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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장자: 인류 역사상 최고의 부자, '만사 무사'

'만사 무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누구보다 부자'
BBC News | 코리아 작성일자2019.03.17. | 208,811 읽음

만사 무사는 노예 1만2000명을 동원해 6만 명을 이끌고 메카를 여행했다

출처 : Getty Images

최근 포브스는 '2019 억만장자 리스트'를 발표했다. 아마존 설립자 제프 베조스가 세계 최고의 부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의 재산은 약 1310억 달러(약 148조6000억원). 베조스는 현대사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아무리 베조스라도, 인류 역사상 최고의 부자는 아니다.

이 자리는 14세기 서아프리카를 통치했던 만사 무사의 몫이다. 어찌나 가진 게 많았던지, 그가 호의로 돈을 풀자 국가 경제가 붕괴될 정도였다고 한다.

캘리포니아대학교 루돌프 부치 웨어 역사학과 부교수는 "무사의 재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파악도 표현도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제이콥 데이비슨 역시 2015년 '아프리카의 왕'에 대한 머니닷컴 기고에서 "만사 무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누구보다 부자"라고 했다.

2012년 미국 웹사이트 셀러브리티넷워스는 그의 재산을 4000억 달러로 추산했다. 그러나 경제사학자들은 "그의 부는 숫자로 못 박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인류 역사상 최고 부자 10인

  • 만사 무사 (1280-1337, 말리 제국의 왕) 표현 불가
  •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63 BC-14 AD, 로마 황제) 4조6000억 달러
  • 신종 (1048-1085, 북송의 황제) 측정 불가
  • 악바르 1세 (1542-1605, 무굴 제국의 황제) 측정 불가
  • 앤드루 카네기(1835-1919, 스코틀랜드계 미국 사업가) 3720억 달러
  • 존 록펠러 (1839-1937, 미국 사업가) 3410억 달러
  •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로마노프(1868-1918, 러시아의 차르) 3000억 달러
  • 미르 오스만 알리 칸 ( 1886-1967, 인도의 왕) 2300억 달러
  • 정복자 윌리엄(1028-1087, 영국 노르만 왕조 1대 왕) 2295억 달러
  • 무아마르 카다피(1942-2011, 리비아의 장기 통치자) 2000억 달러

출처: 머니닷컴, 셀러브리티넷워스

황금의 왕

만사 무사는 1280년 왕가에서 태어났다. 1312년까지 말리 제국을 통치한 만사 아부-바크르가 그의 형이다.

14세기 시리아의 역사기록에 따르면, 아부-바크르는 대서양에 대한 갈망이 강했다. 그래서 그는 수천 명을 태운 2000척의 배를 이끌고 대서양 원정을 떠났다. 하지만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돌아오지 못한 형을 대신해 왕위에 오른 게 만사 무사다.

말리 제국은 만사 무사 집권기에 엄청나게 성장했다. 팀북투를 포함한 24개 도시가 말리 제국에 병합됐다. 영토는 대서양 해안에서 현재의 니제르, 세네갈, 모리타니, 부르키나파소 일부까지 약 2000마일에 걸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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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BBC

영토만 광활한 게 아니었다. 황금이나 소금 등 자원도 풍부했다. 만사 무사 통치기에 말리 제국은 구세계 황금의 거의 절반을 보유했다(영국 박물관 자료).

당연히 이 모든 건 왕의 소유였다.

캐슬린 빅포드 베르족(노스웨스턴 대학교 부속 블록 뮤지엄 오브 아트 부 관장)은 "만사 무사는 중세 시대 부를 상징하는 귀중한 자원을 거의 무한정으로 소유했다"며 "황금을 포함한 상품의 대규모 무역이 그의 영토 안에서 이뤄졌고, 이를 통해 그는 더욱더 부유해졌다"고 말했다.

메카 성지순례

말리 제국은 금이 넘쳐나는 곳이었지만, 그다지 잘 알려진 왕국은 아니었다.

하지만 만사 무사 때문에 상황이 달라졌다. 독실한 무슬림이었던 그가 사하라 사막과 이집트를 거쳐 메카로 성지순례를 떠난 것이다.

성지 순례 덕분에 말리와 만사 무사는 지도에 남았다(1375년 이후 제작된 카탈루냐 아틀라스 지도)

출처 : Getty Images

전해지는 얘기 따르면, 만사 무사의 성지 순례단은 6만여 명에 달했다. 여기에는 궁정 신하, 군사, 재담꾼, 상인, 낙타를 끄는 사람, 1만2000명의 하인, 식량으로 쓸 염소 떼와 양 떼 등이 포함됐다.

그러다보니 만사 무사 일행은 마치 사막을 가로질러 이동하는 도시처럼 보였다. 하인을 포함한 모든 구성원이 금과 최고급 페르시아산 비단을 두르고 있으니, 얼마나 볼만한 풍경이었을까. 이들은 특히 카이로에서 과시하듯 재력을 뽐냈다고 한다.

카이로에 닥친 황금의 충격

만사 무사는 카이로에 3개월간 머물렀다. 그동안 금을 물 쓰듯이 썼다. 그러자 이 지역의 금 가격이 10년간 폭락했고, 경제 전체가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미국의 스마트에셋닷컴은 만사 무사의 성지순례가 금 가격 폭락을 가져와 중동 지역에 만든 경제 손실이 약 15억 달러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만사 무사는 말리 제국으로 돌아올 때도 이집트를 거쳤다. 일부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이집트의 경제를 돕고자, 만사 무사는 금 회수에 나섰다. 이집트 대부업자들에게 터무니없이 높은 이자를 내면서까지 금을 빌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너무 방탕하게 금을 쓴 나머지 수중에 있던 금이 바닥 나서, 빌린 것이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런던대학 소아즈(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학을 연구하는 단과대학)의 루시 듀란 박사는 "말리 제국의 재담꾼들이 분노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만사 무사가 말리 제국의 황금을 마구 쓰자, 재담꾼들은 그의 업적을 더이상 칭송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왕이 본토 자원을 제국 바깥에다 낭비한다고 생각한 거죠."

교육의 중심지

쓴 것이든, 낭비한 것이든 만사 무사가 성지순례하며 많은 금을 쓴 건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대단히 관대한 왕이었던 것 같다.

만사 무사는 말리와 자신을 지도에 남겼다. 1375년 무렵 카탈루냐 아틀라스 지도에는 아프리카 왕이 팀북투 꼭대기에서 황금 의자에 앉아 황금 덩어리를 들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팀북투는 아프리카판 엘도라도가 됐고, 각처에서 사람들이 구경하러 왔다.

이 일은 500여 년이 지난 19세기에도 영향을 끼쳤다. 유럽인들이 '잃어버린 황금의 도시'를 찾아 세계 각처로 파고들 때, 팀북투도 표적이 된 것이다.

1327년 만사 무사의 황금으로 지어진 '징게레베르 사원'

출처 : Getty Images

만사 무사는 메카에서 돌아올 때 이슬람학자 몇 명을 데려왔다. 선지자 무함마드의 직계 후예도 있었고, 아부 에스 하크 에스 사헬리라는 안달루시아 시인이자 건축가도 있었다. 이 건축가는 훗날 징게레베르 사원을 설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해지는 바로는 만사 무사가 이 건축가에게 황금 200kg을 줬다. 오늘날 돈으로 환산하면 820만 달러에 달하는 양이다.

만사 무사는 예술과 건축을 장려하는 것뿐 아니라, 학교, 도서관, 사원 등을 지을 수 있게 후원했다. 팀북투는 이내 교육의 중심지가 됐다. 세계 각국에서 유학생이 찾아왔고, 훗날 상코레 대학이 됐다. 만사 무사는 서아프리카에서 교육이란 전통을 싹 틔운 것으로 알려졌다.

만사 무사는 1337년,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아들들은 제국을 하나로 묶어 통치하는 데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결국 후손들을 따라 분할된 제국은 날로 쇠락해갔다. 훗날 유럽인들의 침략에 흔적마저 완전히 사라졌다.

블록 뮤지엄 오브 아트의 리사 코린 그라지오제 관장은 "중세 역사는 주로 서양 역사"라고 말한다. 만사 무사의 이야기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다.

"만약 만사 무사가 통치하던 시기에 유럽이 말리 제국을 침략했다면 역사는 매우 달라졌을 것입니다." (루돌프 부치 웨어 캘리포니아대학교 역사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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