죠.

홍유리: 간호사로서 다들 의연하게 자기 자리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집에서는 아이가 있는 '엄마'이기도 한 선생님들이 많이 계세요. 그렇다 보니 병원에서 숙식하며 가족과 떨어져 자체 격리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자녀들과 영상 통화를 자주 하시는데, "엄마 보고 싶어" "엄마 언제 와?" "엄마 열 밤만 자면 온다며" 이런 얘기가 들려요. 그러면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설득시키면서도 뒤에서는 마음 아파하시죠. 그걸 보는 저도 같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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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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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BBC

집단생활에 익숙하던 대남병원 환자들은 1인 음압격리실 생활을 불안해했다

출처국립정신건강센터

Q. 힘들었던 만큼 보람도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느낀 점이 있다면요?

오성훈: 전 청도대남병원 환자 이송을 다 마치고 정리하고 나왔을 때 굉장히 뿌듯했어요. 여러 안 좋은 이유로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병원이지만 마지막에는 정부와 군청, 의료진, 시민 단체까지 정말 모두가 힘을 합쳐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거든요. 현장에서, 또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가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홍유리: 환자 상태가 좋아져서 건강하게 퇴원하실 때 가장 뿌듯하죠. 특히 청도대남병원에서 국립정신건강센터로 오신 환자분들이잖아요. 처음에는 아주 낯설어 하시고 쭈뼛쭈뼛한 모습을 보이셨는데, 이제는 밝게 웃으며 맞아주시고 안정적인 모습이세요.

"여기서 10년은 더 있고 싶다"고 말씀해주신 분도 계세요.

감염 우려 탓에 코로나바이러스 담당 의료진은 병원 식당을 이용하지 않고, 매끼 도시락을 먹는다

출처오성훈, 홍유리

오성훈: 전 요즘 SNS로 제 근황을 전하고 의료 지원 관련 질문도 받고 있어요. 간호사에 대한 이미지 자체가 굉장히 부정적이고 어두웠거든요. 그런데 긍정적인 반응이 많아졌어요. "아직 학생이라 지원을 못 하는데, 빨리 간호사가 돼서 나도 이런 사태 때 도움이 되고 싶다"라는 메시지도 있었고. 이런 걸 보면, 아직 희망이 있는 것 같아요. 또 간호사 직군이 재조명되는 것 같아서 정말 뿌듯합니다.

홍유리: 환자가 입원하는 순간부터 퇴원할 때까지, 그 모든 순간을 간호사가 함께 합니다. 환자의 상태가 급작스럽게 나빠지지 않는지 모니터링하고, 오염과 비오염 구역을 정확하게 지키면서 이동하고, 환자의 정서적 불안함과 육체적인 불편함까지 모두 신경 쓰는 것이 전반적인 간호라고 볼 수 있죠.

이런 환자분들을 위한 간호도 필요하지만, 전 현장에 계신 선생님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크게 했던 것 같아요. 간호사들이 겪고 있을 힘든 현장 상황을 잘 아니까요.

오성훈: 저도 직접 지원을 해서 내려왔지만, 평범한 일상에서 잘 근무하다가 이번 사태를 온몸으로 막고 계신 선생님들도 계세요. 이런 상황이 당연한 사람은 없거든요. 모두가 현장에서 고생하는 의료진입니다.

지금 거리만 봐도 굉장히 한적하잖아요. 하지만 확진자가 전부인 병원에서 일한다는 자체가 정말 큰 결단이자 헌신이고 희생인 거죠.

솔직히 "힘들다"고 말하는 건 누구나 다 할 수 있거든요. 정말 힘드니까요. 그래서 전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떤 마음과 자세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모두가 힘을 내고 서로 배려하면서 이 상황을 잘 극복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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