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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News | 코리아

깨알같은 ‘사랑의 불시착’ 설정과 뒷이야기를 작가에게 직접 들어봤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입체감과 디테일이 살아있는 북한 묘사로도 호평을 받았다. 여기에 큰 역할을 한 탈북자 출신 보조작가를 BBC 코리아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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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불시착

출처CJ ENM

'사랑의 불시착'이 거둔 성공은 시청률 등 숫자로 표현되는 것 이상이다. 드라마 배경에서 북한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북한이 얼마나 생생하게 묘사되는가도 '사랑의 불시착'을 가늠하는 매우 중요한 평가 요소였다.

이점에서도 '사랑의 불시착'은 높은 점수를 받는다. 한 탈북자는 "지금까지 본 북한 소재 작품 중 최고"라고 평하기도 했다.

동시에 드라마 초반에 비친 모습이 북한을 미화했다는 비판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북한 사회 구석구석을 잘 묘사했다는 점은 쉽게 부정할 수 없었다.

그저 북한 사투리 억양을 그럴싸하게 구사하는 정도와는 차원이 다르다. 중간 중간 스치듯 엿보이는 설정에서도 북한에 대한 상당한 이해가 느껴진다.

이를테면 남주인공 리정혁 대위(현빈 분)가 총정치국장의 아들로 등장한다는 설정이 그렇다. 사회주의 군대의 특징인 정치군인 제도는 군 복무 경험이 있는 한국 남성들에게도 낯설다.

극 중 초반에 여자 주인공 윤세리(손예진 분)가 북한 마을에서 붙잡히자 리 대위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둘러댄 '11과 대상'이라는 말은 웬만한 북한 전문가가 아니면 잘 모르는 내용이었다.

이런 내용을 드라마 설정에까지 잘 녹여내려면 단순한 자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각본을 구성하는 초기 단계에서부터 북한을 잘 아는 전문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

각본을 쓴 박지은 작가의 보조작가로 참여한 곽문완(52) 씨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곽문완 작가

출처곽문완

곽 작가는 탈북자 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평양 연극영화대학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했고, 국가 원수 경호와 평양 방어가 주 임무인 호위사령부에서 군 복무를 했다. 한국에 정착한 이후에 영화 업계에서 종사했다.

박지은 작가와의 인연도 그의 한국 영화계 경력에서 비롯됐다.

곽 작가가 곽경택 감독의 영화사 진인사필름에서 일하던 시절이었다. 안면 있던 한 제작자가 박지은 작가와 대화 중에 북한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구상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됐고, 곽 작가를 박 작가에게 소개했다.

박 작가는 곽 작가의 단편 소설을 읽어본 후 '사랑의 불시착' 극본 작업에 보조작가로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고 곽 작가는 바로 수락했다.

수락 이유는 두 가지였다.

"북한에 대한 소재를 다뤄줘서 너무 고마웠죠. 사실 대부분 돈 안 되는 이야기니까 그걸 다뤄주는 게 고마웠어요. 또 저도 그걸 계기로 박지은 작가의 드라마 세계를 배우고 싶었습니다." 곽 작가는 BBC 코리아에 말했다.

"(드라마의) 결과도 괜찮았고 저도 많이 배웠죠." 그는 덧붙였다.

"왜 박지은 작가가 한국의 탑클래스 작가이고 글로벌 드라마 한류를 이끈 작가였는지를 배웠습니다."

본격적인 작업은 2018년 7월부터 시작됐다. 당시 미국에 거주 중이었던 박지은 작가를 찾아가 다른 보조작가들과 더불어 박 작가가 세운 설정에 대해 치열한 아이디어 토론을 계속했다.

"메인 작가가 세운 방향이 있을 거 아닙니까? 그 방향에 따른 설정들... 그것도 역시 디테일의 싸움이죠. 설정의 개연성이라든지 엔터테인먼트성에 대한 것들을 서로 논의했죠."

작가진이 가장 고민했던 사안 중 하나는 남쪽에서 온 "재벌의 딸이자 (성격도) 거침없는 여자" 윤세리가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에 떨어진 이후 북한의 문화와 사회를 체험하는 '시간'을 어떻게 부여하는지였다.

"철저한 감시 속에 있는 북한 마을에서 (윤세리 같은 여자가) 어떻게 자기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그런데 버티게 해야 하니까... 엄청 고민했죠. 그게 제일 큰 고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북한 사투리를 연습시키자는 생각도 했다 한다. 그러나 너무 작위적이라는 생각에 이 아이디어는 폐기됐다. 계속 집안에 숨겨두는 옵션도 거론됐지만, 그러면 마을의 다른 여성들과 교류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차라리 남쪽에서 왔다는 걸 털어놓는 방향으로 가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냥 숙박검열에서 단속됐을 때 '남조선에서 온 여자입니다'라고 하자. 그런데 알고 보니 '11과 대상이더라'라는 걸로." 곽 작가는 말했다.

"전 가장 좋은 픽션은 팩트라고 생각해요. 11과는 팩트거든요."

그다음 문제는 리정혁을 비롯한 북한 군인들이 윤세리를 숨겨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 그래서 북한 군인들도 근무 시간에 술을 마시고 한국 드라마를 보는 등 약점 잡힌다는 설정을 덧붙였다.

사랑의 불시착

출처CJ ENM

무엇보다 주인공 리정혁 대위가 이런 '은폐'를 저지르게 설정하기가 어려웠다.

"주인공이 자신의 개인적인 '결함' 때문에 이를 은폐한다면 주인공답지가 못하잖아요." 곽 작가는 말했다. 군부 일인자나 다름없는 총정치국장의 아들이기 때문에 이런 정도로 자신의 복무 신조를 어기게 만들면 남주인공의 이미지가 퇴색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부하들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윤세리의 존재를 은폐하는 데 동참하게 된다는 설정을 만들게 됐다.

조연 캐릭터로 구승준(김정현 분)과 서단(서지혜 분)의 러브 라인을 덧붙이자는 것도 이런 논의 중에 생겨났다.

"원래 우리나라에선 '남남북녀'라고 하잖습니까. 근데 (리정혁과 윤세리는) 반대되는 얘기란 말이죠." 곽 작가는 말했다.

"우리가 논의할 때는 메인 캐릭터를 먼저 생각하니까 서브 캐릭터는 그다음 문제였는데 메인을 이야기하면서 서브 캐릭터 문제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됐죠."

사랑의 불시착

출처CJ ENM

그러나 남쪽에서 온 남자를 북한에 어떻게 들어가게 하느냐가 문제였다. 불시착이란 카드를 또 쓸 수는 없는 노릇. 여기서 곽 작가의 '키핑 사업' 아이디어가 나왔다.

"어찌 보면 구승준도 (윤세리처럼) 패러글라이딩으로 물리적으로 불시착한 건 아니지만... 사기를 치다가 '화학적'인 불시착으로 북한에 들어온 거란 말이죠."

범죄를 저질러 수배 중인 사람에게 막대한 돈을 받고 북한에 숨겨준다는 '키핑 사업'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그는 즉답을 피했다.

"그런 사업이 있을 가능성도 있죠. 인터폴이 따라 들어갈 수 없는 유일한 나라니까."

한국에서도 '북한 미화' 논란을 불러온 바 있지만 민감한 소재인 북한을 다룬다는 점에서 외국 시청자들도 우려하긴 마찬가지였다. 외국 시청자들은 드라마가 불러올 정치적인 문제를 우려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던졌다.

특히 북한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드라마인 만큼 북한 정권을 자극할 것이 우려되진 않았느냐는 질문에 곽 작가는 자신 있게 답했다.

"북한을 건드리는 건 딱 세 가지에요. 첫 번째, 최고수뇌부의 권위를 훼손시키는 것. 두 번째는 인권 문제. 정치범 수용소 문제 같은 걸 말하는 겁니다. 세 번째는 핵 문제죠."

곽 작가를 비롯한 작가진은 이 드라마의 장르가 로맨틱 코미디라는 점을 고려하여 비록 북한을 다루고 있지만 정치적으로 비칠 수 있는 설정은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했다.

극 중 최고지도자의 존재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지만, 결코 언급되는 일이 없었다. 또한 '키핑 사업'이나 뇌물과 같은 군부의 부패 문제를 다루고는 있지만 이를 보위부원 조철강 소좌(오만석 분) 개인적인 비리로 묘사한다.

"사실 (이런 사건들은) 북한에서는 최고지도부의 승인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인데... 북한 전체에 나쁜 이미지를 주지 않으려고 피해간 점이 있죠."

곽 작가는 이 드라마 각본 작업을 하면서 작가들과 시청자가 북한에 대해 갖는 시각의 복잡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한국이) 과거 60~70년대에 반공 영화 만들 때에는 명백한 선악구조와 이분법적 시각으로 (북한에) 접근했었죠." 그는 말했다.

"작가들은 반드시 관객의 시선을 의식해서 표현을 하거든요. 그런데 북한 전체를 다 적이라고 묘사하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 않는다는 게 (작가와 관객을 비롯한) 한국의 분위기라는 거죠."

곽 작가는 각본 작업을 하면서 북한을 단면적으로 보려고 하지 않고 "한민족"으로, "어쩌면... 따뜻하게 보고자 하는" 작가들의 생각을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국내외에서 많이 들어온 질문 중 하나는, 정말 북한의 마을이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전원적이고 인정이 넘치는 분위기냐는 것이었다. 다른 탈북자들이 실제와 다르다고 가장 많이 지적한 부분이다.

사랑의 불시착

출처CJ ENM

곽 작가는 드라마의 설정 상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최전방 부대에서 복무하는 군인들 가족이 사는 마을이기 때문에 특별히 식량 공급이 보장된 곳이라는 것.

"쌀독에서 인심 나온다고도 하잖아요. (쌀독에 아무것도) 없으면 그런 게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곳에 온 많은 탈북자들은 그걸 인정하기도 하는데 젊은 친구들은 잘 이해를 못 하는 것 같더군요. 왜냐면 (드라마에서 그린 인정 넘치는 마을의 모습은) 북한에서도 지나간 시절의 옛 추억이거든요."

곽 작가는 북한에 사는 사람들의 인심이 전보다 각박해진 까닭을 경제난만으로는 다 설명하지 못한다고 본다.

북한 사람들이 각박해진 이유를 초기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하게 한 장마당에서 찾기도 한다.

"선진화, 발전된 자본주의보다 초기 자본주의 단계는 상당히 살벌하고 무서워요. 발자크가 쓴 '외제니 그랑데', '고리오 영감', '환멸' 같은, 수전노들이 나오는 세계 문학 선집들 있잖아요. 바로 그런 캐릭터 같은 거거든요."

북한 사회가 초기 자본주의 단계로 이행하면서 과거의 '나눔의 문화' 같은 것은 사그라져 가고 자본주의적 냉혹함이 사회 분위기상으로도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것이 곽 작가가 보는 지금 북한의 사회상이다.

'북한 미화' 논란에 대해서도 작가진은 예상했으며 논란이 계속되지는 않으리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고 곽 작가는 설명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북한 사회의 어두운 면도 많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꽃제비도 등장하고... 열차를 타고 가다가 몇 시간씩 멈춰버리는 문제... 정전이 되고 숙박검열이 들어오는, 이걸 '미화'라고 할 수 있겠어요?"

본래 연출을 전공한 곽문완 작가는 이전부터 북한 관련 영상물 제작에 많이 참여했다

출처곽문완

20대의 한 탈북자는 '미화' 논란보다도 드라마가 가져온 여러 가지 긍정적인 측면들을 강조했다.

"(극 중에서 북한이) 미화됐다고 하더라도 한국 사람들에게 '그런 삶을 사시겠습니까?'라고 물으면 안 그럴 거 같은데요." 올해 대학을 졸업한 전효진 씨는 BBC 코리아에 말했다.

"이 드라마가 단면적으로나마 북한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촉매 역할을 한 거 같아 의의가 있다고 생각해요. 허점들이 있다면 다른 채널을 통해서 (북한에 대해) 배워나가야겠지만 이걸 통해 북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잖아요. 어디서 사람들을 만나 드라마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북한에 대해 얘기할 수도 있고요."

한 북한 인권단체 관계자도 '사랑의 불시착'의 성취를 매우 높게 평가했다.

"이 드라마는 입체적이고 진짜 같으면서도, 보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수많은 사람이 사는 곳으로서의 북한을 묘사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한국의 시대상을 깨버렸습니다." 미국의 북한 인권단체 링크(LiNK) 박석길 한국지부장은 BBC 코리아에 말했다.

"가끔 북한이 등장하는 한국 영화는 북한을 간첩이나, 잠재적 혹은 실제적 위협 정도 등 1차원적으로 묘사했었죠."

"높은 시청률과 특히 젊은 한국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은 이 드라마는 그 어떤 정부 사업이나 '통일 콘서트'보다도 북한 사람에 대한 이해과 공감을 갖게 하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칠 겁니다."

박석길 지부장은 드라마에서 묘사된 북한의 정확성 문제에 이렇게 답했다.

"물론 이 드라마는 주목적이 엔터테인먼트니까 100% 정확하진 않죠. 하지만 '프렌즈'도 20대 뉴요커들의 삶을 완벽히 정확하게 보여주는 시트콤은 아닙니다."

사랑의 불시착

출처CJ ENM

드라마에서도 잘 묘사돼 있다시피 북한에서도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많다. 만약 이 드라마를 북한 사람들이 본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여러 가지 소재 중에서 북한 이야기를 전면적으로 다뤄줬다는 점에서 크게 관심을 가질 거 같아요." 곽 작가는 말했다.

"그리고 현빈이나 손예진 같은 배우들에게 반하겠죠. 내용을 보기 전에 일단 배우를 보게 되니까요. 특히 북한 남자들은 자기네를 현빈 정도로 그려줘서 고마워하지 않을까..." 그는 웃으며 덧붙였다.

'사랑의 불시착' 이후 곽문완 작가는 영화와 드라마를 한 편씩 구상 중이다.

"저는 제 정체성이 그래서 저쪽(북한) 이야기와 무관하게 이쪽(한국) 이야기만 그릴 수가 없어요. 제 최종계획은 영화를 감독하는 겁니다."

'시베리안 드림'이란 제목으로 그가 구상 중인 영화는 시베리아에서 벌목공으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을 다룬다. '아메리칸 드림'처럼 시베리아에서 돈을 벌겠다는 '시베리안 드림'을 품고 나무를 베러 왔던 벌목공들이 꾐에 빠져 사람 목을 베는 용병으로 전락하는 이야기다.

남북 첩보전을 소재로 한 '휴민트'라는 드라마도 구상 중이다. 첩보전 그 자체보다는 첩보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인간적인 감정에 관한 이야기다.

"실리와 명분이 공존하고 충돌하는 속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첩보원들의 본능과 욕구에 관한 다양한 문제들을 그리고 싶습니다."

"솔직히 멜로는 제 장르가 아닙니다. 저는 '브로맨스'가 체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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